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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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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꿈꾸자, 경남] (7) 지속가능한 문화마을 꿈꾸는 귀농인들

합천 황매산 자락에 새 꿈터 잡은 그들
다양한 이력 활용해 재능 기부 네트워크 결성하고 여행사도 설립

  • 기사입력 : 2015-02-1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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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능기부 네트워크를 구성한 합천군 황매산 자락의 귀농·귀촌인들이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고 있다./성승건 기자/

    전국적으로 귀농·귀촌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3년 동안에만 매년 1만 가구 이상이 귀농했다. 2013년 귀농·귀촌가구는 1만923가구로 1만8825명이 농촌행을 택했고, 이 중 경남으로 온 귀농가구는 1348가구였다. 각박한 도시를 떠나 전원생활로 심신을 달랠 꿈을 갖고 농촌으로 들어오지만, 물질적 풍요로움이나 생활의 편의 등과 동떨어진 환경, 그리고 원주민들의 텃세까지 더해진 농촌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렇게 마을 속의 섬처럼 살다 귀농을 포기하고 소리 없이 떠나는 이도 적지 않은 상황, 제2의 고향에서 첫 마음처럼 잘 살아가고 싶은 귀농·귀촌인들이 울타리를 깨고 나와 지역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재능을 한데 모아 문화행사를 열며 지역민과 소통하고, 다른 지역 사람들을 마을로 불러들여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합천군 황매산 자락의 귀농·귀촌인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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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능기부 네트워크를 구성한 합천군 황매산 자락의 귀농·귀촌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다./성승건 기자/

    ◆귀농·귀촌인 한자리에 모이다

    황매산 자락의 합천군 가회면과 대병면 일대에는 20여 가구, 40명 가까운 귀농·귀촌인이 살고 있다. 합천을 제2고향 삼아 살고 있는 이들 중에는 팍팍한 도시의 삶을 등지고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 농촌이 좋아 무작정 귀농길에 오른 사람, 농부라는 또 다른 삶에 대한 동경으로 농촌행을 택한 사람,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적한 농촌을 찾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녀 교육 때문에 시골 생활을 선택한 젊은 부부, 명예퇴직 후 평안한 삶을 위해 귀촌한 중년 부부 등 다양한 삶의 주인공들이 있다. 자리 잡은 각 마을에서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동병상련’ 때문이었다.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농촌 생활에서 오는 생경함과 타지인을 보는 색안경 낀 시선이 주는 고단함이 그것이었다. 특히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 바로 원주민과의 융화였다. 대구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지난 2009년 가회면민이 된 임진희·이진홍 부부는 같은 마을 주민이 되기 위해 매일같이 이웃들과 인사를 하고, 거의 모든 마을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3~4년간 공을 들인 끝에 최근 1~2년 사이 원주민들과 섞일 수 있게 됐다.

    “들어온 사람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누구 엄마’ 하고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니라 ‘어이!’ 하고 부르셨어요. 가부장적인 시골 정서에 섞이기 힘들었죠. 하지만 마을 일이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여하며 공을 들였어요. 덕분에 지금은 동네 어른들과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대부분의 귀농·귀촌인들은 나름의 공동체를 형성해 서로 교류하고, 원주민들과 어울리며 화목한 삶을 살기를 원했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했다. 2005년 대병면 하봉기마을로 이사와 귀농 10년차가 된 김영준(57·합천고 교사)씨가 멍석을 깔았다. 이렇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대병면과 가회면의 귀농·귀촌인들이 삼삼오오 모인 것이 지난해 4월의 일이다.

