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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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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짜장면으로 봉사하는 박영수씨

"이웃과 나누는 짜장면 한 그릇, 보람은 곱빼기가 됩니다"
매월 100여 주민에 짜장면 대접하는 중국집 사장님

  • 기사입력 : 2015-02-1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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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수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이웃들에 대접할 수타면을 뽑고 있다./전강용 기자/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나무 도마 위에 ‘탕’하고 내리친다. 뽀얀 밀가루가 주변으로 풀풀 날린다. 덩어리를 다시 들고는 양팔만큼 늘여 아래위로 휘두른다. 늘어진 반죽을 다시 꽈배기처럼 빙빙 꼰다. 반죽을 나무 도마 위에 몇 번을 다시 접고 늘이고 내리치니 한 덩이였던 반죽은 두 가닥, 네 가닥이 되고 여덟 가닥이 되더니 순식간에 셀 수 없을 정도로 가늘고 얇은 면발이 만들어졌다.

    지난 2일 오전 창원시 의창구 중동의 한 중국집. 점심 무렵이 되자 반죽을 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짜장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가게를 가득 메운 손님들은 입가에 짜장을 묻혀 가며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식사를 마친 손님들은 “잘 먹고 간다”며 감사의 인사만 할 뿐 아무도 계산을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간다. 어쩐 일인지 직원들도 하나같이 밝은 미소로 답할 뿐이다.

    사실 이날은 중국집을 운영하는 박영수(49)씨가 한 달에 한 번 동네 어르신들과 어려운 이웃을 초대해 짜장면을 대접하는 날이다. 지난 10년간 ‘특별한 손님’들을 초대해 짜장면 한 그릇으로 사랑을 나누고 있는 그를 만났다.

    ◆중국집 문 앞에 붙어 있던 ‘종업원 구함’

    박영수씨는 어릴 적 지독한 가난과 싸워야 했다. 가족들은 보리쌀 한 줌을 한참 삶아 양을 불려 나눠 먹었고, 당장 내일 먹을거리를 걱정해야 할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박씨가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밑으로 어린 여동생이 셋이나 됐던 박씨는 계속해서 학업을 이어가는 대신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열다섯의 나이에 돈벌이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북마산 태양극장 근처에 무슨 반점이라고 작은 중국집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 문 앞에 종이로 크게 ‘종업원 구함’이라고 써 붙여져 있었어요. 세끼 밥도 먹을 수 있고 잠도 재워준다니까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갔죠. 기술(요리)을 배워 빨리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박씨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중국집에 처음 들어가서 한 일은 배달과 청소였다. 수북이 쌓인 그릇을 씻을 때 말고는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하루 종일 허드렛일을 하고 가게 한편에 딸린 방에서 직원들과 부대끼며 고된 몸을 뉘여 잠을 청하던 박씨는 빨리 요리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전략을 새로 짰다.

    “주방장과 직원들 종을 자처했어요. 조리복 빨래도 해주고 없는 월급 쪼개 담배도 사다 바쳤어요. 애쓰는 모습이 기특했던지 조금씩 요리를 가르쳐 주더라고요.” 그렇게 어깨너머로 또 눈동냥으로 조금씩 요리를 배우고 또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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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짜장면으로 봉사하는 박영수씨. /전강용 기자/

    ◆주머니에서 나온 꼬깃꼬깃한 지폐 그리고 과자 두 봉지

    그렇게 몇 년이 지나 1998년 박씨는 아내와 함께 마산에 작은 중국집을 열었다. 장사는 뭐 그럭저럭이었다. 그런데 몇 년 뒤 둘째 아이가 생기면서 고민에 빠졌다. 어린 아이들을 두고 부부 둘 다 나와 일을 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던 순간, 지인으로부터 계란 장사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박씨는 “한 알에 10원 정도 남는다”는 말만 믿고 가게를 접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평생 요리만 하던 박씨의 새로운 도전은 순탄치 않았다. 요령이 없다 보니 수도 없이 계란을 깨먹었다. 빚만 잔뜩 지고 1년도 채 안 돼 그만뒀다.

    그 이후에도 이런저런 사업을 하며 몇 년간 방황(?)을 하던 박씨는 초심으로 돌아가 중국집에 취직해 다시 밀가루 반죽을 잡았다. 반죽을 손에서 놓은 동안 조금씩 바뀐 수타법도 다시 익혔고, 주위의 도움을 받아 창원시 의창구 북면에 가게를 다시 열었다.

    그렇게 재기를 꿈꾸던 어느 날 가게에 한 할머니 손님이 찾아왔다. 식사를 마친 할머니는 주머니 깊은 곳에서 꼬깃꼬깃 접은 지폐를 꺼냈다.

    “할머니께 그냥 돈을 안 받겠다 했어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거든요. 할머니가 고맙다고 하시면서 과자 두 봉지를 들고 오셨는데, 그걸 보니 가슴 한쪽이 뭉클하더군요. 할머니의 마음이 뭔지 아니까. 이제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해졌겠다, 그때부터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주위를 둘러보며 살아야겠다 생각했어요.”

    ◆“잘 먹었다” 한마디에 피로 싹… 봉사 계속 하고파

    박씨가 다시 가게를 운영한 지 올해로 10년이 넘었다. 이제 안정기에 접어든 데다 맛있기로 입소문이 나 주말이면 건물 밖까지 긴 줄이 늘어설 정도로 장사가 잘된다.

    그러나 매달 첫째 주 월요일이면 영업을 잠시 접고 특별한 손님들을 초대한다. 인근 주민센터로부터 100명에서 많게는 120명 정도 추천을 받아 짜장면과 만두 등 음식을 준비한다.

    “어르신들은 음식이 딱딱하면 소화를 잘 못하시니 면을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삶아야 해요. 괜히 좋은 마음으로 드시러 왔다가 탈이 나면 안 되잖아요.”

    지금 있는 곳에 자리를 잡기 전 거제에 있을 때부터 시작한 나눔은 올해로 벌써 11년째를 맞았다. 그는 어쩌다 보니 세월이 이렇게 흘렀다며 멋쩍은 웃음을 보인다.

    그는 매달 정기적으로 가게에서 식사를 대접하는 것 외에도 농촌이나 도서지역으로 ‘출장’을 나가기도 한다. 새벽 댓바람부터 재료를 준비해 조리도구를 바리바리 싸들고 찾아가 직접 수타면을 뽑아 짜장면을 만들고 탕수육을 만든다.

    “짜장면 한 그릇이 별게 아닐 수도 있지만 드시는 분들이 좋아하시니까 오히려 제가 고마울 때가 많습니다. 몸이 고되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는 말 한마디면 피로가 다 풀립니다.”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그는 “가게 문을 닫는 날까지 계속 봉사를 하고 싶어요. 막상 해보면 별로 어렵지 않거든요. 오히려 엄청난 에너지를 얻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한센병 환자들이 있는 소록도에 가서 맛있는 수타 짜장면을 대접하고 싶네요”라며 소박하지만 큰 꿈을 꾸고 있었다.

    김언진 기자 hop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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