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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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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 근병심확(勤秉心確)- 부지런함이란 마음을 잡기를 확고히 하는 것이다

  • 기사입력 : 2015-11-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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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실학(實學)을 집대성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이 1801년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박해를 당했다. 몇 차례 신문을 받고 경상북도 장기로 귀양갔다가 다시 황사영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으로 신문을 받으러 서울로 불려왔다가 다음에는 전라도 강진(康津) 땅으로 귀양을 갔다. 이때 그의 형 손암(巽菴) 정약전(丁若銓)은 서해 흑산도(黑山島)로 귀양갔다. 1801년 음력 11월 나주(羅州) 율정(栗亭)에서 형제가 이별한 뒤로 두 번 다시 보지 못하고, 형은 흑산도에서 별세하고 말았다.

    다산은 강진에 도착하여 처음에 읍내 주막집에 붙어 지냈는데, 죄인이라고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다. 1년쯤 뒤에 그 주변에 살던 아전의 자식들이 글을 배우러 왔다. 수준은 글자를 모르는 아이에서부터 상당히 문리(文理)가 트인 아이까지 다양했다. 다산은 수준에 맞게 정성을 다해 가르쳤다.

    그 가운데 황상(黃裳)이란 14살의 아이가 있었다. 다산이 그에게 공부할 수 있는 싹이 있는 것을 보고 “더 열심히 공부하면 크게 성취할 수 있으니, 문장과 역사책을 부지런히 읽으라”고 특별히 면려했다.

    그러자 황상은 머뭇머뭇하며 부끄러워하는 낮빛을 띠고서 입을 열었다. “저에게는 세 가지 병이 있습니다. 첫째는 둔한 것[鈍]이고, 둘째는 막힌 것[滯]이고, 셋째는 거친 것[]입니다”

    다산은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큰 병통(病痛)이 있는데, 너에게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도다. 첫째 외우기를 빨리 하는 사람은, 그 폐단이 소홀히 하는 데 있다. 둘째 글을 빨리 지을 수 있는 사람은, 그 폐단이 공허한 데 있다. 셋째 이해를 빨리하는 사람은 그 폐단이 거친 데 있다. 둔하면서도 파고들어 가면 그 구멍이 넓어질 것이고, 막혔으면서도 틔우면 세차게 흐를 것이고, 거친데도 갈면 빛이 날 것이다.”

    황상이 묻기를, “파고들어 가기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하자, “부지런히 하는 것이니라”라고 다산이 대답했다.

    “틔우기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하자, “부지런한 것이니라”라고 대답했다. “갈기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지런하는 것이니라.” 다산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황상이 “어떻게 하면 부지런히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다산은, “마음을 잡기를 확고히 하는 것이니라”고 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500여 권이라는 가장 많은 저서를 남긴 다산의 학문하는 방법에는 특별한 비결이 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너무나 평범한 ‘부지런히 하라[勤]’는 한 글자다. 말로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평생 변함없이 실천하기는 더욱 어렵다.

    황상은 이 ‘근(勤)’자를 평생 마음에 새겨 간직했다. 그는 다산의 이 훈계로 공부를 열심히 해 그의 뛰어난 제자가 됐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로부터 시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고, ‘치원유고(園遺稿)’라는 문집도 남긴 큰 학자가 되었다.

    *勤: 부지런할 근. *秉: 잡을 병.

    *心: 마음 심. *確: 굳을 확.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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