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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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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59) 김승강 시인이 자전거를 타고 간 창원 안민고개

풍경 속에 묻어있는 너의 기억들… 난 오늘, 널 만나러 간다

  • 기사입력 : 2013-08-2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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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민고개 입구에 초소처럼 서 있는 가게.


    안민고개 벚나무터널.


    천주교공동묘지. 공동묘지라 해도 전혀 음산하지 않다.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이 이럴까.
     

    중간지점을 조금 지나 있는 휴게소.

    휴게소에서 바라본 진해만. 진해만은 거대한 호수다. 호수 가운데 대죽도가 둥실 떠 있다.


    진해드림로드. 임도의 역할을 한다.


    안민고개 바로 밑 마을을 올라가면서 바라본 장복산.


    창원시 진해구 태백동과 성산구 안민동을 잇는 안민고갯길. 긁은선으로 표시된 곳이 필자가 자전거를 타고 다녀온 길이다.




    달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젯밤 열어둔 창문으로 달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도 달을 올려다보았다. 병아리처럼 술 한 모금 마시고 달 한 번 쳐다보고 술 한 모금 마시고 달 한 번 쳐다보고 했다. 그러기를 여러 번 술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은데 달이 떠날 줄을 몰랐다. 오늘은 유난히 헤어지기 싫은 모양이구나 하고 한참을 올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시인 이백이 그랬다. 이백은 <월하독작(月下獨酌)>이란 시에서 달에게 우정까지 느꼈다. 그러면서 먼 은하수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달이 누구기에 다시 만난단 말인가. 이백에게 달은 죽은 친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달은 타자의 존재를 표상한다. 또 나를 반영한다. 타자가 나를 반영하듯이. 이백이 그랬듯이 타자는 자아(나)가 규정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타자는 친구든 아내든 부모님이든 지금 내 곁에 없어 당장 만날 수 없는 존재!

    달은 ‘저기’ 있었다. 나는 ‘여기’ 있다. ‘여기’(나)는 ‘저기’(너)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타자는 어디에 있는가. 나를 반영하는 타자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타자는 풍경 속에 스며들어 있다. 타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타자가 스며들어 있는 풍경을 만나야 한다. 나는 풍경을 찾아 길을 나선다. 그것은 나를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당신의 자전거는 피의 에너지로 굴러간다

    무수한 땀구멍들이 벌어졌다 오므라들며 숨쉬는 연료

    뜨거워지는 연료 땀 솟구치는 연료

    그래서 진한 땀 냄새가 확 풍기는 연료

    당신의 2기통 콧구멍으로 내뿜는 무공해 배기가스는

    금방 맑은 바람이 되어 흩어진다

    달달달달 굴러가는 둥근 다리 둥근 발

    둥근 속도 위에서 피스톤처럼 힘차게 들썩거리는

    둥근 두 엉덩이와 둥근 대가리

    그 사이에서 더 가프르게 휘어지는 당신의 등뼈

    김기택의 <자전거 타는 사람〉중에서



    풍경 속에는 ‘너’(타자)와 나눈 기억들이 묻어 있다. 풍경을 만나고 풍경에 묻어 있는 기억들을 반추하는 데는 자전거가 제격이다. 자동차는 너무 빠르다. 한 풍경에서 ‘너’와의 기억을 제대로 떠올리기도 전에 다음 풍경이 육박해오기 때문이다. ‘너’를 오롯이 만나기 위해서는 ‘기름 에너지’로 달리는 자동차보다는 ‘피의 에너지’로 달리는 자전거가 낫다.

    자전거를 꺼내 기름수건으로 닦고 체인에 윤활유를 먹인다. 자전거를 거의 일 년 동안 타지 않았다. 대신 일 년 동안 나는 달렸다. 뒤따라오는 기억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던 것일까. 이제 달아나지 않겠다. 오롯이 ‘너’를 만나겠다. 풍경 속에서. 자전거 정비를 마치고 자전거 안장을 토닥토닥 두드려준다. 먼길을 나설 말의 잔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듯이.

    안민고개를 오른다. 경화동에서 진해구민회관으로 이어지는 고가도로 밑에서 간단히 몸을 풀고 자전거에 오른다. 안민고개가 시작되는 입구에는 슈퍼가 하나 있다. 슈퍼라기보다는 구멍가게라고 하는 게 맞겠다. 할머니 한 분이 평상에 나와 앉아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다. 날씨가 푹푹 찐다. 올여름은 유난히 덥다. 저 가게를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안민고개를 오르는 사람 중에서 여길 들렀다 가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손님을 기다린다기보다는 그냥 가게를 지키고 있다. 그냥 풍경으로 있다. 그 풍경이 짠해 사진을 한 장 찍는다.

