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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칼럼] “돈이 없지 가오(かお)가 없냐”- 김진국(경남농협 본부장)

  • 기사입력 : 2015-09-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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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테랑’은 올 들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다. 황정민이 분한 베테랑 형사 서도철은 갖은 유혹과 권력의 압력 속에서도 불법과 비행이 일상화된 재벌 3세를 잡아들인다.

    영화 속에서 서도철은 재벌의 압력과 회유로 수사를 방해하는 동료 형사에게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라고 퇴박을 준다. ‘가오’는 허세, 체면, 있는 척을 지칭하는 속어로 그 어원은 일어인 카오(かお[顔])이지만 영화에서는 돈은 없어도 형사로서 직업적 긍지는 갖고 살자라는 외침이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내 이 대사가 걸린다.

    몇 년 전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개최된 유럽 농업인대회에 참가했을 때다. 유럽 농업인들은 농촌과 농업의 어려움을 해소해 보고자 2년마다 농업인 대회를 열어 농업정책과 농촌의 미래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한다. 그런데 이날 한 농업인의 발언이 주목을 받았다. 그는 “정부는 우리 농산물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는데 허구한 날 소득보상 방법만 찾고 있다.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의 소득보조는 필요 없다. 우리가 생산한 농산물이 제값을 받는 정당한 대접을 바랄 뿐이다”라고 열변을 토해 농업인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유럽연합의 농정당국은 농업인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농사를 짓지 않는 휴경지에 대한 보상, 자연경관과 환경보전을 위한 농촌의 역할에 대해 직불금이란 금전적 보상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농업예산 중에서 직불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고 있다. 이날 그 농민은 소득보상적 차원이 아닌 농산물이 신성한 노동의 대가로 제값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자 농업인대회 의장은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 정부의 보조금은 식량창고, 농촌경관, 사라져가는 농촌의 전통문화를 지키고, 도시민들이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농촌을 보존하는 데 대한 정당한 대가” 라고 주장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우리 농산물 시장은 개방되고 농업인은 가격등락에 한숨을 쉬고 있다. 농촌은 고령화되고 다문화 가정이 농촌인구를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는 농산물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농산물이 물가상승의 주범이라고 아우성이다. 광복 70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하여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기적의 나라를 만들어 온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에는 농지를 공장 부지로 내어주고 농업 인력과 자녀들을 산업화의 역군으로 배출해 온 농업농촌의 피와 땀과 눈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윤봉길 의사는 그의 농민독본에서 “어느 날 돌연히 우리나라가 상공업의 나라로 변할지라도 누군가는 우리의 생명창고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뜨거웠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우리 농업인은 알찬 열매와 결실을 거뒀고, 많은 도시민들은 여름 휴가 기간 동안 농촌의 품에서 휴식과 즐거움과 치유의 시간을 가졌다. 사라져가는 농촌문화와 전통을 보고 농촌의 인정도 느꼈을 것이다.

    농업인들은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존심으로 한국 농촌을 지켜가고 있다. 농업인 모두가 비록 큰돈은 벌고 있지 못하지만 그들만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와 ‘가오’가 있다. 민족의 고유 명절 한가위와 함께 가을을 맞이한 우리 농촌에 이제 가을걷이가 시작될 것이다. 그들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

    김진국 (경남농협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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