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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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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검은 돛배- 박정대

  • 기사입력 : 2015-11-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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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기억들은 폐허의 노래 같다

    오후 5시의 햇살은 잘 발효된 한 잔의 술

    가로수 잎들을 붉게 물들인다 자전거 바큇살 같은 11월

    그녀는 술이 먹고 싶다고 노을이 지는 거리로 나를 몰고

    나간다 내 가슴의 둔덕에서 염소 떼들이 내려오고 있다



    둥글게 돌아가는 저녁의 검은 레코드,

    어디쯤에선가 거리의 악사들이 노란 달을 연주하고 있다



    텅 빈 마음을 끌고 가는 깊고도 푸른 거리

    ☞ 혜화동! 몇 년간 열애하다 소원해진 옛 애인이다. 그래도 아주 헤어지지는 않고 친구로 일 년에 두 번쯤 만나는 옛 애인이다. 바람의 몸에서 소금 냄새 나는 남쪽 바닷가에서 텃새로 살다 보니, 오랜만에 만나는 옛 애인의 몸에서 강물 냄새가 난다. 양수리 강촌을 흘러가던 강물 냄새, 지나간 청춘의 살 냄새 같은 강물 냄새가 난다.

    술이 먹고 싶다고 노을이 지는 거리로 나를 몰고 나간 그녀는 바로 혜화동 당신이었지. 내 가슴의 둔덕에서 염소 떼를 몰고 다니던 이도 혜화동 당신이었지.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던 노란 달도 혜화동 당신의 가슴이었지. 둥글게 돌아가는 저녁의 검은 레코드에서 밀물 몰려오는 추억들. 혜화동, 깊고 푸르다. 이중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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