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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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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비경 100선] (88) 남해 앵강만 겨울 풍경

서포의 눈물이런가, 해무에 갇힌 바다

  • 기사입력 : 2015-01-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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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두곡해수욕장에 있는 남해비치호텔 객실에서 바라본 앵강만 겨울 풍경. 해무가 옅게 낀 앵강만은 서포 김만중의 슬픔을 대변하듯 연한 목탄빛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전강용 기자/

    지난 27일 오후 1시 15분. 남해 앵강만을 찾았다.

    앵강만은 지중해와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조용한 호수 같은 바다다. 이곳을 중심으로 남면, 이동면, 상주면에 걸친 9개 마을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앵강만은 상주면 벽련마을에서 저 건너편 남면 다랭이마을까지 이르는 바다를 말한다. 만을 끼고 한 바퀴 돌아보는 18㎞ 구간의 ‘앵강 다숲길’도 포함하고 있다. 앵강 다숲길을 걸어서 둘러보려면 6시간 정도 걸린다. 앵강만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과 해수욕장 등을 편안하게 한 바퀴 쭉 둘러보는 코스로 인기있는 곳이다.

    앵강만 순례의 첫 출발을 벽련마을과 마을 앞에 있는 노도(櫓島)로 잡았다. 아무래도 겨울의 남해 하면 해풍에 잘 자라고 있는 마늘의 군무와 시금치 수확현장, 신선한 해산물 구경도 좋지만, 유배인 서포 김만중의 애환도 빼놓을 수 없다. 찬 겨울 시리도록 슬픈 그의 심중이 어떠했을까 싶어 찬바람 부는 겨울날 한번 꼭 찾고 싶었다.

    이날 찾은 앵강만은 옅은 해무가 끼어 진면목을 완전히 보여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 전체를 두르고 있는 해무가 연출하는 슬픔의 바다는 김만중의 마음을 대변하듯 연한 목탄빛 그림을 보여줬다.


    김만중의 슬픔.

    시인 고두현은 시집 ‘늦게 온 소포(민음사)’를 통해 김만중의 애절한 심경을 이렇게 대변한다.

    ‘~중략~/삿갓처럼 엎드린 앵강만에 묻혀/다시는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리/(남해가는길-유배시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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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상주면 벽련마을에서 바라본 김만중 유배지 ‘노도’.

    늘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던 어머니가 병사했는데도 효성이 지극했던 김만중이 유배의 몸으로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끝내 56세를 일기로 노도에서 숨을 거둬야 했던 그의 슬픔.

    그래서 시인은 수차례 유배를 겪었던 그의 마음을 알고 마지막 유배지 노도에서 생각했을 법한 ‘다시는 살아서 육지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그의 절대심을 읊었다.

    벽련마을에서 본 노도는 마치 수영이라도 해서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김만중이 노도에서 눈감았던 300여 년 전 그 파도소리도 지금 들려주는 이 소리와는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바람에 일렁거려 드러나는 흰 포말, 배의 춤사위, 여유로운 갈매기의 날갯짓, 코끝을 싸하게 꼬집는 바람, 파도에 담금질하는 바다 돌의 인내, 침묵하며 서 있는 저 소나무…. 벽련마을과 노도를 감싸고 있는 앵강만 겨울 풍경이 찢어진 가슴을 움켜쥔 서포의 심정을 알기는 하겠지. 갯가에 늘어선 느티나무들도 노도로 들어가던 서포의 뒷모습과 서포를 내려놓고 나오던 빈배를 목격했으리라.

    동쪽 저 수평선에서 떠오른 태양이 서쪽 저 수평선 넘어 뉘엿뉘엿 넘어갈 채비를 할 시간 만선의 꿈을 실은 배들이 파도를 헤치고 또다시 먼바다로 나간다.

    벽련마을에서 만 안쪽으로 조금 가면 원천 횟집촌이 나온다. 횟집촌 앞 바닷가에 물이 빠지면 갯벌 위에 드러누운 파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횟집촌은 앵강만을 쭉 한 번에 둘러보기 딱 좋은 곳이다. 막힌 곳이 없어 바다 건너편 다랭이마을과 홍현 해라우지마을도 보인다.

    남해에는 방풍림이 많은데 앵강만 화계마을에도 갯바람을 막아주는 신전숲이라는 상수리나무 군락지가 있다. 1972년 전투경찰이 주둔했던 신전숲은 이후 또다시 육군이 주둔했다가 2008년 육군이 금산으로 이전하면서 숲이 온전한 모습으로 보전되고 있다.

    앵강만 깊숙한 곳에 월포해수욕장과 두곡해수욕장이 나온다. 앵강만 전체를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월포마을과 두곡마을에 이어져 있는데, 반달처럼 휘어져 있다. 크고 작은 몽돌이 해변에 많이 있어 파도에 구르는 몽돌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경치, 파도, 몽돌소리가 정말 아름다워 남해사람들이 먼 훗날을 위해 아껴 놓은 해수욕장이란다.

    두곡마을에는 특이한 꽃놀이가 있다고 한다. 이 꽃놀이는 15년 전부터 마을앞 해변에 조성된 소나무 방풍림 그늘 아래서 열린다. 두곡해수욕장은 500그루 이상 조성된 해변 숲과 몽돌밭, 아주 가는 모래를 가지고 있다.

    두곡해수욕장에 있는 남해비치호텔 객실 전망대를 찾아 앵강만 전체를 조망해 보고 아름다운 경치를 영원히 담고 싶어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미륵이 탄생해 맨처음 몸을 씻었다는 두곡마을 인근 용소마을 위쪽의 호구산 계곡에 호젓하게 자리잡은 용문사와 백련암, 염불암을 찾아 세속의 욕심과 고민을 한번 씻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앵강만에 있으면서 둘째로 꼽으면 서러워할 곳이 바로 홍현 해라우지마을과 다랭이마을이다.

    홍현 해라우지마을에는 자그마한 운동장 넓이의 ‘석방렴’이 있다. 석방렴은 바다에 돌로 쌓은 성벽인데, 밀물 때 물에 잠겨 있다가 썰물 때 물이 빠지면 돌성에 갇힌 물고기를 맨손과 뜰채로 잡는다.

    홍현마을 바닷가에 있던 큰 돌이 서울 청계천 복원 때 남해를 대표해 옮겨져 청계천에 세워져 있기도 하다.

    다랭이마을은 석축을 쌓아 만든 다랭이논이 유명한데, 농군의 마음을 닮은 유연한 곡선의 논두렁이 연출하는 풍경이 장관이다. 소울산(망산)과 응봉산에 흙의 유실을 막고 경계를 만들기 위해 크고 작은 돌을 직접 쌓아 조성했다. 이 다랭이논은 땅을 한 뼘이라도 더 넓히려는 농군의 집념이 반영된 듯 안으로 기운 논 없이 직각으로 바로바로 만들어져 인상깊다.

    유배지에서 죽어야 했던 서포의 슬픔부터 다랭이논의 예술적 조형까지 앵강만 겨울 풍경에 심취한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조윤제 기자 ch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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