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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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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비경 100선] (55) 통영 여황산 북포루에서 바라본 풍경

저 아래서 밀려오는 파란색 봄바다

  • 기사입력 : 2014-04-0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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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 여황산 북포루에서 바라본 통영 시가지와 바다. 왼쪽 남망산에 있는 흰색 건물이 시민문화회관이고, 남망산 왼쪽 멀리 한산도가 보인다.
    여황산 북포루.


    북포루에 올라서면 통영은 수채화가 된다. 레고블록으로 만든 크고 작은 건물들을 작은 호수 옆에 보기 좋게 배열한 미니어처처럼 여겨진다.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그의 시 <망악(望嶽)>에서 ‘대종부여하(岱宗夫如何: 태산은 대저 어떠한가?(중략) 회당릉절정(會當凌絶頂: 나 산 정상에 올라가) 일람중산소(一覽衆山小: 주위의 작은 산들이 얼마나 작은지 살펴 보리라)’라고 읊었다.

    북포루를 향해 산을 오르며 문득 떠올린 시구다.

    산에 오르면 겁이 없어진다. 수도한 이들이야 오히려 천하에 대한 경외를 느끼게 하는 게 산이겠지만 범인 (凡人)으로서는 그런 경지에 도달하기 어렵다. 눈에 밟히는 게 작은 천하인데 겁이 없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지사.

    북포루 들머리는 여황산 초입이다. 통영 멍게수협 맞은편이다. 북신동에 있는 북신해변공원을 지나면 멍게수협의 깨끗한 건물을 만난다. 멍게수협을 옆에 두고 녹음이 짙은 곳에 여황산이 있다. 그 정상에 통제영의 북측 경비 초소였던 북포루(北鋪樓)가 있고 그곳에서 ‘통영 천하’를 만난다.

    통영 천하를 보기 위해서는 먼저 알아둘 게 있다.

    통제영에는 당시 세 방향의 산정 초소가 있었다. 세병관을 중심으로 동쪽 동피랑에는 동포루, 서쪽 서피랑에는 서포루, 북쪽에는 북포루가 있었다. 피랑은 벼랑이라는 뜻의 통영 방언이다. 남쪽은 대양이니 별도의 산상 초소를 세울 필요가 없었다.

    문화관광부가 최근 통영의 서포루를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선정할 정도로 어느 곳을 가든 전망이 휼륭하다. 이들 3곳 중 굳이 북포루를 찾은 것은 통영의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데다 사방이 툭 트인 황홀한 장면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여황산으로 향하는 길은 동네 뒷산처럼 편안하다. 경사가 완만해 오르기에 부담이 없다.

    빽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대로 언덕과 조화를 이루는 적송들이 편안한 모습으로 등산객을 맞는다.

    어느새 꽃망울을 터뜨린 진달래는 붉은 황톳길에 핑크빛 여운을 남긴다. 가는 길에는 서너 곳의 쉼터가 있다. 힘든 산행코스는 아니지만 단숨에 오르기보다 잠시 잠시 쉬면서 산허리의 소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북신해변공원 앞바다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산에 오른 지 10분, 웬 성황당이 나타난다. 누가 언제부터 쌓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 크지 않은 주먹돌 무더기가 성황당을 이뤘다. 적황색의 리본을 금줄처럼 매단 성황당에 머리를 조아리는 이들은 과연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그런저런 생각들은 정상으로 향하는 뚜벅 걸음에 이내 묻혀 버린다.

    북서풍이 분다. 3월이면 통영에는 어김없이 부는 바람이다. 통영사람들은 그 바람을 ‘할매치맛바람’이라고 한다. 바람이 차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할매’가 치마를 날려봐야 얼마나 차갑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나 싶다.

