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우산어린이재단 담당자가 민재와 여동생,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병원 복도에서 처음 마주한 7살 민재의 모습은 여느 또래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장난기 어린 웃음을 머금고 여동생과 잡기놀이를 하던 민재와 곧 자신에게 닥칠 시련은 무관해 보였다.
민재는 머지않아 한 집안의 가장이 된다. 얼마 전 담도암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45)가 시한부 3개월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재는 그 사실을 모른다. 아이들이 상처받을 것이란 생각에 민재 어머니(30)와 아버지는 곧 다가올 ‘이별’을 비밀에 부쳤다.
민재네 가족은 아버지와 캄보디아 이주여성인 어머니, 그리고 두 명의 여동생까지 다섯이지만 아버지의 투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어머니와 막내 여동생(3)은 아버지의 병원에서, 민재와 첫째 여동생(6)은 고모집에서 지내고 있다.
올 초까지만 하더라도 민재네 가족은 가난하지만 바랄 것 없는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2007년 국제결혼업체를 통해 만난 아버지와 어머니는 동네에서 금실 좋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아버지가 일용직으로 생활고를 겪다 귀농을 해 생활이 여유롭진 않았지만 이들 가족은 행복했다.
아버지의 병은 7개월 전 갑자기 찾아왔다. 소화가 안 되고, 낯빛이 노래지고, 허리와 다리의 통증이 이어지자 병원을 찾았다가 담도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당시 의사는 난치암이지만 빨리 발견해 치료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고, 아버지는 희망을 갖고 서울의 큰 병원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계속했다.
하지만 현실은 민재네 가족의 바람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올해 초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로 인해 5월부터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진 것. 6월 말에는 두개골로 암이 전이돼 3개월 정도밖에 살 수 없다는 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치료가 없다는 병원의 판단에 민재의 아버지는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병환이 깊어져 왼쪽 머리와 눈이 돌출됐고, 시야가 흐려진 데다 뼈가 부서질 정도의 통증으로 밤마다 앓느라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다. 때문에 민재와 첫째 여동생은 이날 취재를 통해 두 달 만에 어머니, 아버지를 만났다.
민재는 “아빠가 많이 아픈데 의사선생님이 치료를 해줘서 빨리 나을 거예요. 아빠가 다 나으면 동생이랑 엄마랑 다 같이 공룡엑스포에 가고 싶어요”라고 했다. 민재의 소원은 ‘엄마와 아빠가 안 아픈 것’이란다.
민재 어머니는 아픈 남편 병간호보다 큰 걱정이 있다. 앞으로 세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막막하다. 기초수급자로 어느 정도 의료지원을 받고는 있지만 하루 7만원의 약값을 충당하기엔 턱없이 모자라고, 그간 모아뒀던 돈은 서울 병원을 오가며 검사비, 식비, 교통비 등으로 모두 썼다.
아버지가 경제활동을 전담했기 때문에 이들 가족에게 생활비는 수급비 월 120만원이 전부다.
민재 어머니는 “남편의 고통스런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들지만 앞으로 저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가 더 걱정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제 엄마 말 잘 들어야 해” 하며 눈물을 보이자 민재는 “알았어. 울지 마” 하면서 엄마를 안았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관계자는 “현재 민재네 가족은 심리적,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지역민의 따뜻한 사랑이 더해진다면 앞으로 이들 가족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며 “앞으로 홀로 세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어머니에게도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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