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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3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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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여행의 자격- 고증식(시인)

  • 기사입력 : 2015-05-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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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프랑스의 니스 해변이 푸른색과 흰옷의 중국인들로 뒤덮인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때 그들은 한 줄로 늘어서서 뭔가를 써보였는데 그 문구는 사람이 만든 가장 긴 문구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한동안 이 뉴스는 각종 매스컴을 통해 연일 화제가 되었다. 이 행사는 중국의 한 기업이 6000여명의 직원에게 단체 해외관광을 시켜준 것으로, 이들은 인근 호텔 8000여 개의 객실에 머물며 140여 대의 버스를 이용해 휴가를 즐겼다고 한다. 관광과 쇼핑을 위해 그들이 소비한 돈은 무려 246억원, 쉽게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중국인들의 거대한 스케일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불과 며칠 뒤, 프랑스를 찾은 관광객의 두 배에 이르는 1만2000여명의 중국인들이 태국을 방문해 또다시 기네스 기록을 갈아치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과연 그 끝은 어디일지 궁금해진다.

    이 기사들은 세계의 관광산업을 들었다 놨다 하는 중국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부터 서울, 부산, 제주를 비롯 주요 관광지를 찾는 일명 ‘유커(遊客)들의 쓰나미’에 울고 웃는다고 한다. 백화점들은 ‘싹쓸이’라 불릴 정도로 통 큰 이들의 씀씀이가 매출을 좌우하게 되자 ‘유커 모시기’를 위해 전용 엘리베이터를 마련하고 중국 휴가철에 맞춰 각종 특별 행사를 기획한다니 가히 그 영향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관광업계에 미치는 중국의 가공할 만한 소비능력과 함께 매번 단골로 등장하는 기사가 있다. 중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목격되는 일부 몰지각한 ‘유커’들의 추한 행태가 그것이다. 출입이 통제된 박물관 전시품에 버젓이 올라앉아 사진을 찍거나, 보존해야 할 기념물에 흔적을 새기는 등 훼손하는 일은 다반사고, 심지어 외국에서 산 밥솥으로 공항에서 밥을 지어먹는 황당한 모습까지 연출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급기야 중국 정부는 추태를 보인 일부 관광객의 명단을 공개했고, 태국 관광청에서는 관광객의 매너와 에티켓에 관한 안내책자를 만들어 중국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배포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때 세간을 떠도는 우스갯소리 중에 ‘한중일 해외 관광객 구별법’이라는 말이 있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은 채 시끌벅적 몰려다니는 무리는 중국인이고, 무채색의 옷을 입고 조용조용 다니며 특히 미술관 같은 곳에서 많이 보이는 사람들은 일본인, 여행지의 성격과 상관없이 시종일관 형형색색의 아웃도어 패션을 선보이는 관광객은 한국인이라고 했다.

    바야흐로 여행의 시대다. 어느새 많은 사람들에게 여행은 삶의 질을 재는 척도가 되기도 하고 돈을 모으는 작은 목표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경기가 어렵고 먹고사는 일이 힘들다 해도 여행은 어느덧 우리 일상 속에 파고들어 중요한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증거다. 하지만 이 호사를 품위 있게 누릴 수 있는 의식의 성장은 미처 따라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물질과 정신의 불균형으로 빚어지는 꼴불견 행태들이 어디 일부 국가의 관광객에만 국한된 일이겠는가. 해외에서 어글리 코리언 소리를 듣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먼 옛날 얘기가 아니지 않은가. 인간의 모든 행동은 그에 걸맞은 문화가 따라줘야 가치 있고 아름다운 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행자로서의 에티켓과 매너에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 외국 여행객을 대하는 우리의 성숙한 시민의식으로서도 절실히 필요한 덕목이다.

    자본의 위력을 앞세워 전 세계를 휩쓸고 다니는 ‘유커’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여행의 자격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진지하게 한 번쯤 돌아봐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고증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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