    갑자기 바람이 드세다. 산정에서 불어오는 바람. 해발 174.2m 여황산의 정상에 부는 바람이다. 바람길 속에 드디어 북포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달랑 정자 하나. 그것도 시멘트를 주재료로 복원하는 바람에 목조건물이 주는 푸근함이나 정취는 없다.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당시 이런 모습의 망루가 있었고, 그곳에 우리의 수군 선조들이 차디찬 삭풍을 견뎌가며 나라를 지켰던 숭고한 역사적 사실을 간직한 지점이라는 정도라고 할까.

    여황산은 중국의 고사를 인용한 산 이름이다. 고사의 내용은 이렇다.

    고대 중국 오(吳)나라의 한 임금이 화려하고 호화로운 장식이 된 ‘여황’이라는 배를 무척 아꼈다. 그러나 배는 전투 중 적국인 초(楚)에 넘어갔고, 오 왕은 절치부심하다 다시 전쟁을 일으켜 초를 무찌르고 여황을 되찾았다는 이야기다. 여황은 ‘호화롭게 장식한 배’라는 뜻도 있지만 제대로 진용을 갖춘 전함(戰艦)도 상징한다.

    통영에 여황이라는 산 이름이 탄생한 것은 아마도 조일전쟁 당시 한산도에서 왜군을 맞아 대승을 거뒀던 조선수군 함대의 전과를 오가 초를 무찌르고 여황을 되찾은 것에 비견해 붙인 게 아닌가 싶다. 그 여황산은 300년간 조선수군을 사령했던 통제영을 감싸고 있고 그 통제영의 북측에 서 있던 망루가 북포루다.

    북포루에서 바라본 통영의 천하는 그야말로 환상이다. 눈을 시원하게 하는 남쪽 바다는 마음속 깊이 쌓인 상념의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낸다.

    아름다운 항구로 정평이 난 강구안을 중심으로 4척의 거북선이 포진해 있고, 아련히 보이는 통영대교의 자태도 곱다. 거북선을 중심으로 좌우에 포진한 중앙시장과 서호시장에서는 삶의 거친 숨결이 느껴진다. 강구안을 스쳐 유람선이 미끄러지듯 여객선 터미널로 들어선다. 스크루가 그려내는 삼각 물결이 마치 ‘월남치마’ 주름 같다. 씩씩거리는 거센 바람소리는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감상에 음의 조화를 보탠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최초로 통제영을 세운 제승당을 품은 한산도는 박무 속에 위용을 드러낸다. 충무공이 군수물자 조달기지로 활용했을 정도로 큰 섬이니, 희미하지만 웅대함은 그대로 전해진다. 미륵도를 오가는 케이블카도 보일 듯 말 듯하다.

    바다 오른쪽 도남관광단지에는 요트계류장과 함께 통영이 자랑하는 국제음악당이 있다. 충무마리나 리조트와 어우러져 왠지 모를 도시적 분위기를 풍긴다.

    시야 정면, 가장 먼 곳에 도남동이 보인다. 수년 전부터 침체 국면을 맞은 신화sb 등 중견 조선업체들이 집결해 있는 곳이다. 부두에 정박한 대형 선박들을 보면 경영부진에 처한 현실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북포루를 돌아 북쪽과 동쪽에는 성동조선과 SPP조선 등이 소재한 안정국가산업단지와 거제가 희미하게 보인다. 시계(市界)를 넘나드는 곳이 한곳에서 다 보이니 대단히 높은 곳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두보의 시구처럼 ‘회당릉절정 일람중산소’다. 모두가 작고 멀기만 하다. 다시 겁이 없어진다. 높은 곳에서 훌륭한 경치를 바라보는 프리미엄은 역시 겁없음이다. 북포루 앞 잔디밭 옆에 선 나뭇가지에 누군가 ‘3869번째 등정’이라는 리본을 달아놨다. 목표한 등정 횟수는 3000번인데 많이도 올랐다. 보고 보고도 또 보고 싶어서일까. 아마도 그랬으리라. 그럴 만한 가치가 있으니….

    글·사진= 허충호 기자 chhe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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