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9일 (금)
전체메뉴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 (48) 배한봉 시인이 찾은 함양 상림

짙푸른 녹음 사이로 흐르는 천년의 시간

  • 기사입력 : 2013-05-23 01:00:00
  •   
  •  



    상림 안에 있는 정자 ‘함화루’
    ‘사운정’
    숲 옆에 조성된 연못. 수련을 보며 징검다리를 건너는 재미가 쏠쏠하다.




    신록이 벌써 검푸른 빛을 띤다. 채 봄을 느끼기도 전에 여름이 시작되는 것 같다. 이맘때면 가는 봄날이 아쉬워서 사람들은 현실의 ‘나’를 잠시 반납하고 신록의 오솔길 걸으며 산책하는 여유를 즐길 여행을 꿈꾼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함양의 상림(上林, 천연기념물 제154호)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책하면서 깊어진 봄의 기운을 한껏 느끼기 딱 좋은 곳이다. 상림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99’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상림은 함양읍내 외곽에 만들어진 인공 숲이다. 하지만 최근에 조성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옛날인 신라 진성여왕(887~897) 때 만들어진 숲이다. 그러니까 함양 상림은 천년의 시간이 나이테로 새겨져 있는 숲이다. 천 년 나이테에는 애민사상이 숨 쉰다. 당시 함양 사람들은 홍수 때마다 읍내 복판을 관통하는 위천(渭川)이 범람하여 큰 고통을 겪었다. 함양 태수로 부임한 고운 최치원(857~?)은 백성들을 동원, 둑을 쌓아 물길을 읍내 외곽으로 돌리고, 그 둑을 따라 나무를 심어 대관림이라는 숲을 조성했다. 이때 최치원은 지리산과 백운산에서 활엽수를 직접 옮겨와 심었다 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 뒤 홍수로 둑이 붕괴돼 숲이 유실되고, 그곳에 민가가 들어서 대관림은 상림과 하림으로 나눠지게 되었다. 그 뒤 하림 일대에도 마을이 들어서 결국 상림만 남게 됐다. 5만6000평에 달하던 상림이 점차 줄어들어 지금은 3만6000평 정도만 남았다. 인공숲이지만, 천 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면서 천연림과 다를 바 없는 자연스러움을 갖추었다.

    나는 고운광장 입구에 서 있는 금호미손 조형물을 본 뒤 숲을 향해 걷는다. 고운 최치운이 대관림 조성을 끝낸 뒤 작업 종료를 선언하는 표시로 금호미를 던지자 숲속 신목 가지에 걸려 소리를 냈다고 한다. 이 소리를 시작으로 함양 땅은 일체의 재앙이 들어오지 않는 낙토로 바뀌었다는 전설을 기려 금호미손 조형물을 세웠다고 한다.

    천년의 숲은 깊다. 숲에 들어서자 천년 전의 푸른 숨소리가 싱그럽게 내 폐 속 깊숙이 빨려들어 온다. 도시의 삶이 끌고 온 피로와 권태, 숨 가쁜 긴장의 끈이 풀린다. 이따금 흙냄새가 향수(鄕愁)인 듯 코끝을 스친다. 새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숲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 개울 물소리가 끊이지 않고 귀를 맑게 씻어준다. 천년 전의 바람은 오솔길을 걷는 산책자들의 등을 감싸며 흐르고 있다. 온몸을 가볍게 만드는 이 상쾌한 기운. 어느새 몸과 마음에서 푸른 나뭇잎 냄새가 난다.

