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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문화기획] 독립예술영화 어디서 봐야 하나

전용관 없는 설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예술영화

  • 기사입력 : 2015-02-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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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영화계 분위기가 연초부터 심상치 않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오는 4월부터 위탁단체를 통해 선정한 26편의 한국예술영화를 정해진 스크린에서 일정 회차만큼 의무적으로 상영해야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의 ‘한국 예술영화 좌석 점유율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진위는 좋은 다양성 영화를 선정하고, 관람객들이 많이 찾는 시간에 상영해 좌석점유율을 높이는 것으로 독립예술영화의 유통 확대를 꾀해보려 한다는 것이지만, 독립영화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영진위의 개편 방향은 법에 근거한 예술영화전용상영관에 대한 지원 정책이 아닐 뿐더러 일부 다양성 영화를 선정하게 되면, 정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영화가 제외될 우려도 있어 독립성과 다양성이 되레 훼손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진위가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경남은 늘 이런 논의에서도 이방인 신세다. 지원을 뺏길 독립·예술영화전용상영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지원을 빼앗겼다고 아쉬워할, 지원 확대를 주장할 곳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다양성영화·독립영화·예술영화

    다양성 영화는 주류 장르의 상업영화가 아닌 다양한 국적과 장르, 저예산, 소수성을 담은 영화를 일컫는다.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포함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독립영화는 자본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적은 예산으로 창작한 영화를 일컫는다. 대중성을 좇지 않고 다양한 주제와 장르를 다룬다. 실험적인 영화도 있어 관객들이 보통 영화관에서 보는 상업영화와는 다르고, 어렵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영진위는 예술영화의 판단 기준으로 먼저 작품의 영화 미학적 가치가 뛰어난 국내외 작가 영화, 둘째로 소재, 주제, 표현방법 등에 있어 기존 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특색을 보이는 창의적, 실험적인 작품, 셋째로 국내에서 거의 상영된 바 없는 개인, 집단, 사회, 국가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문화 간 지속적 교류, 생각의 자유로운 유통, 문화 다양성의 확대에 기여하는 작품, 마지막으로 예술적 관점,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가치가 있는 재개봉 작품을 기준으로 삼는다. 또한 한국독립영화의 기준으로 이윤 확보를 1차 목적으로 하는 일반 상업영화와 달리 창작자의 예술적 의도가 우선시 되는 작품으로 상업영화의 제작·배급 방식으로부터 독립돼 제작 완료된 영화, 주류 상업 영화와 다른 시각적 경험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스타일 또는 내용으로 영화문화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영화이다. 아울러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이슈 등 주류 영화산업에서 다루지 않는 주제들을 과감히 다루고 있는 영화, 노골적으로 상업적이지 않아서 경제적 리스크가 높고 마케팅이 곤란한 영화를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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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창동소극장에서 열린 ACC프로젝트의 목요상영회. 이날은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예술영화 ‘아무르’가 상영됐다. 환경은 열악했지만 관객들은 진지했고 상영 후 토론도 뜨거웠다. /이슬기 기자/

    모임에서나 볼 수 있는 예술영화

    지난 1월 29일 오후 7시 30분 마산합포구 창동 소극장에 30여명의 사람들이 숨을 죽여 어둠 속의 스크린을 바라본다. ACC프로젝트의 목요상영회가 열리고 있는 곳이다.

    인물과 배경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것이 처음엔 영화 속 효과인 것처럼 보였다. 알고 보니, 온풍기의 바람 때문에 천 스크린이 계속 흔들리는 것이었다. 또한 극중 인물이 침대에 불을 끈 후에 깜깜한 화면이 됐지만 대비가 심해 스크린에서는 초록빛이 감돌고, 검은 화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렇듯 제대로 된 영화관이 아니어서 열악한 상황이지만, 영화에 대한 관심과 진지함은 돋보였다. 아무도 소리내지 않고 영화에 그대로 몰입했다. 이날 상영한 영화는 갑작스레 병을 얻게 된 아내와 그녀를 돌보는 남편의 이야기로, 80대 노부부의 사랑과 죽음을 다룬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Amour)’.

