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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 (52) 유홍준 시인이 찾은 거창 수승대

들어보시라, 산과 물의 여름노래

  • 기사입력 : 2013-06-2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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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학동 계곡 한가운데 있는 수승대. 뒤쪽으로 거북바위가 보인다.
    요수정
    관수루
    수승대 징검다리
    황산마을 돌담장길
    황산마을 원학고가
    정온고택
    반구헌






    경남에서 ‘요산요수(樂山樂水)’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 어디일까?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수승대(搜勝臺)를 가려면 대진고속도로 지곡IC에서 안의를 거쳐 거창군 마리면에서 가는 방법과, 진주에서 국도를 타고 산청→생초→수동→안의→마리를 거쳐 가는 방법이 있다. 창원에서는 한 시간 반 혹은 두 시간이 걸린다.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다. 그러나 한 번쯤은 반드시 가볼 만한 곳이다.

    수승대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영남 제일의 동천으로 쳤던 ‘안의삼동(安義三洞)’ 중 하나인 ‘원학동(猿鶴洞)’에 위치해 있다. 그러니까 ‘좌 안동 우 함양’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안의삼동이란 농월정, 동호정, 군자정 거연정 등이 있는 화림동(花林洞)과 심원정, 용추폭포 등이 있는 심진동(尋眞洞), 그리고 수승대가 있는 원학동을 일컫는 말이다.

    안의삼동을 둘러보면 지금도 옛 선비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위에 새겨진 수많은 각자(刻字)와 정자와 고택들, 그리고 아름드리 고목들과 힘찬 산세들이 뿜어내는 어떤 분위기, 도시문명과 거리상으로도 제법 떨어진 그곳에서 만나는 느낌은 고색(古色)이다.

    안의삼동 유람은 내 생애 최초의 여행이었다. 1960년대 말, 나는 갓 쓰고 두루마기 입은 증조부님을 따라 원학동 수승대 여행길에 올랐었다. 사근(수동)에서 안의 가는 버스를 탔고, 다시 안의에서 거창 가는 버스를 탔고, 진산리(마리)에서 내려 위천까지 걸어걸어 갔다. 신작로에는 자갈이 잔뜩 깔려 있었고, 길가엔 키 크고 홀쭉한 미루나무들이 서 있었다. 그 길 옆엔 벼 자라는 냄새가 나는 논이 있었고, 논 너머엔 강이 있었다. 깜장 반바지에 흰 반팔소매 빡빡머리, 지금 그 여행의 흔적은 요수정(樂水亭) 앞에서 찍은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다.

    마리면에서 위천 방향으로 좌회전, 조금만 더 가면 왼편에 옛 정자 같은 것이 보인다. 영승(영송) 마을이다. 옛 신라와 백제의 사신들이 이곳에서 영접을 하고 환송을 했다 해서 영송(迎送)이라 불리던 것을 퇴계 이황이 장인 권질(權瓆)의 회갑을 맞아 이곳을 찾았다가 영승(迎勝)으로 고쳤다 한다. 사락정(四樂亭)이 있다.

    영승마을에서 조금만 더 가면 길옆에 소나무와 바위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풍경 하나를 만난다. 원학동이라고 새겨진 글자를 볼 수 있다. 수오재조선생유영지소(守吾齋趙先生游之所)라 새겨진 글자를 만날 수 있고, 복양시사(復陽詩社)라 새겨진 글자 옆에 열댓 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 바위를 지나면 이내 만나는 게 수승대다.

    수승대는 원학동 계곡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며, 화강암 암반 위로 흐르는 맑은 물과 사철 푸른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보여준다. 국가지정 명승 제53호다. ‘수승대’란 명칭과 관련하여 쓴 퇴계 이황의 개명시(改名詩)와 갈천 임훈의 화답시(和答詩), 요수 신권의 시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영승(영송)에 왔던 퇴계 이황이 쓴 시는 이렇다.


    수송을 수승이라 새롭게 이름하노니

    봄을 만난 경치 더욱 아름답구나

    먼 산의 꽃들은 방긋거리고

    응달진 골짜기에 잔설이 보이누나

    나의 눈 수승대로 자꾸만 쏠려

    수승을 그리는 마음 더욱 간절하다.

    언젠가 한 두루미 술을 가지고

    수승의 절경을 만끽하리라


    옛 백제가 멸망할 무렵 이 대(臺)에서 사신을 송별하였는데, 돌아오지 못할 것을 슬퍼해 근심 수(愁)에 보낼 송(送)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하던 것을 퇴계 이황이 그 내력을 듣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여겨 소리가 비슷한 ‘수승대’라고 고쳤다 한다.

    그러나 이 수승대를 두고 임씨와 신씨 가문의 탐욕으로 얼룩졌던 다툼의 역사를 생각하면 조선시대 양반가에 대한 알 수 없는 미움과 역겨움마저 싹튼다. 수승대 거북바위에 새겨진 이름들을 살펴보면 유독 임씨와 신씨가 많은데, 권력이 높아지고 낮아짐에 따라 수승대의 소유권을 두고 두 가문은 치열하게 다투었다고 한다.

