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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도나우의 진주 ‘헝가리 부다페스트’

도나우강 근처 동굴성당엔
미사의 어둠 밝히는 양초들과

  • 기사입력 : 2015-11-04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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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록된 헝가리의 아름다운 수도 부다페스트는 도시 중심에 도나우강이 흐르고 있어 ‘도나우의 진주’ ‘도나우의 장미’라고 불린다. 유유히 흐르는 도나우 강을 사이에 두고 언덕이라는 의미의 ‘부다’와 평지라는 뜻의 ‘페스트’로 나뉜다. 강을 기준으로 도시를 구분하는 것이 마치 서울의 강남, 강북을 보는 듯하다. 언덕 위에 형성된 부다 지구에는 13세기부터 헝가리 왕들이 거주했던 부다 왕궁이 있고, 페스트 지구는 번화한 상업지역이다. 1873년 이슈트반 세체니 백작에 의해 부다페스트로 통합됐고 1849년 세체니 다리가 완성됨에 따라 도나우 강으로 나뉘어 있던 두 도시가 연결됐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유럽여행이라고 하면 서유럽 여행을 뜻하기에, 한 달 이상 장기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헝가리까지 다녀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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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배경이 된 세체니 다리의 야경.

    나 역시 유럽 여행을 가기 전까지는 헝가리라는 나라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고 큰 관심도 없었는데,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고등학교 친구가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추천해줬고 헝가리를 꼭 가보라고 했다.

    사실 이 영화가 너무 오래돼 이런 영화와 이런 음악이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았는데 한 번 보고 나선 떠나기 전까지 몇 번을 돌려 봤는지 모를 정도로 빠져들었다.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화를 알게 해 준 친구가 너무 고마웠고 영화 덕에 나의 헝가리 여행이 더 빛났던 것 같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3시간이면 도착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헝가리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 순간부터 나의 귓가에는 ‘글루미 선데이’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헝가리를 떠나는 순간까지….

    동역 켈레티 역에 도착하자 지금껏 가 본 서유럽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길거리 풍경도 사람들의 표정도 옷차림도. 뭔가 지금껏 느끼지 못한 분위기였다. 이런 게 동유럽의 느낌인 걸까 하고 생각하며 환전소에 들러 유로화를 포린트로 먼저 바꿨다. 역사적으로 헝가리는 지금의 터키,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기도 했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하에 있었으며,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으로 강제 편입되기도 했다. 동유럽의 나라 중 가장 먼저 민주화를 실현하긴 했지만 EU 회원임에도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고 포린트(Ft)라는 독자적인 화폐 단위를 사용하고 있다. 현지 물가 적응을 위해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려 보지만 낯선 도시에 적응하는 것만큼 새로운 화페에 적응하는 것도 여행 중의 재미이자 고생. 익숙지 않은 화페는 돈을 지불할 때마다 혼자서 계산 착오를 일으키기도 하고 괜히 더 줬나 오해를 하기도 하고, 경제 관념이 다시 제로화되기 때문에 잔뜩 긴장모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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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부의 요새에서 바라본 국회 의사당.


