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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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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일상탐독 (6) 하성란/ 웨하스로 만든 집

  • 기사입력 : 2015-05-21 14: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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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한테도 들어본 적 없는 ‘이 년, 저 년’ 소리를 듣는다. 사회부 기자로 살면서부터다. 처음엔 그 소리가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서럽고 정수리에서 김이 나도록 화가 났는데, 웬걸, 이제는 내 맷집도 상당히 단단해졌다. 내게도 나름의 방도가 생긴 거다. 기사에 대한 불만섞인 앙탈이 슬슬 육두문자로 바뀐다 싶으면 “이성적인 대화가 안 될것 같으니 오늘은 이만 하자”며 사정없이 전화를 끊어버린다. 하지만 무자비한 공격으로부터 품위를 지킬 수 있는 무적의 ‘아이기스의 방패’를 손에 쥐고 있다고 해서 전혀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이건 누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니까. 게임이라 하더라도 이미 나는 패자이니까. 발품을 팔고 공을 들여 작성한 기사가 칭찬은 커녕 쌍욕을 먹는다는 것. 그건 사실 못난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처럼 아프고 시린 법이다.

    ‘여자는 집으로 돌아왔다. 십 년 만의 귀향치고는 짐이 단출했다. 더 줄일 수도 있었지만 혹시 몰라 그곳의 특산품인 단풍나무 시럽을 몇 병 사 가방에 채워넣었다. 기념품을 사들고 오는 동안 잠깐잠깐 십 년간 머물렀던 그곳이 휴가차 다녀오는 관광지처럼 느껴졌다. 그곳의 여자애들처럼 대문을 들어서면서 아임 홈! 이라고 소리치고 싶어졌다. 가뜩이나 비좁은 인도는 인도 중앙까지 밀려나온 폐기물과 폐기물을 실어가려 주차 중인 트럭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깨진 보도블럭 틈에 트렁크의 작은 바퀴가 빠져 끼였다. 그럴 때마다 손집이를 들어올려 당겨야 했는데 몇 번이나 트렁크 바퀴가 여자의 복사뼈를 후려쳤다. 행인들이 툭툭 어깨를 치고 오갔다. 아는 얼굴은 없었다. 예전 같으면 골목 안집 딸이 돌아왔다는 소문이 여자보다 먼저 골목에 도착했을 것이다.’ - 문학동네/하성란/‘웨하스로 만든 집’ 6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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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현재, 창원시내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곳은 모두 27곳이다. 이중 대부분인 23곳이 옛 마산의 구도심에 몰려있다. 하지만 착공이 된 구역은 오직 1곳 뿐. 건설경기가 악화되고 재개발 사업이 장밋빛 전망을 안겨주던 시절은 이미 지나가버렸다는 견해가 우세해지면서, 재개발 예정지 곳곳에서 주민들이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반목 중이다. 때문에 조합이 설립되거나 시행인가가 난 뒤에도 아무런 진척 없이 10년이란 긴 세월을 훌쩍 넘기기가 일쑤다. 그동안 흉흉한 소문과 근거없는 풍문이 이 골목 저 골목을 유령처럼 떠돌고, 복잡한 송사도 줄줄이 뒤따른다. 이 과정에서 ‘재개발을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주민들은 ‘이웃사촌’에서 ‘이웃원수’로 서로의 관계를 재설정한다. 그리고 이 모든 시비의 중심엔 ‘집’이 있다.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그 집,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결국엔 돌아간다는 그 집. 매우 본질적이고, 운명적이고, 사적이지만 공적이기도 한 절대적이자 상대적인 인간과 인간 사이의 매개물 ‘집’ 말이다.

