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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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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봉사하는 약사 조근식 씨

나를 위한 여행에서 남을 위한 봉사 배웠습니다

  • 기사입력 : 2015-11-19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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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위적인 것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듯한 천혜의 자연환경과 순수한 사람들이 느리게 호흡하는 곳. 배낭여행자들의 꿈의 여행지이자 몽상가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라오스’.

    뉴욕타임스가 2008년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꼽을 만큼 하루에도 수많은 여행객들이 몰려드는 유명한 관광지다. 최근 케이블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에서 라오스 여행기가 나온 이후부터 라오스를 찾는 여행객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라오스는 우리나라보다 조금 큰 국토에 인구는 700만명 남짓. 비슷한 크기의 땅에서 5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봐도 라오스는 한적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이처럼 라오스는 점차 관광의 나라로 거듭나고 있지만, 여전히 1인당 GDP가 2014년 기준 1679달러인 아시아의 최빈국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이런 라오스를 매달 찾고 있는 이가 있다. 많은 여행객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살 주인공은 바로 창원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조근식(58)씨. 그가 매달 라오스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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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스 오지를 찾아다니며 봉사하는 조근식 약사가 자신의 약국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소년의 상처에 발라준 연고와 반창고= 그가 처음 라오스를 찾은 건 지난 2013년 가을 무렵. 그는 개인적으로 큰일을 치르고 복잡해진 머리와 마음을 달래려 홀로 라오스 여행을 계획했고 또 떠났다. 처음 찾은 라오스는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전해 들은 얘기만큼이나 눈길이 닿는 곳곳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라오스 사람들의 여유롭고 느긋한 모습에 조급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는 듯했다.

    한참을 여행 중이던 어느 날 점심 무렵 사람들을 실은 버스가 식당 앞에 멈춰 섰다. 사람들은 차례차례 버스에서 식당 안으로 곧장 들어갔다.

    그 역시 대열을 따라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때, 한 어린 소년이 그의 눈에 띄었다. 예닐곱 살쯤 됐을까. 커다랗고 까만 눈을 가진 소년의 다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디에서 뛰어놀다 다쳤는지 곳곳이 상처투성이였다. 그는 다시 버스 안으로 들어가 가방을 챙겨 나왔다. 약사인 그의 가방 안에는 각종 항생제와 연고 등 의약품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가방에서 약을 꺼내 소년의 상처에 꼼꼼히 발라주었다.

    소년은 아픈 듯 약간 찡그렸지만 이내 표정이 밝아졌다. 소년이 두어 마디 라오스 말로 뭐라고 했다. 그는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커다란 두 눈망울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그는 이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것은 단순한 결심이 아니라 어떤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컵 짜이! 아짠!”(고마워요! 교수님!)= 첫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그다음 여정을 생각했다. 떠나는 날은 지금으로부터 한 달 뒤. 하지만 짐은 지금부터 꾸리기 시작했다.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짐의 대부분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남’을 위한 것이었다. 어린 학생들을 위한 학용품과 마을 주민들을 위한 의약품 등을 한 보따리 챙겼다. 그리고는 딱 한 달 뒤 다시 라오스를 찾았다. 라오스 남부에 위치한 도시 ‘팍세’로 갔다.

    그는 차를 빌려 팍세에서 1시간 남짓 더 깊은 산골로 들어갔다. 한 오지마을에 다다랐을 때 그는 대뜸 마을 이장을 찾아갔다. 통역을 통해 이장에게 “내가 도와주고 싶은데, 무엇이 좋겠느냐”고 물었다. 이장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은 당연히 낯선 그를 경계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준비해온 학용품과 헌옷 등을 선물하며 아이들과 주민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마을 사람들은 이내 그의 진심을 알고는 마음의 빗장을 풀고 그를 따뜻하게 맞아줬다.

    이후 그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망가진 학교 지붕을 고치기도 하고, 제대로 된 수도시설 하나 없는 학교에 급수대를 만들었다. 그는 매달 라오스를 찾아 직접 차를 몰고 오지마을을 찾아다녔다.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산속 깊은 오지마을만을 골라서 찾아갔다. 도움이 절실한 곳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곧바로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잘것없는 작은 도움에도 진실로 고마워하는 마을사람들을 보며 그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되돌려 받은 것 같았다. 때문에 그는 계속해서 라오스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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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비엥 한 초등학교에서 조근식씨가 한국에서 준비해온 학용품 등을 전달하고 있다.


    ◆일년의 절반은 라오스에서 보내고 싶어= 그는 거의 매달 라오스를 방문해 오지마을 사람들을 돕는 일들을 꾸준히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이를 위해 라오스 전역을 다 돌 생각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1년의 절반은 라오스에서, 그리고 절반은 한국에 살면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현재 라오스의 유아사망률은 1000명에 52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도시와 떨어져 있는 오지마을 주민들의 거주 환경은 상당히 열악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언젠가 라오스에 ‘조산사 학교’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 매달 라오스 사람들과 살을 부대끼며 그들의 삶을 지켜보고,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바에 따른 아주 구체적인 목표다. 그리고 이때까지 혼자서 해온 일들을 앞으로는 주변에도 한번 권해볼 생각이다. 어려운 나라의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거나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라오스에 한번 다녀오면 사람들이 얼굴이 참 좋아졌다고 말합니다.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온 것처럼 걱정도 고민도 싹 사라집니다. 연필 한 자루를 줘도 진심으로 감사해하는 순수한 사람들과 함께해서일까요. 이제는 주변에서도 조금씩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늘었으면 합니다.”

    김언진 기자 hop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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