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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 관엄병시(寬嚴倂施)- 관대함과 엄격함을 아울러 시행한다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5-07-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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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대통령은 1975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서거한 이후 영부인 역할을 대신할 때의 대통령의 권위와 지금의 대통령의 권위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장관이나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와 오늘날 장관이나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는 너무나 다를 것이다. 그 당시에는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에게 감히 입도 떼지 못하던 말을 지금은 스스럼없이 한다.

    또 장관이나 비서관에서 그만두고 물러나는 순간부터 바로 대통령을 배신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방송이나 신문 등에 지속적으로 대통령을 비난하는 여당 의원들도 적지 않다.

    민주주의가 지나쳐 개인방임주의로 흐르다 보니, 기본적인 의리도 안 지키는 정치인들이 많다. 대통령의 마음 속 분노가 극도에 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부모를 비명에 보낸 사람으로서 배신에 대한 원천적인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운신의 폭을 제한하는 국회법을 거부하면서 자신이 거부하도록 까지 상황을 만든 여당의 지도부에 매서운 질타를 보냈다. 특히 원내대표 유승민 의원에 대해서는 이름은 거론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정조준해 강하게 비판했다.

    본래 유 의원은 친박(親朴)계열이었다가 비박(非朴)계열로 돌아섰고, 원내대표가 될 적에도 친박계열의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됐다. 당선이 되고 나서도 여당 원내대표면서 대통령의 정책과 어긋나는 주장을 계속해 와 박 대통령은 눈엣가시처럼 보여 오던 중에, 국회법을 청와대의 의도와는 달리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시키자 박 대통령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무회의 모두에 12분의 시간을 들여 자신의 감정을 극도로 노출해 특정인을 비판한 것은 보기 좋지 않았다.

    분노가 북받치더라도 우선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조용히 유 의원을 청와대로 불러 그렇게 하지 말라고 자신의 뜻을 전해야 한다. 그렇게 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다음 조처를 취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여러 사람이 보는 데서 분노하는 것은 대통령의 권위를 높이는 것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속 좁은 사람처럼 보인다.

    청와대와 여당이 잘 협조해서 순리대로 국정을 논의하면 가장 좋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여당은 청와대에 종속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꼭 대통령의 말을 다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삼권이 분립돼 입법부가 독립되어 있는데, 대통령이 입법부를 길들이려 해서는 안 된다.

    유 의원의 거취 문제를 두고 여당 의원총회에서도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유 의원이 물러나지 않으면 박 대통령은 당에 대한 장악력이 더 떨어지는 결과가 되고 만다. 유 의원이 물러난다면, 여당은 줏대 없는 정당이 되고 만다. 그리고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이 더 고조될 것이니, 대통령이나 여당에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권력을 가진 사람이든 간에 관대함과 엄숙함을 상황에 맞추어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좋다.

    * 寬: 너그러울 관. * 嚴: 엄할 엄.

    * 倂: 아우를 병. * 施: 베풀 시.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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