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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3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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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예.담] (3) 수채화에 담긴 '저도 가는 길'

누군가엔 추억 있는 길, 누군가엔 사랑 잇는 길
그림 같은 풍경은 그림이 됩니다
화가 신종식이 그린 ‘저도 연륙교’

  • 기사입력 : 2015-06-2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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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신종식의 수채화 ‘창원 구산면 저도 연륙교’. 헬리캠을 띄워 하늘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촬영한 후 그린 작품.
    달랐습니다. 그의 그림에서 본 길은 여지껏 봐왔던 길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다 하늘 어디선가 멈춰 내려다본 느낌이랄까요. 그것도 길이 가장 사랑스럽게 나온 구도에서 말이죠. 더 올라가면 길과 너무 멀어져 이 멋진 풍광이 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 같고, 더 내려오면 길과 너무 가까워져 이 벅찬 감흥이 땅속으로 꺼져버릴 것 같아 오래도록 이 위치에서 바라보고 싶어집니다.

    수채화가 신종식씨의 ‘창원 구산면 저도 연륙교’라는 그림을 본 첫 느낌입니다. 화폭이 품은 색다른 시선에 압도되고 말았는데요. 그는 남들과 다른 구도의 풍경을 어떻게 담아낸 걸까요.

    바로 헬리캠(카메라가 장착된 드론)이라는 장비를 사용했기 때문인데요. 그는 헬리캠을 띄워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을 촬영한 후 가장 마음에 드는 풍경을 캡처해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하늘에서 본 저도 연륙교 작품도 이렇게 탄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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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연인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에 있는 저도 연륙교를 건너고 있다.
    남들과 다른 눈높이는 남들과 다른 세상을 보여주지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사물을 본다는 것은 곧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풍경을 바라보는 화가의 색다른 시선은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합니다.

    물의 번짐은 수채화 고유의 특징인데요. 그는 이 특징을 살려 생략을 통한 강조 기법으로 풍경을 그립니다.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헬리캠으로 찍은 풍경을 그의 눈에서 다시 한 번 걸러 재해석한다는 얘기지요.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은 선명하고 디테일하게 그리지만 나머지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합니다. 아래쪽 육지 부분이 마치 여백처럼 표현된 건 저도와 저도 연륙교를 강조하기 위함인데요. 저도에 가까워질수록 연륙교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작가는 1990년대 초반 저도 연륙교에 처음 갔다고 해요. 그때의 추억과 아름다운 풍광을 그림에 담고 싶어 10년이 훌쩍 지난 뒤 헬리캠을 띄운 거고요. 작가는 말합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새롭습니다. 늘상 보던 풍경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신선해 보이지요. 비행기가 이륙하거나 착륙할 때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이 낯설면서도 신기하듯이 말이죠. 이 작품을 그리면서 다리와 다리 사이, 섬과 육지 사이의 관계성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저만의 방식으로 풍경을 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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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연륙교 난간에는 사랑을 약속하는 자물쇠가 곳곳에 매달려 있다.

    돼지가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하게 생긴 섬, 저도(猪島). 저도로 가는 길은 그림에서 보듯 바닷길입니다. 그 바닷길엔 마산합포구 구산면 구복리와 저도를 잇는,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연륙교가 놓여 있지요.

    길은 두 갈래입니다. 새 연륙교와 옛 연륙교. 두 길이 나란히 저도를 향해 달려 들어갑니다.

    작가가 하늘에서 봤던 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봅니다. 그가 헬리캠을 띄웠다는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요.

    ‘저도 연륙교’ 하면 보통 붉은색 철제 연륙교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요. 새 연륙교가 생긴 이후에도 추억과 낭만의 길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옛 저도 연륙교(길이 170m, 너비 3m)는 1987년에 놓였습니다. 새 다리가 생긴 후엔 인도교가 됐지요. 그 이전엔 사람과 차량이 함께 지나다녔는데 너비가 3m밖에 안돼 차량은 교행이 불가능했죠. 때문에 건너편에서 오는 차를 기다렸다가 한 대씩 지나가야 했답니다. 통행료도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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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다리는 ‘콰이강의 다리’로 불리는데요. 태국을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나오는 철교와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2001년 개봉한 영화 ‘인디언 서머(Indian Summer)’ 촬영지로도 유명한데요. 이후 사랑하는 사람끼리 손을 잡고 끝까지 건너면 사랑이 이뤄지고, 다리 위에서 빨간 장미 100송이를 주면서 프러포즈를 하면 사랑이 맺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요.

    이 때문일까요. 다리 난간엔 수도 없이 많은 자물쇠가 매달려 있습니다. 사랑의 징표들이죠.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자물쇠 안에는 저마다의 고백과 사연들이 담겨 있겠지요.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그들의 사연이 발목을 잡습니다. 낡고 빛바랜 다리 곳곳에 새겨놓은 이야기들을 읽는 건 또 다른 재미입니다. 무수한 연인들이 이곳에서 사랑을 속삭였겠지요.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사랑을 약속했던 순간처럼 그들의 사랑도 오래도록 빛나고 있을까요. 혹 자물쇠 위에 쌓인 세월의 더께처럼 그들의 사랑도 녹슬어버린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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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연륙교를 찾은 취재기자가 다리 중간 지점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평일 낮의 연륙교는 비교적 한산합니다. 정수리 위로 내리꽂히는 한낮의 햇살은 따갑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이 짜증을 몰아갑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짙푸른 바다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네요. 소음이 없으니 자연과 온전히 마주하게 됩니다. 다리 위에 서서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뒤척이는 파도에 마음을 맡겨봅니다.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닷가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보이네요. 해안선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를 거니는 사람들도 간간이 눈에 띄고요. 이렇듯 저도로 가는 길은 평화롭고, 따뜻하고, 아름답습니다.

    얼마 전 저도 연륙교 바닥을 강화유리로 교체해 세계적인 스카이워크로 만든다는 창원시의 계획이 발표됐는데요. 다음에 이곳을 찾을 땐 투박한 시멘트바닥이 세련된 강화유리로 바뀌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옛 연륙교가 추억이라면 새 연륙교는 편리의 의미가 큽니다. 차도용 새 연륙교(길이 182m, 너비 13m)는 2004년에 생겼는데요. 괭이갈매기를 본떠 만들었다고 해요. 폭이 넓어 차도와 인도가 따로 있지만 역시 ‘걷는 맛’은 옛 연륙교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이 다리는 야경이 아름답다고 하니 밤에 오면 운치가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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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연륙교를 건너는 시민들. 옆에 있는 하얀색 다리는 지난 2004년 완공했다.

    여기서 발길을 돌리려니 아쉽다고요? 그럼 저도 연륙교 그림을 다시 한 번 보세요. 신 연륙교와 연결된 섬 안의 도로를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해안도로가 나오죠? 그 길을 따라 걸으면 비치로드가 펼쳐집니다. 저도의 해안선을 따라 만들어진 둘레길인데요. 올망졸망한 남해안의 섬들을 한눈에 담아올 수 있는 멋진 길이랍니다. 2~3시간 정도면 다녀올 수 있으니 한 번 들러봐도 좋겠네요.

    저도로 가는 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보기 드문 길입니다. 과거의 길로 걸어들어가 현재의 길로 걸어나올 수 있는 마법 같은 길, 아픔과 상처를 안고 가더라도 추억이 위로를 건네고 바다가 치유의 노래를 불러주는 길이지요. 신종식 작가가 하늘에서 길을 내려다봤듯, 길을 걸으며 더 높은 곳에서 당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현재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더 또렷이 보일지도 모르니까요.

    글= 강지현 기자 pressk@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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