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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애도와 멜랑콜리/잃어버린 것들을 애도하며- 이은혜(이은기업교육·미술치료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 2014-11-1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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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이맘때면 사람들의 얼굴에서 언뜻 비치는 쓸쓸함과 허무의 흔적들을 발견하곤 한다. 12월은 한 해 동안 받은 사랑에 감사도 전하며 송년의 아쉬움을 나눠야 하기에 분주한 까닭일까? 1년을 보내면서 후회와 반성, 회한들은 항상 이 시기에 찾아드는 것 같다.

    올 한 해를 돌이켜 보니 사람 사는 일이 늘 그렇듯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시간의 흐름 속에 자연스레 지워지기도 더러는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잘 버텨 온 내가 기특하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도 창피해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의 필름들도 있다. 잃어버린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으련만 유독 아쉽고 부족했던 점에 마음이 쓰이고 그래서 자꾸만 씁쓸해지는 기분은 어떻게 달래야 할까? 이렇게 자신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고 늘 부족하다는 자책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능력과 완벽함을 요구하며 끝없이 다그치는 이 시대의 탓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자신의 삶의 속도는 잊어버린 채 다른 사람들의 인생궤도를 따라 마땅히 돌아야 한다는 ‘슈드비(should be) 콤플렉스’는 심한 자괴감을 안겨주고, 이런 과정에서 우울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하게 치부되기도 한다. 요즘 유행하는 ‘버킷 리스트’가 반영해 주듯 나이에 따라 획일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인생과업들이 당연시 되고, 당연한 것을 미처 따라가지 못할 때 경험하게 되는 상실의 아픔은 또 하나의 상처로 남게 된다.

    열심히 한 해를 살아온 당신, 그 무엇도 이룬 게 없는 것 같아 허무하다면, 그래서 자신이 초라하게만 보인다면 그래도 최선을 다한 자신을 다독이고 위로하며 진실로 자신을 애도해 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온 힘을 다해 달려왔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실망에 빠진 자신을 안아주고 불쌍히 여길 때 우울에서 헤어 나올 수 있다. 우리 문화의 장례의식이 그러하듯 깊은 슬픔을 나누는 애도의 과정은 이미 떠난 자에 대한 아쉬움을 정리하고 레테의 강을 건널 수 있도록 작별의 예식이 되어준다. 그래야만 산자들의 세상인 이곳에서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고 또다시 아름다운 추억들이 만들어지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반면 멜랑콜리란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상처받은 자기에 집착하는 병리적인 나르시즘이다.

    멜랑콜리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이 입은 상처가 제일 크고 아프다고 토로한다. 타인의 아픔은 보이지 않고 자신만 힘든 것 같아 우울하고 괴로운 이들은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데 골몰하다 결국은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내 사는 일도 이렇게 잠깐 점멸하다 마는 게 아닌가’ 싶은 불안감에 휘청거리는 일상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자신의 상처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냉소적인 우리에게 이렇게 일침을 가해 준다. “살아야 한다. 아무리 슬퍼도 현실을 직시하라. 왜냐하면 네가 사랑하던 그것은 이제 현실 속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모든 것은 흘러가고 사라진다. 그러나 내가 잃어버린 대상이 모든 열정을 바친 나의 일부라면, 소담한 꿈을 키우며 매일 물을 주고 가꾸던 나의 꽃밭이라면 진정 슬퍼할 일이다. 그러니 깊은 애도를 통해 멜랑콜리를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유난히 마음을 아프게 한 사건 사고가 많았던 한 해를 보내며 11월에는 진정으로 이 시대와 자신에게 애도를 표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눈물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과 영혼을 정화시키는 선물임을 기억하며 자신을 애도하고, 치열했던 삶의 시간을 애도하며 우리 자신을 위해 꺼이꺼이 뼈아픈 눈물을 흘려보자. 매슬로우의 이야기처럼 ‘물이 축축하다고, 나무가 푸르다고 불평하지 않듯이’ 자신의 상실과 상처를 깊이 수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의 치유는 시작된다.

    이은혜 이은기업교육·미술치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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