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열린포럼] 트루먼과 트루먼- 김지율(시인)

  • 기사입력 : 2015-04-28 07:00:00
  •   
  • 메인이미지

    어떤 영화는 쉽게 잊히지만 어떤 영화는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 끝없는 질문을 만든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가짜’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그는 24시간 생방송되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다. 전 세계 시청자들이 그의 탄생부터 일거수일투족을 시청하고 있다. 주변 인물들도 배우이고 5000대의 몰래 카메라가 설치된 도시 전체가 스튜디오다.

    무려 30년 동안 주인공에게 가해진 미디어의 폭력은 놀라움을 넘어 절대 악처럼 한 인간의 인생을 마음대로 휘두른다. 더 나아가 주인공의 인생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 되는 불쾌한 진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자신의 삶이 진짜일까라는 다소 촌스러울 수 있는 질문 앞에 가끔 흔들린다. 그것을 알고 싶은 열망과 덮어 두려는 두려움이 요란하게 부딪치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세트장을 빠져 나가는 짐 캐리의 마지막 대사는 ‘여러분, 저 다시 못 볼 테니까 미리 인사해요. 굿 모닝,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이다. 아주 코믹하고 유쾌한 순간이다.

    선택은 내 삶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삶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현실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왔을 때 그래서 더 무의미하고 더 무책임해지고 싶을 때 힘들겠지만 우리는 그 두려움들을 이겨내고 ‘진짜 눈물’과 대면해야 한다.

    TV를 켜면 생방송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넘친다. 꽉 짜인 대본의 비슷한 모습과 대사로 현실 아닌 현실을 보여준다. 가식 없는 인간미를 보여준다는 게 이런 프로그램의 묘미다.

    하지만 그 안에서 과연 우리는 그들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마치 TV 안의 그들과 밖의 우리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게 조용하게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혀끝은 달지만 속은 쓰리니까.

    가끔은 슬픈 건 더 슬퍼지고 기쁜 건 더 기뻐진다. 어쩌면 이 말의 뿌리에도 모순들이 뜨겁게 대립할 것이다. 하지만 이 현실엔 논리와 감정으로 말하지 못하는 이유들이 너무 많다.

    나에게는 그것이 이 삶을 견디는 진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삶은 감자 위에 노란 설탕을 뿌리는 이유와 머리카락이 엉켜있는 욕실의 하수구, 한쪽 끈이 떨어진 슬리퍼 위에 내려앉는 일요일 오후의 햇살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장롱 깊은 곳에 하얀 수의를 지어놓고 소리 없이 돌아가신 할머니, 이 현실엔 나만 알고 있는 비밀들이 아주 많다.

    제자리에 정확하게 꽂혀 진동하는 리얼의 진심과 열정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눈을 돌리면 우리 주위에는 화려하진 않지만 미디어보다 더 미디어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진짜 삶을 위해 자신의 가짜 모습을 과감히 벗고 나온 트루먼들은 알 것이다. 현실이 가공된 미디어의 세트장보다 훨씬 리얼하다는 것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지금 내 앞에 있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정직하게 일한 고마운 손을 잡을 때는 두근두근 가슴이 뛴다. 오랫동안 혼자 울다 문득 눈을 뜨면 그래도 이상하게 아픈 이 현실이 찡하게 고맙다. 지금 내가 발붙이고 있는 이곳이, 언제나 우리 삶의 가장 큰 위력이다. 서쪽 하늘의 별이 왜 유난히 더 아름다운지 이 땅의 트루먼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왼쪽에서 뛰는 내 심장은 말한다. 진짜 눈물을 흘린 그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김지율 (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