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6월 21일 (금)
전체메뉴

[정연태 四柱 이야기] ‘세월호’에서 본 형님

  • 기사입력 : 2014-04-28 11:00:00
  •   


  • 그러니까 지금부터 정확히 40년 전인 1974년 2월 21일. 어머니는 해군에 간 아들의 첫 면회를 앞두고 분주했다.

    떡이며 통닭이며 음식을 장만하느라 부엌에서 새벽부터 움직였다. 오후가 되자 장만한 음식을 보자기에 싸고, 외삼촌을 데리고 설레는 가슴을 안고 해군 신병훈련소가 있는 진해로 출발했다. 드디어 내일은 우리 집 장남이며 대학 1학년이었던 나의 형님을 어머니가 첫 면회하는 날이었다.

    다음 날 22일, 어머니는 그렇게도 손꼽아 기다리던 아들을 만났다.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아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신병훈련을 마친 마지막 날, 통영 한산도의 충무공사당을 참배하고 돌아오던 배(YTL정)가 전복됐고, 그 속에 형님도 있었던 것이다.

    이 사고로 해군수병 159기로 입대한 신병훈련생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159기의 159명 사망,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 기이한 동일한 숫자였다.

    정원을 두 배 이상이나 초과했고, 기상조건이 나빠서 도저히 출항할 수 없는 환경이었는데도 출항했다. 선장은 급커브를 틀어 스스로 삼각파도를 만들어 좌초한 어이없는 인재(人災)였다.

    부모님은 그렇게 자식을 가슴에 묻고 오랫동안 눈물로 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부모님의 연세가 내 나이보다 적을 때였으니 그 비통함을 어떻게 견디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어머님은 지금도 이번 ‘세월호’ 사건과 같은 배 사고가 나면 가슴이 울렁거린다며 한숨으로 밤잠을 설친다.

    “이번에 희생된 사람이 다 같은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았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한꺼번에 사고를 당한 것입니까?” 역학을 한다는 죄로 요즘 참 많이 듣는 말이다.

    우선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은 분들의 명복을 빈다.

    역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사고를 조금이라도 예측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먼저 앞선다. 인간이 가진 예측 능력이 여기에까지 미칠 수 없으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부질없는 짓이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참으로 나약하기 그지없다. 물론 그들이 다 같은 운명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어디까지나 인재에 해당하는 것인 만큼 운명론적으로는 잘 설명이 안 된다. 하지만 궁색하나마 굳이 변명을 한다면, 인간은 인간 이전에 생명이며, 생명 이전에 자연이며, 자연 이전에 우주이니, 더 큰 법칙 속에 인간이 다친 경우라 하겠다.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그 자연의 큰 재난, 큰 사고에 개인의 운명이 묻혀 버리고 만 것이 아닐까.

    “제군들 수고했다. 자네들은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그것도 아주 잘…. 나는 자네들에게 더 이상의 것을 요구할 수 없다. 자네들의 임무는 이제 완전히 끝났다. 바다가 얼마나 험한 곳인지 잘 알 것이다. 이제 자네들의 살길을 찾아라. 신의 가호가 있기를….”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부딪치면서 침몰하는 순간, 구조활동에 전념하다 마침내 선교(船橋)에까지 물이 차오르자 이 말을 끝으로 조타실 문을 잠근 후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같이한 애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지만 우리는 언제 이런 사명의식이 있는 선장을 볼 수 있을까.


    역학연구가·정연태이름연구소 www.jname.kr (☏ 263-3777)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