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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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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2014 창원KC국제시문학상 수상 일본 시인 사가와 아키 씨

“동경하는 한국詩, 일본에 더 많이 소개하고 싶어요”

  • 기사입력 : 2015-01-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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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가와 아키씨가 요코하마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창원KC국제시문학상 수상에 대한 소감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부모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시에 관심
    대학 때 김지하 시인 구명운동하다
    한국 시와 한일관계 알아가기 시작했죠

    한국시인 평론집·번역 활동하며
    일본에 한국 시 알리고 있고
    앞으로 경남 문인도 소개하고 싶어요

    역사왜곡 일삼는 일본 부끄럽지만
    역사 직시하고 노력하는 일본인도 많아
    과거 통해 미래 그려나갈 겁니다


    ‘내 필명 사가와의 발음은 한국어 낱말 ‘사과’와 비슷하다/ 일본의 과거를 접할 때마다 한국인들의 마음속 심지가 날카로워진다/ 그럴 때 국적 없는 사과 인간이라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한다/ 한글의 ‘사과’는 ‘사죄’와 똑같은 글자/ 사죄를 요구당하는 나/ 역사를 돌아보면 피가 맺힌다/ 사과 인간도 되지 못하고 붉은 동그라미 속의 일본 사람인 나’ (사가와 아키 작 ‘사과 인간’ 중에서)

    한국 시를 사랑하는 사가와 아키(佐川亞紀·61·여)씨. 지난해 창원KC국제시문학상을 수상한 일본 시인이다. 그는 한일(韓日) 과거사를 언급하며 스스로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일제강점기 저항시를 썼던 한국 시인들을 이야기할 때는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근·현대 한국 시인들의 이름을 줄줄이 쏟아낼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왜 한국 시와 한국 시인을 이토록 동경하는 것일까.

    지난 연말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하마(橫濱)시에서 그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한국말에 익숙하지 않은데도 일본말을 거의 쓰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놨다.


    ◆한국 시의 매력에 빠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시에 관심이 많았다. 시를 썼던 그의 어머니와 시 읽기를 좋아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

    “학교 교과서를 통해 시를 접하기 이전부터 일본 고유의 정형시인 단카(短歌)나 하이쿠(俳句)를 계속 접했습니다. 어머니는 취미 삼아 단카를 지으셨고, 아버지는 하이쿠를 읽고 즐기셨습니다.”

    이후 일본 시에 싫증을 느낀 그는 사회적 비판이나 역사 문제를 자유시 양식으로 풀어내는 한국 시를 접하면서 흥미를 갖게 됐다.

    “일본 시는 사상보다는 운율을 우선시하는 인식이 강하게 뿌리박혀 있어요. 그에 반해 한국 시는 문명 비판이나 역사라는 공적 감정을 주로 자유시라는 양식으로 표현하고 있죠. 두 나라가 각기 다르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죠. 한국 국어교과서에 자유시가 상당히 많이 수록된 것을 보고 놀랐었죠.”

    사가와 시인이 한국 시인과 한국 시의 매력에 빠지게 된 때는 대학시절이었다.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요코하마국립대학에 다니던 시절인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 사건에 연루돼 사형 선고를 받은 김지하 시인의 구명운동에 동참하면서 한국 시인들과 교류하게 됐고, 자연스레 한국 시를 더욱 활발하게 접하게 됐다.

    한국 시인들과의 만남은 그의 시적 영역을 사회문제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김지하 선생님을 구제하기 위한 국제적인 구명운동이 도쿄와 가나가와 등 전국 각지에서 펼쳐졌습니다. 양심적 지식인들도 그의 사형을 막기 위해 항의에 나섰고, 대대적 서명운동을 벌였죠. 대학도 예외가 아니었죠. 그를 구명하려는 움직임이 학내 곳곳에서 활발하게 전개됐고, 저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시와 한일관계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시를 일본에 알리다

    그는 대학 졸업 후 한일문제 관련 단체가 추진하는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등 일본 사회 비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사회문학회 회원으로 가입해 일본 사회를 날카롭게 꼬집는 한국 시인들의 시를 자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소개함으로써 사회적 비판을 대변했다.

    특히 2000년 이후 일본에 한류 열풍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한국 시의 소개는 더욱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사가와 시인은 주요 일간지, 시문학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한국 시를 알리는 데 노력했다.

    “2009년 김지하 시인의 ‘동아시아 시인의 역할’이라는 원고를 받아 학회지에 실은 적이 있어요. 이는 전후 처음으로 일본에서 한국 시인의 비판적이고 강력한 민중의 목소리를 알렸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39명의 한국 시인을 소개하는 평론집 ‘한국현대시 소론집’, ‘재일한국인 시선집’을 출간하고, 고은 시선집 ‘지금 너에게 시가 왔느냐’, ‘한일 환경 시선집-지구는 아름답다’, 이어령 시집 ‘무신론자의 기도’를 공동 번역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여 왔다.

    그는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던 시문학지 ‘시토시소(詩と思想·시와 사상)’를 통해서도 여러 차례 한국 시 특집판을 게재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아사히신문, 도쿄신문에 한국시 등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그의 한국 시에 대한 관심은 김지하 시인뿐만 아니라 고은, 신경림 등 민주화 운동을 위해 앞장선 현대 시인과 김소월, 정지용 등 근대 시인으로까지 포괄적이었다.

    “일본 시인보다 한국 시인을 더 친숙하게 느낀 이유는 제 자신이 서정적인 면보다 서사적인 성향이 강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한국 시인들이 오랜 세월 베풀어 준 가르침이 제가 한국 시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자양분입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사가와 시인은 한국 시를 해설해서 일본에 많이 소개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처음부터 한국 시를 사랑했어요. 김소월, 박목월, 유치환 등 시인을 사랑하는 일본인들이 많고, 요즘에는 류시화, 안도현 등 시인이 일본에서 유명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정일근 시인 등 경남지역의 시인들을 소개할 수 있는 초청특강 행사를 일본에서 가지고 싶습니다.”


    ◆“과거 역사로 미래 그려야”

    창원KC국제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데 대해서는 겸손함을 보였다.

    “오늘날 일본이 한일 평화와 우호에 반하는 언동을 일삼는 데 대해 일본인으로서 몹시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직시하고 평화를 추구하려 노력하는 일본인이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주는 격려의 뜻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 시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훌륭한 시인은 눈앞의 현실이 아니라 몇만 년 후를 내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통해 미래를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한국이 가장 먼저 구호활동을 했고, 한국 시인들은 따뜻한 격려의 시를 써주었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을 향한 인간적인 공감은 시를 통해 길러진다고 생각합니다.”

    글·사진= 김호철 기자 keeper@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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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가와 아키 약력

    △1954년 도쿄 출생 △1974년 김지하 시인 구명운동 동참 △1982년 월간 시문학지 <시카쿠> 작품 투고로 데뷔 △1991년 ‘죽은 자를 다시 잉태하는 꿈’ 출간, 오구마히데오상과 요코하마시인회상 수상 △1993년 ‘영혼의 다이버’ 출간 △2004년 ‘답신’ 출간, 제4회 시토소조상 수상 △2012년 ‘꽃누르미’ 출간, 제46회 일본시인클럽상 수상 △현재 일본현대시인회, 일본시인클럽, 요코하마시인회, 사회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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