    ‘녹꽃이 핀 대문은 제 색을 알아볼 수 없었다. 방범 창살도 편지함도 손으로 쥐면 바스라질 듯 삭았다. 아버지는 이삼 년에 한 번 대문과 쇠창살에 페인트칠을 했다. 대문의 사자 모양 손잡이에 페인트 기포가 생기고 창살들도 촛농처럼 페인트가 흘러내린 채 굳곤 했다. 여자의 자매들이 초콜릿 같다고 환호성을 질렀던 대문의 기둥은 타일이 다 떨어지고 깨져 시멘트 미장이 드러났다. 초인종을 누르려다가 십여 년 전 폭우 때 누전된 이후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문을 밀고 들어가 닫았지만 문은 잘 여며지지 않고 빠끔히 다시 열렸다.… 삼십여 년 전 시범주택 단지로 조성되었을 때만 해도 이 골목의 주택들은 영화 상연 전에 방영되던 대한뉴스를 탔다. 쭈그리고 앉거나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일을 해야 했던 재래식 부엌에서 해방된 신여성이라고 시작되는 뉴스였는데, 아나운서가 독특한 억양으로 이야기를 해나가는 동안 프릴이 달린 하얀색 에이프런을 두르고 허리 높이의 서양식 작업대 앞에 서서 도마질과 설거지 시범을 해 보였던 골목의 여자들은 한동안 자신들의 모습이 나온 대한뉴스를 보러 이 극장 저 극장으로 몰려다녔다.’ - 문학동네/하성란/‘웨하스로 만든 집’ 7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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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꽤 여러 곳의 재개발 지구를 돌아다니고 부동산 전문가를 만나 기사를 썼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쓴 기사 열에 아홉은 비난과 질책으로 점철된 항의 전화를 동반했다. 평당 감정가 때문이었다. 감정가를 조금만 높게 쓰면 재개발 반대 대책위 측이 ‘네가 뭘 아냐’고 따졌고, 조금만 낮게 쓰면 주택조합 측에서 ‘네가 뭘 아냐’며 성토를 했다. 그리고 몇몇 과격한 이들의 입에선 ‘이 년, 저 년’ 소리가 총알처럼 튀어나왔다. 나도 질세라 바득바득 대거리를 하면 그들은 ‘신문사로 찾아갈테니 꼼짝 말고 기다리라’며 으름장을 놓았고, 나는 ‘올테면 와보라’며 마음에 없는 배짱을 부리기도 했다. 전화를 끊고 자리에 앉으면 온몸에서 진이 다 빠졌다. 총회가 열리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종종걸음 친 수고로움과 정보과 형사들을 붙들고 물어 캐낸 정보들, 양복을 차려입은 험상궂은 용역들을 비집고 들어가 두꺼운 자료를 구해 온 노력의 대가가 ‘이 년, 저 년’이라는, 별로 구수하지도 찰지지도 않는 욕이라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아버지는 딸들의 방에 피아노를 들여놔주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 약속은 지킬 수 없었다. 책상을 옮기던 중 아버지의 한쪽 발이 이층 마루를 뚫었다. 천장에 금이 가고 나무 부스러기가 떨어지면서 앞차기하듯 아버지의 한쪽 발이 튀어나왔다. 골목 안의 사람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집이 날림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자매들은 어렸고 가벼웠기 때문에 이층 마루에서 뛰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에 아버지는 이층 딸들 방에 피아노를 놓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자매들은 곧잘 집이 무너지는 꿈을 꾸었다. 바닥이 꺼지면서 자매들은 부모님이 자고 있는 안방으로 곤두박질쳤다. 이층까지의 높이가 채 이 미터가 되지 않았는데도 자매들은 어두운 바닥으로 한없이 한없이 떨어졌다. 자매들은 악몽을 꾸면서 키가 크고 초조(初朝)를 시작했다. 자매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첨족증(尖足症)에 걸린 사람처럼 발뒤꿈치를 들고 걸었다.… 그렇게 살얼음 밟듯 조심해서 걸었는데도 결혼생활은 고작 십 년 밖에 이어지지 않았다.’ - 문학동네/하성란/‘웨하스로 만든 집’ 8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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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시골 집으로 들어가겠다는 꿈을 꾼 건 40대 초부터다. 아버지는 산란기를 맞은 연어처럼, 자신이 나고 자란 옛집으로의 회귀를 꿈꿨다. 그리고 그 꿈은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현실이 됐다. 아버지는 아파트를 팔고 이런저런 자금을 모아 큼지막한 창이 있고 앞뒤로 깊숙한 정원이 있는 2층 주택 설계에 들어갔다. 곧 본채와 사랑채, 우물이 있던 옛집이 허물어지고 터닦기가 시작됐다. 2001년 추운 겨울, 아버지는 인부들을 위해 수시로 따뜻한 국물과 고기, 소주를 사다 날랐다. 인부들은 건축자재가 어질러져 있는 마당 한가운데 신문지를 깔고 앉아 우걱우걱 고기와 마늘을 씹고 소주를 털어넣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우리 네 식구가 시골집으로 들어와 산 지 올해로 15년이 됐다. 아버지는 철마다 꽃과 나무를 사들여 정원 꾸미는 데 공을 들였고, 그 덕에 여기저기에 치자나무와 오동나무, 주목, 석류, 돌단풍, 무화과가 흐드러졌다. 또 계절에 따라 나리꽃과 꽃무릇, 긴기아난, 꽃잔디가 피고 지고 지금은 작약이 절정이다.?

