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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9) 표절시비(剽竊是非)- 남의 것을 훔쳐와 자기 것으로 만든 것에 대한 판가름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5-06-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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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유명 대학의 이름 있는 국문학과 교수는 만나서 강의할 때는 깊이 있는 전공지식이 없는데, 여러 분야에 두루 걸쳐 많은 저서를 냈다. 이상했다.

    언젠가 어떤 젊은 교수의 논문을 통째로 베껴 자기 저서의 한 장(章)으로 넣었다가, 그 젊은 교수에게 발각됐다. 그 유명 교수는 교수직을 잃고 말았다.

    어떤 교수는 늘 사회 유명인사들과 테니스나 치고 사교 모임에 자주 어울려 다녔는데, 저서는 많았다. 제자들 사이에서 ‘남의 책을 몇 권 가져와 모자이크해서 자기 책으로 만든다’는 공공연한 소문이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대단한 학자로 인정받다 세상을 떠났다.

    표절(剽竊)했다가 크게 당한 사람도 있지만, 끝까지 무사히 넘어간 사람도 많았다.

    학문이나 예술, 기술 등 창작적인 것에 있어서는 남의 것을 가져와 자신이 창작한 것처럼 하면 안 된다. 이런 행위가 이른바 ‘표절(剽竊)’이라는 것이다. ‘표(剽)’자는, ‘노략질한다’, ‘재빨리 훔친다’는 뜻이고, ‘절(竊)’자는, ‘몰래 훔친다’는 뜻이다. 남의 좋은 생각이나 글을 몰래 훔쳐와 자기가 창작한 것인 양 세상 사람들을 속이면서 내놓는 것이니, 재물을 훔치는 절도와 다를 바 없다.

    창작이란 어떤 형태로든 지금까지 이 세상에 없던 것을 자기 힘으로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글을 쓰거나 책을 짓는 일도 그 가운데 하나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자신이 다 창조해 낼 수는 없다. 앞 시대 다른 사람이 먼저 이룩해 놓은 것을 잘 활용해서 그 바탕 위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린이가 말을 배우고 글을 쓰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앞 시대 사람들이 하던 것을 따라 배워서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모방(模倣)은 시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첫째는 남의 것을 따라 배운 사실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런 행동을 자신의 창작적인 것이라고 내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 소설가 신경숙씨의 소설이 일본 소설가의 구절을 그대로 베꼈다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여러 소설에서도 표절의 혐의를 살 만한 구절이 많이 있다고 시인 겸 소설가인 이응준씨가 구체적으로 상세히 밝혔다. 그리고 문단의 권력구조상 잘 팔리는 작가나 큰 출판사의 책은 평론가들도 감싸고 돈다는 문단의 상황까지도 아울러 고발했다.

    학자나 문학가가 표절의 낙인이 찍힌다면, 그 생명이 끊어지는 것이다. 표절한 사실이 없다면 당당하게 해명해야 할 것이고, 표절한 사실이 있다면 솔직하게 시인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겠다고 맹세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설가가 일본 소설가의 작품을 모방했다면, 한국문학의 수준이 부끄럽지만, 국가의 자존심을 크게 손상하는 일이다.

    * 剽: 노략질할 표. * 竊: 훔칠 절.

    * 是: 옳을 시. * 非: 그를 비.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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