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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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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 무언불수(無言不讐) - 응답하지 않는 말이 없다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5-03-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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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통신기기가 발달해 이전보다 종이에 글씨를 직접 써서 보내는 편지는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통신량은 훨씬 더 많이 늘어났다. 휴대전화 통화, 휴대전화 문자, 카카오톡 등등의 방법을 이용한 통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방법은 달라졌지만, 통신의 원리는 한 가지다. 서로 만날 수 없는 사람에게 소식이나 정보를 제공하고 교환하는 것이다. 예기(禮記)에 나오는 ‘예법이란 서로 오가는 것을 존중한다(禮尙往來)’는 말과 같이 남의 편지에 답이 있어야 한다.

    필자가 고등학교 재학 중에 한문 문법에 대해 질문하는 편지를 한문을 잘한다고 이름난 학자 다섯 분에게 보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선생만 답장이 왔다. 그 뒤에 또 편지를 올려도 곧바로 답장이 왔다. 편지만 주고받다가 10년쯤 지나 만나 뵙고, “어찌 저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의 편지에 답장을 다 해주십니까?”라고 여쭈었더니, 답변인즉 “나는 나에게 편지하는 사람에게 답장해주지 않은 적이 없네”라고 하셨다.

    대단한 정성이라고 감동하고 그 뒤 따라서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여러 가지 핑계로 다 되지 못하고 있다.

    요즈음은 통신이 빈번한데 통신의 예절은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 어떤 초등학교 교장이 필자가 펴낸 변변찮은 책을 한 권 얻으려고 여러 번 전화했다. 그때마다 아주 다급한 일이 있었고, 책은 서고 밑에 쌓여 있어 꺼내려면 몇 시간을 작업해야 할 판이라 상당 기간 지체됐다. 나중에는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했고, 주변에 아는 사람을 통해서까지 부탁을 했다.

    그러나 정작 책을 보낸 뒤에는 받았다는 전화 한 통 없었다. 이런 유사한 경우가 허다하다. 번역 일을 맡겨 놓고는 아침 저녁 전화하다가 부쳐 보내고 나면 다시는 연락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짧게나마 답장을 하든지, 자주 하던 전화를 한 번만 더 해서 받았다고 하면 되지 않겠는가?

    요즈음 젊은이들 가운데는 편지나 이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또 답장을 하지만, 상대방이 물었던 내용, 알고 싶어 하는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할 말만 하고 마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대학교수라는 사람도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정보통신이 극도로 발달한 현대사회라고 예절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에 맞는 예절이 더더욱 필요하다. 최신 기기로 바꾸면서 예절 없는 마음도 예절 있는 마음으로 바꾸기를 바란다.

    시경(詩經) 억편(抑篇)에 ‘덕이 있으면 갚지 않음이 없고, 말이 있으면 응답하지 않음이 없다(無德不報, 無言不讐)’란 구절이 있다. 누가 말을 하거나 편지를 하면 응답이 있어야 의견이 교환된다.

    * 無 : 없을 무. * 言 : 말씀 언.

    * 不 : 아니 불. * 讐: 원수 수. 갚을 수.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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