    안민고개는 태백동복지회관에서 출발해 자전거로 20분 내외, 뛰어서는 30분 내외, 걸어서는 40분 내외면 오를 수 있다. 방금 그 구멍가게에서부터 벚나무가 시작된다. 말매미들이 일제히 나를 반겨준다. 벚나무가 시작되는 곳에서 안민생태교까지 걸어서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위해 목재데크가 놓여 있다. 5분쯤 페달을 밟고 있는데 뒤에서 소란한 기계음이 따라온다. 버스다.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전거를 타고가다 버스가 지나가면 긴장하게 된다. 이용하는 사람도 없는데 왜 좁은 고갯길을 버스가 다니는지 모르겠다. 나는 호흡을 잠시 멈춘다. 기계음이 지나가자 어디선가 기타음이 들린다. 클래식기타곡의 고전 ‘알함브라의 궁전’. 거친 호흡이 잠시 안정을 찾는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면 기타음이 벚나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리의 근원을 찾겠다고 자전거에서 내려 벚나무에 매단 스피커를 굳이 찾을 필요는 없다.

    좀 더 올라가면 천주교공원묘지가 나온다. 천주교공원묘지가 나오기 2~3분 전에 진해쪽 안민고개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정자가 하나 나오는데, 나는 이곳이 펼쳐보이는 풍경을 가장 좋아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진해쪽 안민고개 도로를 허리띠처럼 두르고 있는 장복산의 경사가 경화동쪽으로 급히 내려가는 것이 보인다. 이곳은 마치 스위스의 거대한 스키 슬로프를 연상하게 하는데, 볼 때마다 눈이 많이 온다면 스위스 못지않겠다고 생각한다. 경사면에 띄엄띄엄 붙어 있는 집들도 스위스의 여느 마을 풍경을 연상하게 한다. 또 눈길을 멀리 두면 시루봉과 천자봉이 아득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나는 시루봉 밑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어린시절 시루봉이 항상 나를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중늙은이가 된 지금까지도 시루봉의 시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 살고 있는 창원에서도 시루봉은 나를 곁눈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시루봉은 세상을 다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이십여 년 전에 진해를 떠나 사천에서 산 적이 있는데 그때도 나는 시루봉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았다. 시루봉은 정확히 해가 지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그때 나는 내가 살던 동향의 아파트 베란다에 나와 서서, 여기서 선을 그으면 정확히 시루봉과 맞닿겠지 하고 상상하고는 했다. 나는 그동안 부처님의 손바닥이 아니라 시루봉의 시선을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천주교공원묘지 앞에는 주차장이 있다. 아내는 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안민고개를 올랐다. 그러니까 나는 아픈 아내를 생각해 나에게 핸디캡을 준 것이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고 뒤따라와 보면 아직도 아내는 얼마 가지 못하고 저 앞에서 숨을 헐떡이며 가고 있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안민고개를 뛰어오르면서 저 앞에서 천천히 걷고 있는 아내의 기억을 애써 떨쳐내려고 했었다. 그러나 내가 앞으로도 계속 안민고개를 찾는다면, 아내와 나눈 그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

    공원묘지를 지나면 하늘공원으로 올라가는 길로 이어지는 지점이 나오고 그곳을 지나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게소가 나온다. 자전거에서 내려 사진을 한 장 찍고 음료수를 하나 샀다. 이곳은 드림로드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드림로드는 여기서 시작해 시루봉과 천자봉 허리춤을 돌아 웅천 방향으로 넘어간다.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싶으면 여기서 드림로드로 들어서면 된다. 물을 마신 뒤 진해 바다를 내려다보고 사진을 찍는다. 진해바다는 거대한 호수 같다. 해질 무렵이면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해는 마치 시연이라도 해보이듯이 천천히 서쪽으로 넘어간다.

    안민고개 마루에 도착하기 직전에 또 정자가 하나 나타난다. 지난해였던가, 여름 태풍 때 지붕이 날아가 최근에 다시 지붕을 올렸다. 이곳에 서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진해가 좌우로 병풍처럼 펼쳐진다. 밑을 내려다보는 순간 진해만에서 발원해 진해루를 거쳐 경화동을 지나온 골바람이 치달아 올라와 얼굴을 때린다. 화들짝 놀라면서도 기분이 상쾌하다. 골바람에 땀을 식히며 잠시 섰다.

    어느덧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고갯마루에는 안민생태교가 있다. 안민생태교가 개선문처럼 나를 맞는다. 조금 더 가면 창원쪽의 마지막 정자가 나타나고 그 위로 제법 넓은 공간이 있다. 중년부부들, 젊은 연인들이 여기저기 모여 땀을 닦고 있다. 형형색색의 자전거도 보인다. 저쪽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내 친구부부가 나타난다. 그들도 매주 일요일이면 안민고개를 찾는다. 그들은 풍호동에서 드림로드를 걸어 올라온다.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친구 아내가 준비해온 막걸리와 안주를 주섬주섬 풀어놓는다. 우리는 지난 일주일 시간의 고개를 무사히 넘어온 것을 자축한다. 사실 우리가 나누는 자축의 술잔에는 자조가 섞여 있다. 또 고개 하나를 무사히 넘어왔다는 안도감보다는 자축의 술잔에 더 구미가 당겨 매주 안민고개를 찾는다는 것을 우리는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축의 시간을 부디 건강히 오래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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