    요수 신권의 신씨 가문은 수승대 거북바위에 요수장수지대(樂水藏修之臺)라 새겼고, 갈천 임훈의 임씨 가문은 갈천장구지소(葛川杖之所)라 새겼다. 숨어서(藏) 수양하는(修) 곳과 지팡이(杖) 짚고 신발() 끌던 곳이란 의미다.

    두 가문의 다툼을 두고 조선 말기 문장가 이건창은 이렇게 말했다.

    “수승대는 시냇물 한가운데 있는 한갓 바위일 뿐이니 누구 소유가 될 물건은 아니다. 그러니 어찌 소송이 있겠는가. 이곳의 아름다움은 빼어나지만 두 집안의 비루함은 민망하다.

    그렇다. 산고수장(山高水長), 산은 높고 물은 영원한데 인간은 고작 이 모양이다. 수승대란 각자(刻字) 바로 밑에 경상감사를 지낸 김양순(金陽淳)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니 이 또한 민망하다. 권력을 가진 인간들은 왜 이렇게 자연에다 지워지지 않을 이름을 새겨 스스로를 욕되게 했을까.

    어쨌든 수승대 양쪽엔 요수정(樂水亭)과 관수루(觀水樓)가 남아 있어 요산요수하던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산수유람 문화가 아직도 잘 보존되어 있다. 구연서원(龜淵書院)도 볼거리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 요산요수의 장소에서 거창국제연극제가 펼쳐질 것이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승대와 연극과 물놀이를 즐기고만 간다. 그러나 그건 참 아쉬운 일이다. 수승대 주차장을 빠져나와 곧바로 길 건너 마을(황산)로 가보시라. 거기, 정말로 멋진 조선시대 가옥들과 돌담장 길을 만날 수 있다.

    신씨고가는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17호다. 마침 내가 찾아간 날은 일꾼들이 부지런히 움직여 신씨고가를 단장 중이었다.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민박을 칠 준비를 한다는 것이었다. 안주인의 말을 빌리면 최고급으로 도배를 하고 한 채에 100만 원짜리 이불을 산다고 했다. 왜 그렇게 고급으로 하냐는 질문에 안주인은 군(郡)에서 그렇게 하라고 지시가 내려왔다는 거였다.

    원학고가(猿鶴古家)도 정말로 멋지다. 그러나 옛집과 돌담장만 보고 말면 이것도 바보다. 황산마을은 구석구석을 돌아보아야 한다. 마을회관을 지나 농가들 쪽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벽화들을 만난다. 이 또한 멋진 구경거리다. 수승대만 들르고 황산마을 가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수도 있다.

    나는 황산마을을 벗어나 위천초등학교 뒤편 정온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205호)으로 갔다. 동계 정온은 인조 때 사람으로 광해군의 미움을 받아 제주도로 유배를 갔다가 인조반정으로 풀려난 사람이었다. 병자호란 때는 최명길의 주화에 맞서 척화를 주장했다. 소신을 행동으로 옮기는 모범을 보인 이가 동계 정온이었다. 정온고택에는 추사 김정희가 쓴 충신당(忠信堂)이란 현판이 붙어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옆에 붙은 모와(某窩)라는 현판에 왠지 더 눈길이 간다. 정온고택에서 십리를 가면 모리재(某里齋)가 있다. 모리(某里)는 ‘내 거처를 물으면 모르는 곳으로 갔다’고 한 동계 선생의 말에서 유래했다.

    정온고택 바로 옆에는 반구헌(문화재자료 제232호)이 있다. 반구(反求)는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한다’는 뜻이다. 반구헌은 철종 때 사람 정기필의 거처였다. 재밌는 것은 정기필의 호가 야옹(野翁)이었다는 거였다. 나는 절로 웃음이 번졌다. 나도 그런 호 하나쯤은 갖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안의삼동은 내 증조부님이 태어나신 곳이고 내 일가붙이들이 사는 곳이다. 선산이 다 이곳에 있어서 벌초 때가 되면 안의삼동에 모여 회의도 하고 음식들도 나눈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요산요수의 최적지라고 하는 것일까?

    아니다. 수승대를 지나면 거창군 북상면 월성계곡이고, 이 계곡 또한 남덕유의 물이 흘러흘러 빼어난 경관을 자아낸다. 강선대(降仙臺), 분설담(噴雪潭) 등이 있다. 수승대와 멀지 않은 곳, 거창 초입엔 건계정(建溪亭)이 있고 건계정 뒤엔 거열산성(居列山城)이 있다. 유안청폭포와 석불, 휴양림으로 유명한 금원산 계곡도 근처다. 신연당 혹은 원학산인으로 불렸던 어의(御醫) 유의태 역시 이곳 거창군 위천면에서 태어났다. 미리 공부를 하고 가면 정말로 엄청난 이야기와 역사가 있는 곳이 안의삼동이다.

    월성계곡을 거쳐 함양군 서상면으로 넘어가는 도로도 잘 닦여 있다. 서상면에서 화림동 정자 구경을 나서는 것도 좋고, 백전면으로 또 고개 하나를 넘어서 오지 드라이브를 하는 것도 있다. 아직도 이곳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올여름 요산요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 안의삼동으로의 여행을 추천한다.

    글·사진=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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