    상림 오솔길을 걸으며 나는 이상향을 꿈꾸었던 목민관 최치원의 친자연적 치수사업의 지혜를 생각한다. 홍수의 피해로부터 농경지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물길을 돌리는 둑을 쌓되 나무를 심어 자연스러움을 더한 문화적 생태적 혜안은 몇 년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4대강 사업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4대강 사업 찬성론자들은 독일운하를 예로 들며 경제성 운운했지만, 한국은 베네치아가 아니다. 당일 배송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시대에 배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3일이나 걸리는 운하가 도대체 얼마나 경제성이 있다는 것인지 나는 지금도 도무지 모르겠다. 관광 차원이라는 핑계도 가관이다. 우리나라 4대 강을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피오르드 해안으로 착각하지 않는다면 금방 답이 나올 문제다. 그뿐인가. 70%가 산악인 우리나라 지형 특성 때문에 보를 설치해 층계가 있는 강을 만들었는데, 이건 삼척동자도 웃을, 자연적 요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이다. 독일은 평지니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나라 지형과 비슷한 스위스는 꿈도 꾸지 않는 일이다. 가뭄 대비용이라는 말은 또 어떤가. 수량의 최저 최고 비율이 독일 라인강은 14배이지만 낙동강은 260배에 이른다. 차라리 댐 16개를 더 만들겠다고 하는 게 솔직한 말이다. 이건 약과다. 산을 뚫고 강을 파내 콘크리트로 막는 자연 재앙은 상상 불가다. 강은 휘어지며 흘러야 자연스럽게 일정한 유속을 유지한다. 그런데 물길을 반듯하게 만들고 바닥을 긁어내 수심이 깊어지면 물살은 강해진다. 오히려 홍수를 부추기는 형국이 되었다. 생태계 변화와 재앙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니까 상림은 독선과 아집으로 얼룩진 정치실험무대가 아니라 최치원이 지혜와 상생정신으로 애민사상을 실현한 정치적 실천 무대이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할 지혜와 덕목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오솔길에는 주말이라 그런지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가족도 보이고, 연인도 자주 눈에 띈다. 상림에는 함화루(咸化樓), 사운정(思雲亭) 등 아름다운 정자와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文昌侯 崔先生 神道碑,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5호), 만세기념비, 척화비, 역대군수 현감선정비석과 역사인물공원, 마당바위, 연리목, 장승 등 다양한 볼거리가 산재해 있다.

    특히 숲 한가운데 놓인 이은리 석불(吏隱里石佛,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을 보는 즐거움은 함양 상림이 주는 공짜 선물이다. 두 손이 떨어져 나간 이 석불은 투박하지만 주름이 두텁고 선명하며 머리 부분에 연꽃 무늬를 돋을새김으로 장식한 것이 특징인데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또 숲 옆에 조성된 연못도 빼놓지 않아야 할 볼거리다. 수련을 감상하면서 이곳 못에 만들어놓은 징검다리를 건너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또 한쪽에서는 나무로 만든 나루터가 여행객들의 발길을 기다리며 햇볕을 한아름 안고 있다.

    벌써 저녁 어스름이 내린다. 제주도 대정고등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직한 뒤 함양으로 들어와 병곡면 원티마을에 정착한 문복주 시인에게 전화를 넣는다.



    밤길 집에 오르다 보면

    새끼 고라니 얼마나 외로웠는지

    길가에 나와 겅중거리다 놀란 눈으로

    숲에 숨는다

    밤 고양이도 오소리도 텃새도

    밤길 가다 마주친다

    이 밤 얼마나 외로웠으면

    외진 길가에 나앉아 펑펑 우는 것일까

    나도 집으로 가면서

    산길 오르며 흐느낀 적 있다

    무언가 잘못 산 것 같아

    적막한 산골 집으로 가면서

    알지 못할 눈물에 흐릿한 길 더듬으며

    무엇에 자석처럼 이끌리며

    눈물 펑펑 흘리며 어릿어릿 집으로 간 적 있다

    -문복주, ‘밤길’, 시집 <철학자 산들이>(2013)에서



    함양상림을 구성하고 있는 식물들로는 갈참나무·졸참나무 등 참나무류와 개서어나무류가 주를 이루며, 왕머루와 칡 등이 얽히어 마치 계곡의 자연 식생을 연상시킨다. 빈틈없이 들어찬 2만여 그루의 이 활엽수들로 인해 가을이면 온 숲이 울긋불긋한 오색단풍으로 치장된다. 또 9~10월에는 꽃무릇 잔치도 벌어진다.

    상림 오솔길은 연인이나 가족이 여유를 누리면서 가슴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랑의 숲이요 사색과 낭만의 숲이다. 하지만 숲을 빠져나가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아웅다웅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삶의 묘미이긴 하겠지만, 이 숲에 있는 동안만큼은 천년 숲의 나무들처럼 눌러앉고 싶어진다. 천년 숲의 식구로 살고 싶어진다.

    글·사진= 배한봉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조고운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