    영화가 끝나자마자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영화가 좋았던 부분과 느낀 점을 말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죽음 앞에선 속수무책이라는 탄식부터 주인공들의 선택에 대한 안타까움까지 오간다. 신은정(47)씨는 “애써 외면하려는, 멀리만 생각하는 죽음을 적나라하게 그렸네요. ‘맞이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려고요”라고 말했다. 영화를 보다 궁금했던 것들도 서슴없이 질문한다. “새가 집에 두 번 들어오는데, 뭘 말하고 싶었을까요?” 이 상영회를 준비한 하효선 ACC프로젝트 대표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답을 내놓는다. “죽음의 통제를 뜻하는 것 아닐까요? 처음에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나중에는 그냥 두잖아요.” 익숙지 않은 무거운 주제지만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이다.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2012년 12월 개봉한 영화 아무르의 누적 관객수 8만609명. 이 가운데 서울에서는 하루 최대 14개 스크린, 6만2673명(77.7%)이 봤고, 경남 스크린 수는 1개, 관객수는 28명이었다. 전국 시·도 가운데 관객수가 가장 적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까지 수상하며 명작 반열에 오른 영화지만 이 영화들을 상영할 만한 전용관이 없어 상영할 수도, 볼 수도 없는 것이다. 뒤늦게 영화관이 아닌, 상영모임이나 단체상영 형태로 접하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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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영화 ‘트라이브’. 도내엔 개봉관이 없어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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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영화 ‘오마르’. 도내엔 개봉관이 없어 볼 수 없다.


    예술영화 전용관 경남 0곳

    지난해 10월 도내 유일의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인 거제아트시네마가 폐관했다. 영진위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정하는 예술영화전용관 50개 가운데 경남에 있는 곳이 없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거제아트시네마가 분명히 독립예술영화관의 역할을 하고, 도내에서 유일한 전용관이 있다는 의미가 있었지만, 도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거주하는 창원 등지의 중심지에 전용관이 없었던지라 전용관 수가 ‘0’인 지금이 도내 상황을 더 정확하게 보여준 것이 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예술영화전용관이 사라지면서, 도민들은 독립·예술영화를 볼 기회는 더욱 사라져가고 있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영화관에서 아주 소수 스크린을 내주고 상영할 때가 있지만, 상영일정이 어떻게 잡힐지 예상할 수 없다. 대개 2주가 되지 않아 스크린에서 사라지며, 한두 번 반짝 상영에 그친다. 그러다 보니 경남에선 어떤 독립·예술 영화가 상영되는지 아는 것도 어렵다.

    2014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 대상을 비롯한 3관왕을 차지하고,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휩쓸고 있는 ‘트라이브’, 실제 청각장애인들이 출연해 청각장애인 마피아 현실을 그려 주목을 받고 있으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하지만 도내에서는 개봉관이 없다. 팔레스타인 영화로, 한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분리장벽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오마르’도 마찬가지다. 독립·예술 영화를 보려면 적어도 부산에 가야 하는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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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관객들이 진행한 대관 릴레이로 창원에서도 최근 상영됐다.

    전용관이 필요한 진짜 이유

    7일 오후 4시 창원 팔룡동 CGV창원 1관, 6관에서는 김혜자, 최민수 등이 출연한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하 개훔방)’을 상영했다. 271석 가운데 261석을 채우면서 상영을 마쳤다. 이번 상영은 영화관에서 자체적으로 상영한 것이 아니라, 창원YMCA, 경남사회적기업지원센터 등지에서 힘을 모아, 대관 상영을 진행한 것이다. ‘개훔방’은 상업영화인데 평이 나쁜 영화도 아니었고, 주연배우들 인지도도 높았으나, 흥행실패로 배급사 리틀픽쳐스 대표이사가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영화계는 이를 소규모 배급사가 겪은 구조적 문제라고 분석했다. 창원에서 활동하는 김재한 감독은 “같은 기간 ‘독립영화 최고 흥행 성적’을 낸 독립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CGV 아트하우스가 배급을 맡아 개봉 일주일 넘게 200개 상영관을 유지했고, 흥행에 이르자 상영관이 500여개에 달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게임이 안 된다”며 “지금 영화는 수요에 따라 공급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공급을 어떻게 하느냐 따라서 수요가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영화 자체의 재미, 감동도 중요하지만, 상영 초반 스크린 수 확보가 영화의 흥행 정도를 판가름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관객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훔방의 홍보를 자처했고, 상영관 확대를 위한 대관 릴레이가 펼쳐졌다. 대한극장, 아트나인, 강릉 독립예술극장 등의 예술영화전용관들이 상영을 이어 진행했다.

    이 때문에 영진위의 다양성영화 지원 재편 움직임에 대해 한국독립영화협회, 독립예술영화전용관모임 등은 성명서에서 “‘또 하나의 가족’,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등의 상업영화들이 정치적 경제적 논리에 의해 대기업 멀티플렉스에서 밀려난 후, 관객들과 이어주는 마지노선 역할을 한 것 역시 예술영화관들이다”며 “현재 독립 예술영화 시장 성장은 예술영화전용관들의 오랜 노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으므로 예술영화관의 운영정책 개편을 위한 민관 공동협의체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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