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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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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6·4선거 ‘출마자의 희망’이 ‘우리의 희망’인가- 허충호(논설실장)

  • 기사입력 : 2014-01-0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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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 보는 해도 결국은 작년에 봤던 해다. 대범한 눈으로 본다면 해가 뜨고 지는 일이나 해가 바뀌는 일은 그저 그런 물리적 과정이다. 작년 이 시기에 같은 지구에서 바라보는 것이니 별 다를 게 뭐 있겠냐고 하면 새삼 의미를 둘 이유도 없다. 그렇다고 지금 보는 해가 과연 작년의 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영원히 살 수 없는 인간들이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다. 올해의 해는 분명 어제와 다른 해다. 모양이 달라도 다르고, 온도가 달라도 다르다. 더 큰 다름은 그 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다. ‘어제 지금’의 내 마음이 ‘오늘 지금’의 내 마음과 다른 것처럼 그 해를 바라보는 마음도 분명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 새해 첫 일출을 바라보기 위해 밤을 도와가며 동해로, 산으로 향하는 이유다.

    해맞이에는 반드시 따르는 게 있다. 소원을 비는 일이다. 말없이 해만 바라보는 듯 보여도 실상 가슴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기원을 입안 가득히 머금고 있는 게 해맞이의 숨겨진 풍경이다. 해맞이의 목표는 결국 희망이다. 해맞이의 장엄한 대열에 서는 이들은 누구나 찬란한 빛에 희망을 건다. 그러기 위해 여명을 뚫고 산에 오르고 망양대에 서는 것이다. 지난 1일 해맞이에 참가한 이들의 상당수는 내심 해로부터 희망의 기운을 받았다고 여길 것이다. 기운의 실체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 에너지를 받았다고 여기는 것만으로도 해맞이의 목적 반 이상은 달성한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진 이들 중에는 6월 4일 늦은 밤이나 5일 새벽에 승리의 화환을 목에 걸었으면 하는 이들도 많았으리라. 6·4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라지만 레이스는 이미 시작됐다. 호수 위를 유영하는 오리가 사실은 쉴 새 없이 물갈퀴를 저어대고 있는 것처럼, 정중동의 부산함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앞으로 신문 지면마다 많은 출마자들의 동정이 실릴 것이다. 상당수는 익히 보아온 이들일 것이고 일부는 뉴 페이스일 것이다. 해맞이 대열에 선 그들 모두는 찬란한 햇살이 나의 것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함께 걸었을 것이다. 그들의 희망이 유권자들의 희망과 같은 내용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의 희망’이 ‘우리에게도 희망’이 돼야 한다는 등가성(等價性)이다.

    선거의 그림자가 다가오면 올수록 함께 묻어오는 우려가 있다. 상호 비난과 반목이 가져올 짜증스러움과 미심쩍은 직무수행능력과 취약한 진정성에서 나타나는 냉소다.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은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견인하기보다 오염원이 될 개연성이 높다. 웃음이 바이러스처럼 주변에 전파되듯 짜증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벌써 내편 네편으로 갈려 패거리를 형성하고 소리 없는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비패거리’들로서는 짜증스런 일이다.

    일부 자격 미달 인사들이 이런 대열에 합류하는 것은 더욱 우려스런 일이다. 최남선의 시 ‘해에게서 소년에게’에 언급한 이들이다. 조그만 산(山)모를 의지하거나/좁쌀 같은 작은 섬/ 손뼉만 한 땅을 가지고/그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부리면서/나 혼자 거룩하다 하는 자/이리 좀 오너라, 나를 보아라/처…… 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하략) (1908. 11. ‘소년’)

    이 시의 제목 중 해는 ‘바다(海)’를 말함이지만 한글로 적으면 해(日)인지 海인지 구분이 안 된다. 마치 선거판을 오가는 일부 인사들처럼…. 상황에 따라 잽싸게 바다나 해로 둘러대는 모습에서 유사성을 본다.

    기업들은 경기회복에 대한 불안감을 숨기지 않고 있고, 소비자들의 살림살이 전망지수는 아직 개선 기미가 없다. 사회 각 분야에서 ‘갈등 모드’는 지속되고 있고, 동북아를 중심으로 한 안보상황도 얼음판이다. 이런 판에 선거가 희망을 주기는커녕 짜증을 유발하는 존재가 돼서는 곤란하다. 능력과 실력, 도덕과 청렴, 양심과 진정성, 관용과 배려심을 가진 이들만이 6·4 선거판에 나설 자격이 있다. 진정한 지방자치는 ‘그들의 희망’이 ‘우리 모두의 희망’이 될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인물들이 선거판에 오르는 갑오년 지방선거를 기대한다. 그들의 희망이 우리에게도 희망이 됐으면 한다.

    허충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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