    “내 삶의 새로운 터전이 된 이곳에서 뭘 좀 해보고 싶은데 융화되는 것이 만만하지 않더군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귀농인들 대부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섞이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죠. 귀농·귀촌인들이 이 지역에서 사는 것에 행복을 찾도록 하자는 것이 첫 목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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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농인들이 지난해 10월 진주에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영화를 본 후 토론을 하고 있다./김영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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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부동 귀농인컨퍼런스 모임./김영준씨/

    ◆재능기부 네트워크로 원주민과 소통하다

    귀농·귀촌인들끼리 모임을 갖고 교류하게 되자 서로의 면면을 들여다보게 됐다. 도시에서 무슨 직업을 갖고 있었으며 어떤 신념과 가치를 가지고 어떻게 활동했는지에 대해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가까운 이웃들의 이력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화려했다. 그들 중에는 글쓰기에 탁월한 농부시인부터 만화가, 화가, 조각가 등 예술인들이 있었고, 영화인이나 홍보기획가도 있었으며, 수학·영어·역사·컴퓨터·농업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환경운동가, 노동운동가, 목사, 요가강사 등도 있었다. 귀농·귀촌인들을 집밖으로 불러낸 김영준씨는 그들의 다양한 재능에 주목했다. 재능을 활용해 원주민들과 친해지는 계기를 마련하고, 자신들의 마을과 지역사회에 기여할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귀농인들을 찾아다니며 참여를 부탁했다. 마음이 맞는 귀농·귀촌인들이 한두 명씩 김씨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20여명의 귀농인들이 모여 재능기부 네트워크, 이른바 ‘재능 품앗이’가 결성됐다.

    문화생활이나 타인과 어울리는 삶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지난해 8월 재능 품앗이 조직이 공식 결성됐고,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9월 첫 모임에 이어 10월 원주민들과의 본격적인 소통이 시작됐다. 10월 둘째 토요일 오후 귀농·귀촌인 가족과 마을의 다문화가정, 조손가정 아이 등 60여명이 서로 손을 잡고 유등 축제가 한창인 진주로 나들이를 나갔다.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영화와 관련된 짧은 인문학 강의를 곁들인 후 식사까지 마치고 마을로 돌아왔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무뚝뚝하게 ‘들어온 사람’들의 행보를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이 호응하기 시작했다. 농번기가 끝난 11월에는 귀농인과 원주민 60~70명이 한데 모여 소박한 잔치도 열었다. 밥 한술 나눠 먹으며 서로의 마음 속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보다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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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준 여행사 동행 대표

    ◆동행, 희망을 보다

    재능기부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뿔뿔이 흩어져 있던 귀농·귀촌인들이 한데 모였고, 귀농인과 원주민 사이를 막고 있던 보이지 않는 벽도 허물어졌다. 소통을 위한 크고 작은 모임과 문화활동은 이어져 갈 것이다. 여러 사람의 재능과 마음을 모아 마을의 변화를 이루자 또 다른 가능성이 보였다. 귀농·귀촌인들은 사랑하는 내 고장, 내 삶의 터전을 더 넓은 곳에 알리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만들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는 여행사인 ‘동행’을 설립했다.

    합천군의 여러 관광자원과 지역공동체를 연계한 공정여행 상품을 기획, 판매해 지역민들의 소득에 도움을 주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합천의 매력을 알리겠다는 취지다. 지난달 ‘팔자 피는 새해맞이 투어’라는 테마로 첫 여행객을 맞았다. 귀농인 중 한 사람이 운영하는 찻집에서 마련한 인문학 강의, 지역 전통시장 체험, 황매산 해맞이, 영암사지 견학, 귀농인의 공방에서 준비한 솟대 만들기 체험 등으로 1박2일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숙박은 귀농·귀촌인들의 집을 내주고, 먹거리는 마을의 음식점에서 제공했다. 여행사 운영을 통한 이익을 지역에 환원하고, 지역만이 가진 문화콘텐츠를 발굴해 경쟁력을 높이고, 이를 통해 지역을 외부에 알림으로써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귀농·귀촌인들은 ‘화이부동’과 여행사 ‘동행’이 일회성 이벤트나 단기적인 사업에 그치지 않고 지속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말했다.

    동행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영준씨는 “지난 한 해를 보내면서 무엇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생겼는데, 귀농인들 대부분 생업과 병행하다 보니 속도가 더딥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뭘 이루려는 욕심을 버리고 문화가 있는 마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자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황매산 자락, 이 마을에서 우리가 하루 이틀 살고 말건 아니니깐요”라고 애정을 듬뿍 담아 말했다.

    김희진 기자 likesky7@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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