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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 인순고식(因循姑息)- 하던 대로 따라 우선 편하고자 한다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5-06-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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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속담에 ‘설마가 사람 잡는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충 그렇게 하면 되겠지’, ‘지금까지 괜찮았는데 새삼 무슨 일이 있겠어’, ‘별일 없겠지’ 등의 사고방식으로 살아왔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옛날 휴전선 철조망 앞에서 보초 서는 병사들 대부분은 밤에는 자고 낮에는 책 보며 지냈다. 철조망을 주시하면서 보초를 서도록 돼 있는데도 말이다. ‘155마일 긴 휴전선인데, 하필 내 앞으로 북괴군이 넘어올 리가 있겠나?’ 하는 심리에서였다.

    그러나 만에 한 번 있을 일에 대비해야 한다. 강가에 둑을 쌓을 때 수십 미터 높이로 쌓는 것은 백년에 한 번이라도 닥칠지 모를 폭우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메르스 초반 방제에 실패한 것은 설마하며 대충 하는 안일한 태도가 큰 원인이다. 2003년 사스 때는 초반에 대비를 잘해, 바로 이웃 중국에서 난리가 났는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사망자가 한 명이 없을 정도로 잘 막아냈다.

    지난 5월 중순 메르스 1호 환자가 중동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을 통과해서 들어올 때 인천공항 검역소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미 중동지역에서 메르스가 발병한 지 3년이 넘었고, 1400여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치사율이 40%를 넘는 무서운 전염병인데도, 중동에서 오는 승객들에게 발열증상이 있으면 신고하라는 기내 방송도 없었다.

    이전에 대한감염학회 회장이 메르스가 국내에 전파되어 대규모 감염사태가 올 수 있다고 경고를 한 지 이미 1년이나 되었다.

    1호 환자는 열이 나는데도 메르스인 줄 모르고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돌아다녔는데, 중동에 갔다 왔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의료진들도 묻지 않았다.

    인천공항 검역소장도 전염병 전문가가 아니고, 비전문가다. 정부가 2015년도 감염대비 예산을 140억원에서 14억원으로 삭감해 버렸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장관도 의료전문가가 아니고, 보험전문가라고 한다. 이래저래 방역 허점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6월 18일 현재 확진 환자 165명에 24명이 사망한 상황이니,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환자의 사망률이 높은 것도 문제지만, 이런 사태가 빨리 진정되지 않으면 국민들의 심리적 동요와 국가경제가 침체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산불 같은 것도 처음에 잡지 못 하면 온 산을 태우듯이, 전염병도 초반에 잘 막아내지 못하면 힘은 힘대로 들면서 인명이나 재산의 피해가 엄청나게 된다.

    인천공항에서 잘 검역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호미로 막아도 될 일을 가래로도 막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대충대충 하는 습관을 버리고, 치밀하게 침착하게 정상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겠다.

    * 因 : 인할 인. * 循 : 따를 순.

    * 姑 : 잠시 고. * 息 : 쉴 식.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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