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사람속으로] 아마추어 무선연맹 경남본부 김인탁 부본부장

“낯선 곳, 낯선 사람, 새로운 세상, 전파 타고 만나요”

  • 기사입력 : 2015-09-10 22:00:00
  •   
  • 군복무하며 무선통신 접해
    ‘햄’ 경남본부 찾아가 본격 활동

    옆 동네부터 남극 기지까지
    전 세계 사람들과 소식 교류

    통신 두절 재난현장 구호활동
    지역축제 교통통제 등도 도와

    가장 바라는 건 회원 느는 것
    함께 봉사할 사람 많아졌으면…


    “CQ, CQ(불특정 다수를 부르는 신호), 여기는 HLOLHQ(경남본부), 145.12(호출 주파수)에서 수신합니다.”

    창원시 의창구 두대동 창원종합운동장 내 보조경기장 위에 있는 한 건물. 조그만 부스 안에서 한 남자가 암호 같은 통신부호를 주고받으면서 통신의 세계로 빠져든다. 부스 안에 설치된 무선장비는 흔히 ‘햄(HAM)’이라 불리는 아마추어 무선국이다. 햄은 헤드폰과 마이크로 이야기를 나누는 아날로그식 무전기에서부터 휴대전화 크기만 한 디지털식 무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햄은 정보기관이나 방송국, 군대 등 국가나 기관이 아닌 개인이 정부로부터 정당한 허가를 받은 후 무전기를 통해 다른 사람과 나누는 전파 교류를 의미한다.
    메인이미지
    아마추어무선연맹 경남본부 김인탁 부본부장이 창원스포츠파크 내 사무실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햄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재미는 낯선 곳, 낯선 사람과도 쉽게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옆 동네를 비롯해 남극 세종기지까지 지구 어느 곳에서나 햄을 하는 사람들과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이처럼 새로운 세상을 연결하는 아마추어 무선세계에 흠뻑 빠져 평생 취미로 삼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경남본부 김인탁 부본부장이다.

    김인탁 부본부장은 1985년 강원도 인제 12사단 을지부대 수색대대 통신병으로 군 복무하면서 무선통신을 접했다. 특히 자대 배치 전 만나서 정을 나눴던 육군통신학교 친구들을 찾기 위해 교신을 하면서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군 복무 중에 무선통신을 통해 친구 2명을 찾았는데. 무척 반가웠고 재미도 컸어요. 친구 2명은 사실상 무선통신의 초창기 멤버나 마찬가지였어요.”

    김 부본부장의 얼굴에 이내 미소가 번졌다.

    그는 제대 이후 주류 판매 유통 일을 하다가 다시금 옛 친구들이 그리워 무선통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때 알게 된 곳이 바로 아마추어무선연맹이다.

    그는 “군 복무를 마친 뒤 곧바로 자영업을 했는데 IMF 외환위기 때 많이 어려워지면서 업종을 낚시 도매업으로 바꿨어요. 힘들 때 문득 옛날 생각이 나더군요. 그때 햄 경남본부에 방문했어요”라고 말했다.

    햄은 사실상 고급 취미로 인식됐다. 수십만원에서 수백·수천만원까지 무선통신기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파 도달 범위가 국내외를 넘나들기 때문에 영어는 물론 복잡한 주파수 관련 지식도 필요해서다.

    실제 무선통신을 즐기려면 한국전파진흥원이 주관하는 국가기술자격증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김 부본부장 역시 자격시험을 모두 통과한 뒤 아마추어무선사 1급 자격증을 갖고 있다. 낚시 도매업을 하면서 그는 진해군항제 등 지역축제 때 교통통제나 응급상황을 돕고, 도내 각종 마라톤대회에서도 달림이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면서 행사 지원도 하고 있다.

    아울러 적십자사 경남지사의 의뢰를 받아 응급처치와 재난 교육을 하거나 1박2일로 경남지사 회원들과 통신 훈련을 펼치며 공조체제도 구축하고 있다.

    통신이 두절된 재난 현장에선 더욱 빛을 발한다.

    김 부본부장은 “2002년 태풍 매미로 인한 수해 현장이나 재해 현장에서 구호품 전달 등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김해 중국민항기 추락 사고에서도 교신으로 입과 귀가 됐어요”라며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소통되는 만큼 훌륭한 구조 장비라고 할 수 있어요”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소극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햄을 통해 적극적으로 바뀔 정도로 유대관계 형성에도 도움이 되지만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정부의 지원이 없다 보니 개인 사비로 자원봉사에 나서야 하고, 축제나 행사 등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주로 있다 보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부족한 실정이다.
    메인이미지
    김인탁 부본부장이 무선연맹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사비를 털어 행사나 축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게 쉽지 않아요. 시간과 노력에 대한 부분은 저희도 바라지 않아요. 다만 구급 활동이나 각종 대형 사고에 협조체제를 갖추고 있어 유용한데도 정부의 지원이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에요.”

    그의 말대로 순수한 봉사이자 취미활동이지만 사비 부담이 커지다 보니 회원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가장 전성기를 누리던 2005년 경남본부에 가입된 회원이 2900명이나 됐지만 10년이 지난 현재는 500여명에 불과하다. 무선통신 외에 인터넷이 발달하고, 휴대폰 보급의 확대도 감소를 부추겼다.

    하지만 김 부본부장은 햄 이용자는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회원들이 많이 줄었지만 초창기부터 하시던 분들은 돈을 바라지 않고, 봉사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자부심과 보람에 뿌듯함을 많이 느끼고 있지요.”

    지난 1989년 백년가약을 맺은 김 부본부장의 아내도 햄 자격증을 취득했다. 두 명의 자녀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마도 아내의 지지가 없었다면 계속 햄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예요. 적십자 재난봉사활동이나 마라톤대회 봉사활동에도 같이 다닐 정도로 이해를 해주고 있어요. 많이 고마워요”라며 각별한 사랑을 전했다.

    경남본부에 소속돼 회원들에게 활동 참여를 독려하고, 교류관계를 유지시키도록 노력하는 그는 없어서는 안 될 회원들의 연결고리다.

    개인적인 시간을 할애하면서 명맥 유지에 힘쓰고 있는 김 부본부장의 바람은 무엇보다 회원이 늘어났으면 하는 것이다.

    “가장 바라는 것은 회원이 늘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함께 봉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쓰임새가 더욱 커질 것이고, 보람도 더 클 것 같아서요.”

    무선 햄의 활성화를 바라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인터뷰가 끝나자 김인탁 부본부장은 이내 자리를 옮겨 무선장비인 햄을 작동했다. 마치 해변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어린아이처럼 들뜬 모습이었다.

    김정민 기자 jmkim@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정민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