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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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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의 텃밭] (7) 이상옥 시인

내 가슴속 글산(章山) 키운 고성 장산숲과 장산교회

  • 기사입력 : 2014-07-2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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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옥 시인이 고향인 고성군 마암면 장산마을에 있는 장산숲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이 시인은 형이상학적 고뇌에 빠질 때면 장산숲 연못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곤 했단다./김관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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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인 고성으로 돌아와 살고 있는 이상옥 시인이 그에게 기독교적 세계관을 심어 준 집 앞 장산교회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20대 질풍노도의 시기에 도무지 풀 수 없는 형이상학적 아포리아로 고뇌하며 고향 장산마을 집앞 하천 둑을 거닐던 생각이 난다.

    고향 고성군 마암면 장산마을은 참 사색하기 좋은 공간이다. 배산임수로 집 뒤에는 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마을 앞에는 하천이 흐른다.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하천둑도 길게 죽 뻗어 있어서 산책하기 좋다. 나는 정서적으로 민감한 성향이라 생각이 많다. 이런 성향 때문에 삶이 많이 피곤한 건 사실이다.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숙명적으로 형이상학적 고뇌에 빠져 영원히 풀릴 것 같지 않은 우주의 오묘한 아포리아로 머리가 아플 때면 애견과 함께 하천둑을 거닐며 사유하거나 장산숲의 연못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보는 것이다.

    장산숲은 600년 전 바다와 강풍으로부터 장산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풍수지리적 의미가 깃든 일종의 방풍림이다. 장산숲은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마을숲 부문에 수상하기도 할 만큼 아름다워서, 예전에는 지방 유지들이 풍류를 즐겼던 곳이기도 하다.

    예배당과 하천과 숲을 글산(章山)이 병풍처럼 두른 곳이 바로 장산마을이다.

    집 대문을 나서면 바로 예배당이다. 예배당은 나의 놀이터요 의식 형성의 터전이다. 내 의식이 생길 때부터 장산교회가 있었으니, 이곳 장산교회는 건립된 지 50년도 넘을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장산교회에 다니면서 여름성경학교, 성탄절 등 즐거운 유년기를 보냈다. 왜, 예배당 바로 옆에서 태어나게 되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것 같아도 따지고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며칠 전 잠잘 때 문득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들렸다. 쿵쿵 하고 뛰는 심장 박동소리를 들으며 아, 이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인가, 하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면서 왜 어젯밤의 그런 생각이 또 떠오르는 것인지 모르겠다.

    소위 베이비부머 세대로 당시 장산마을에는 내 또래 아이들이 참 많았다. 지금은 다 뿔뿔이 흩어져 도시로 다들 나가 살고 있지만, 당시 장산마을은 아이들로 늘 왁자지껄했다. 산이나 들로, 숲으로 저수지로 몰려 다니며 아프리카 원주민 아이들처럼 자랐다.

    고성군 마암면 장산. 마을 뒤쪽 산의 형상이 마치 노루가 누워있는 것과 같아서 노루 ‘장(獐)’을 써서 장산(獐山)이라 불렀는데, 이곳이 배출한 조선조 중엽 퇴계의 제자였던 천산재(天山齋) 허천수(許千壽)의 문장이 널리 알려지면서 글 ‘장(章)’의 장산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장산(章山)은 글산인 셈이다. 나도 글산의 정기를 받아서 시인이 된 것일까.

    장산마을은 참 풍요롭다. 나는 예배당이 있어 형이상학적 문제에 일찍부터 고뇌하게 되고, 장산숲이 있어 성향 또한 서정적이 된 것 같다. 이런 환경 속에서 배 부른 돼지가 아니라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살아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예감하며 그런 정신적 형극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김관수 사진작가와 고향집에서 차를 마시며 章山(글산)을 같이 바라보다가, 산이 어머니 젖가슴 같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렇게도 볼 수 있지만, 크게 보면 여성이 옆으로 누워 있는 형상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렇게도 보였다.

    나는 시골집에서 가끔 어머니 젖가슴, 아니 어머님 같은 글산 위로 달이 뜨는 모습을 본다. 글산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보며 어머니를 그리워하기도 하는 것이다.

    “문 열고 엄마 하면/ 어머니는 “와 - ”// 이제 불러도/ 텅 빈 시골집// 갓 볶은 커피 마시며/ 창밖을 보니// 담장 너머/ 교회당 십자가 붉고// 젖가슴 위로/ 유년의 달이 뜬다“(졸시 <慕月堂> 전문)

    뭐니 뭐니 해도 내가 세계를 인식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집앞에 있는 예배당이다. 내 의식이 형성될 때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들려주는 성경말씀을 들으며 기독교적 세계관이 나의 정신 구조를 지배하게 되었을 것이다.

    “새벽이다/ 하늘은 사자, 아니 공룡,/ 뭐라 말을 하시는데/ 나는 사소한 생각에 가득 차/ 알아듣지 못한다/ 저녁 무렵/ 무화과를 따먹고/ 우물물을 길어 잎이며 줄기, 뿌리에/ 주었더니/ 지금 무색하게 비가 온다/ 이 년 전에 심은 무화과나무/ 기특하게/ 주렁주렁/ 지난주에 잠시 들러 듬뿍 따먹었는데/ 그새 또 붉은 빛을 드러내는,/ 먼 나라의/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와 사뭇 다른/ 시골집의 요녀석은/ 하늘 은총을 듬뿍 받고 섰다”(졸시 <교회당 옆> 전문)

    근자에 고향 마을에 다시 돌아왔다. 시골집을 리모델링했다. 조그마한 연못도 파고, 마당에 전에 있던 우물은 그대로 살려두고, 감나무, 살구나무, 석류나무, 유자나무, 모과나무, 대추나무 등도 새로 심었다. 무질서하게 있던 가옥들을 대부분 철거하고 작은 창고를 새로 하나 지었다. 시골살이에서 필요한 농기구 같은 것을 보관할 용도였는데, 그곳에 내 연구실에 있던 대부분의 책을 옮겨서 창고서재로 사용한다. 그곳에서 독서하면, 세상과 완전 차단된 듯하여 나와 책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골집은 작은 슬라브집 하나와 작은 창고서재, 나머지는 마당이다.

    지난 가을에 옮겨심은 마당의 나무들이 봄에 새싹을 틔우며, 연못에 수초들이 겨울을 견디고 살아나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적지 않다.

    여유 있을 때마다 시골집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며 예배당을 바라보며, 어머니 젖가슴 같은 글산을 바라보며 형이상학적 아포리아와 서정의 길목을 서성인다.

    전에는 형이상학적 아포리아 때문에 너무 고뇌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인간다운 사유고 삶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풀리지 않는 아포리아로 자주 머리가 아프지만 시골집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며, 하천둑을 거닐며, 숲에서 명상하며 지구별에서 유한한 내 삶은 축복이고 은혜라 생각하며 앞으로도 이 길을 걸을 것이다.



    <이상옥 약력> △1957년 고성 출생 △1989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유리그릇>, <그리운 외뿔> 외 다수 △고성문화원 부설 디카시연구소 소장, 창신대학교 교수

    <김관수 약력> △1956년 고성 출생 △개인전 15회 △경남사진학술연구원 원장, 대구예술대 사진영상과 겸임교수, 경남국제사진페스티벌 운영위원장, 한국사진학회 이사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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