    발길 따라 걷고 싶어 도나우 강을 이정표를 삼아 지도도 없이 걷다 보니 동굴성당이 나왔다. 신자는 아니지만 여행 중에 왠지 성당에 가고픈 날이 있었는데 오늘이 그런 날. 미사를 보고 있어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동굴 안에서의 미사는 참 특별한 경험이었다. 깜깜한 동굴 속에서 펼쳐지던 미사. 어두운 동굴을 밝히는 수많은 양초들. 그리고 내 마음과 귀를 정화시키던 찬송가. 신을 믿지는 않지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렸다. 하루하루 행복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함이 절로 들던 그런 날이었다. 헝가리 애국정신의 상징인 어부의 요새. 19세기 시민군이 왕궁을 지키고 있을 때 도나우강의 어부들이 강을 건너 기습하는 적을 막기 위해 이 요새를 방어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어부의 요새가 매력적인 이유는 유유히 흘러가는 도나우 강과 국회의사당을 바라볼 수 있어서다. 내 발끝 아래 펼쳐진 세상이 너무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국회의사당에서는 왠지 싸움 같은 건 안 할 것 같다. 아니 못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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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가리에 꼭 와야만 했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온천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탕을 다닌 전형적인 한국인이 여행 기간 내내 샤워만 했으니 온천이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고대 로마 시대, 목욕을 즐겨 하던 로마인들은 헝가리 곳곳에 온천수가 나오는 것을 보고 헝가리를 온천지로 개발했다. 헝가리에는 전국적으로 450개가 넘는 온천이 있으며 부다페스트에만 해도 100군데 정도의 온천이 있다고 했다. 유럽피안들이 가득한 그곳에서 혼자라는 사실이 민망했지만 파란 하늘 아래서 물살을 가르며 수영을 즐기다 네오바르크 양식의 고풍스러운 노란색 건물을 바라보는 것은 황홀할 지경이었다. 야외 풀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거나 물속에서 체스를 두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그고 살랑살랑 불어 오는 바람을 맞으며 파란 하늘 아래 있으니 로마시대 황제는 아니더라도 귀족은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 기분 그대로 38℃ 온도의 실내 온탕에 들어 갔는데 한국을 떠난 지 4개월 만에 맛본 온탕은 너무 좋았다. 사우나는 너무 뜨거워서 5분도 버티지 못하고 바로 나왔는데 의외로 외국인들이 사우나를 즐기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기만 했다. 헝가리에서 온천 경험은 흠 잡을 곳 하나 없이 완벽함의 결정체였다. 다만, 때를 밀지 못하는 게 그저 아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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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체니 온천.



    헝가리 건국 천년을 기념해 만든 영웅광장에는 14명의 역대 영웅들의 영웅상이 늘어서 있다. 영웅광장 뒤로는 시민공원이 있는데 루마니아에만 있는 줄 알았던 드라큘라성이 여기 헝가리에도 있었다. 루마니아 브란성을 본떠 만든 바이더 후나드성 입구에 있는 호수는 여름에는 보트를 즐길 수 있고 겨울에는 얼어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평일 낮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노천 카페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며 사람들 구경하는 것도 유럽 여행의 쏠쏠한 재미였다. 석양 시간이 다가오자 서둘러 부다왕궁으로 향했다. 바르헤지 언덕에 서 있는 부다 왕궁은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됐다가 복구됐다는데 그 기품과 위용은 그대로인 듯하다.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일은 꽤 중독성이 있다. 굳이 아름다운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아~’라는 짧은 탄성 한마디면 끝이다. 모든 오감을 집중해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서서히 노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부다페스트. 세체니 다리에 하나둘 불빛이 들어오자 환상적인 모습이 사실로 펼쳐진다.

    황홀한 기분을 더 극적으로 느끼고 싶어 ‘글루미 선데이’를 틀고 이어폰을 귀에다 꽂았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빠지고, 아름다운 부다페스트의 야경에 빠지고 어둠이 깊어질수록 도시의 밤의 매력도 깊어졌다. 글루미 선데이 영화를 떠올리며 세체니 다리를 한참을 바라봤다. 100명이 넘는 사람이 글루미 선데이를 듣고 자살을 했다고 하던데 그래서일까? 가슴이 시리고 먹먹해지더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긴 여행의 외로움을 부다페스트의 황홀한 야경이 나를 건드린 것이다. 지금껏 보아온 유럽의 야경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조명이 아니어도 충분히 웅장하고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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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가리 시민들의 휴식처인 시민공원.


    내가 다닌 도시 중에서 야경이 제일 예뻤던 도시는 홍콩도 아니고 파리도 아니고 체코도 아니었다. 바로 헝가리 부다페스트! 화려한 기교 없이도 충분히 매력적이던 부다페스트의 황홀했던 밤과 피아노 선율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는 우울하지만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글루미 선데이’를 보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헝가리 여행시 온천욕을 즐긴다면 수영복 지참은 필수다. 환전은 공항이나 기차역 주변을 벗어나 시내 사설 환전소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 빈에서는 당일로 여행하기보다 하룻밤 묵으면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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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미정

    △ 1980년 창원 출생

    △합성동 트레블 카페 '소금사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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