    ‘견갑골 쪽이 배겼다. 모로 살짝 돌아 눕는 순간이었다. 여자의 코 바로 옆으로 방 천장이 덜컹 떨어져내렸다. 천장에 덧댄 널빤지들이 두두둑 떨어졌다. 집이 이제는 항복이라며 팔짱 낀 두 팔을 푼 것 같았다.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반대편 벽이 무너지면서 여자를 덮쳤다. 하중을 견디지 못한 바닥이 꺼지면서 여자는 일층으로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본 건 서로 다르게 움직이고 있는 시계들이었다. 시야가 캄캄해졌고 어둠 속 먼 곳에서 아득하게 기왓장들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여자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삼십여 년 전 그날처럼 자매들은 대문 앞에 서서 집의 지붕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단칸방에서 누울 자리가 모자라 다리가 긴 텔레비전 아래의 공간 속에서도 잠을 자야 했던 자매들은 새집 앞에서 입이 벌어졌다. 눈으로 처음보는 이층집은 동화 속에 나오는 과자로 만든 집 같았다. 자매들은 앞다퉈 이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아담한 크기의 방 두 칸과 마루, 따로 세를 줄 수 있도록 이층에서 곧장 마당으로 연결된 계단까지 나 있었다. 바싹 마른 마룻장이 바삭, 잘 구운 과자 소리를 냈다. 바삭, 바삭, 바삭. 자매들은 웃었고 어머니는 특히 소리가 심한 곳을 찾아내려는 듯 마룻장을 모두 디뎌보았다. 둘째가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과자로 만든 집이야. 마루는 음, 웨하스로 만들었어. 이건 웨하스 씹을 때 나는 소리야.” 자매들이 발끝을 들면서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러니 조심해!’- 문학동네/하성란/‘웨하스로 만든 집’ 8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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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은행나무다. 성인 남자 둘 정도는 붙어서 팔을 길게 뻗어야만 품에 들어오는 아름드리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마당가에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사철나무 사이에 저혼자 하늘로 우뚝 솟아있다. 싸리 빗자루처럼 쭉쭉 뻗은 가지에는 봄이면 부채꼴 모양의 은행잎이 너풀거렸고 여름이면 철새들이 둥지를 지어 알을 낳았다. 밤이면 나무 꼭대기에 달이 걸리고, 낮이면 구름이 걸리고, 새벽엔 샛별이 걸렸다. 산 너머 어딘가에 수나무가 있는지 가을이면 앙증맞은 은행도 맺혀 노릇노릇 익어갔다. 은행나무의 나이는 올해로 여든 여섯, 1929년 8월에 태어났다. 남들이 들으면 ‘나무에 무슨 생일이 있느냐’며 웃을 일이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은행나무는 할아버지가 태어난 해에 할아버지의 아버지, 즉 나의 증조할아버지에 의해 우리집 마당에 뿌리를 내렸다. 양자(養子)를 들일만큼 손이 귀한 집이어서, 건강한 장손이 무사히 태어났음을 기뻐하고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증조할아버지는 당신의 갓난쟁이 아들이 나무처럼 튼튼하게 자라 크게 번성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한 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증조할아버지의 소망은 실현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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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성란의 ‘웨하스로 만든 집’은 주인공 여자가 이국 땅에서 보낸 10년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홀어머니가 지키고 있는 도시 변두리의 옛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여자의 옛 동네는 재개발 바람을 타고 한창 철거가 진행 중이고, 30년 전 건축업자에 의해 날림으로 지어진 여자의 집은 조그마한 포크레인 진동에도 과자처럼 부서져 내린다. 수시로 찾아오는 철거작업반에게 홀어머니는 ‘칼자루는 우리가 쥐고 있다’며 집을 비워주지 않고 버틴다. 하지만 이미 여자는 집에 대해서도,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서도 ‘칼자루’를 놓쳤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퇴락한 옛집의 모습은 여자를 허물어뜨린 지난 10년 간의 삶과도 묘하게 닮아있다. 소설 말미에서 무너져내린 폐허 속에 파묻혀 정신을 잃은 여자는 곧 ‘집’과 하나가 된다.

    재개발 예정지 주민들이 했던 ‘네가 뭘 아냐’는 질책은 새겨들을만한 말이다. 맞다. 내가 무얼 알겠는가. 내 소유의 집은 커녕 방 한칸도 갖지 못한 내가. 집을 갖는 일이 얼마나 힘겹고 숭고하고, 중차대한 일인지 이제야 겨우 더듬더듬 알아가고 있는 내가 말이다. 그들에게 ‘집’이란 우리집 마당에 우뚝 선 은행나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증조할아버지가 품었던 간절한 소망같은 것이 그들의 집에도 깊게 뿌리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러니 ‘이 년, 저 년’ 소리를 들어도 싸다는 생각. 그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머리속을 파고드는 날이다.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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