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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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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고휘훈 기자 네팔 지진 피해현장 취재

“언제 무너질지 몰라…” 집 버리고 텐트 생활
75개 시 중 14곳 지진피해
주택 30만채 이상 파괴·손상

  • 기사입력 : 2015-05-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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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바 마린타씨 부부가 기울어진 건물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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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티씨가 난민촌의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한국에서 네팔로 향하는 비행기가 텅텅 비었을 것이라는 기자의 예상은 빗나갔다. 불과 1주일 전에도 강도 7.4의 지진이 다시 발생했지만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했다.

    1년에 수차례 한국과 네팔을 오간다는 한 여행객은 “오늘따라 네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며 “평소 같으면 한국 사람들이 많을 텐데, 아무래도 지진 피해가 걱정돼 고향을 찾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7시간 30분을 걸려 도착한 네팔 수도 카트만두 트리부반 국제공항. 비행장은 각국에서 구호물품을 싣고온 수송기와 군용기가 많았다.

    차를 타고 도심으로 진입하자 곳곳에 균열이 가거나 붕괴된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주요 공공기관을 비롯해 시바 신을 모시는 사원, 왕비의 호수 등 도심 속 문화 유산들도 지진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곳이 많았다.

    차에서 내려 피해를 입은 건물을 살펴봤다. 마침 약 30도 정도 기울어진 건물을 처량하게 쳐다보고 있는 한 부부를 만났다.

    시바 마린타(40) 부부는 “이곳에서 친한 이웃이 살고 있었는데 지진으로 건물이 내려앉자 피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며 “인근에 60여 가구가 사는 건물도 무너져 내렸는데 그중 절반만 구조되고 나머지는 들어갈 방도가 없어 아직도 잔해에 깔려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다행히 이 부부가 사는 집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 다시 지진이 발생할지 몰라 두려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붕괴된 건물이 셀 수 없이 많았지만 대부분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다. 완전히 내려앉은 건물은 그나마 손으로 치울 수 있지만, 절반만 붕괴되거나 기울어진 건물은 기계장치가 있지 않는 이상 손 쓸 방도가 없어 보였다.

    네팔엔지니어협회(NEA)가 카트만두 내 건물 2500여 곳을 진단한 결과, 조사 대상의 5분의 1은 더 이상 거주가 불가능하고, 4분의 3 정도는 수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번 지진으로 약 28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30만 채 이상의 주택이 파괴되거나 손상된 것으로 조사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네팔 75개 시 가운데 14곳이 지진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 카트만두를 비롯해 산악 지역인 고르카와 둘라카, 신두팔촉 등의 피해가 특히 심했다.

    “집에 들어갈 수 없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카티(50)씨가 수십 년 동안 살던 집을 떠나 난민촌에서 텐트 생활을 한 지도 벌써 20일이 훌쩍 지났다. 텐트는 다닥다닥 붙으면 4명 정도가 겨우 몸을 눕힐 수 있을 규모다. 그곳에서 카티씨를 포함한 여섯 식구들은 임시 가스버너로 죽을 끓여 먹고 있었다. 물도 화장실도, 먹을거리도 변변치 않은 상황이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어 텐트 안은 그야말로 한증막으로 변한다고 했다. 반면 밤에는 15도 이하로 떨어지는 탓에 추위 속에서 몸을 떨어야만 한다.

    카티씨는 “아직도 하루에 수차례 여진이 계속되고 있어 집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 이렇게 살고 있지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고 했다.

    카티씨와 같이 텐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인근에만 1200여명. 주민들은 이곳 카트만두 시내에 텐트 난민 생활은 하는 사람이 50만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는 “물과 음식이 너무나 부족한 상황이지만, 구호물품은 거의 지원되고 있지 않다”며 “임시 화장실조차 없어 인근 건물의 화장실을 빌려 쓰고 있는 상태다”고 말했다.

    카트만두 시내 넓은 광장은 대부분 텐트 난민촌이 점령한 상태다. 군인 훈련장을 비롯해 공원, 신을 모시는 사원 등 광장 어디든 텐트촌이 형성돼 있다. 심지어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에도 천막을 치고 생활하는 사람들도 곳곳에 보였다.

    난민들은 집단생활을 하다 보니 수인성 전염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약품 지원이 원활하지 못해 벌써 설사병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곳 네팔은 조만간 우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전염병이 창궐할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난민촌 생활도 여의치 않아 카트만두를 떠나는 이들도 계속 늘고 있다.

    한 버스 기사는 “지진이 발생한 후 차량 운전자들이 점점 줄기 시작해 지금은 한산하다”며 “지진 위험 때문에 카트만두를 떠나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도심이 황량하게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팔 카트만두=고휘훈 기자 24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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