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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설립 10주년 맞은 마산 로뎀의 집 조정혜 관장

“나는 상처 입은 소녀들 보듬는 엄마입니다”

  • 기사입력 : 2013-04-1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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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정혜 마산 로뎀의 집 관장은 상처입은 꽃송이(소녀)가 이곳에서 향기를 찾아 예뻐다고 한다. 조 관장의 미소가 설립 10주년을 맞아 보내온 난과 함께 은은한 향기가 로뎀의 집을 가득채우고 있다.


    조 관장이 상처입은 소녀를 안아주고 있다.


    가출 여학생, 폭력·성폭력 피해 여학생, 임신 여학생들의 쉼터인 창원시 마산회원구 ‘로뎀의 집’이 지난 3월 31일로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오갈 곳 없는 여성 청소년들의 안식처로, 부모 없는 어린 양들의 보호자로, 배움터 잃은 학생들의 선생님으로, 칠흑바다에서 항로를 비춰주는 등대 역할을 하면서 쉼없이 달려온 3650일의 세월. 로뎀의 집 조정혜(54) 관장과 사회복지사 등은 자신을 돌보기보다는 도움이 절실한 여학생들을 늘 지지하면서 그들 곁을 항상 지키고 있었다. 더욱이 조정혜 관장은 나환자촌 봉사와 여성교육 매진, 상처 입은 여학생들과의 동거를 통해 정작 자신은 가정을 꾸리지 못한 ‘미혼’이지만, 로뎀의 집 여학생들에게는 ‘엄마’라는 직분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밟히고 찢긴 어린 들꽃들이 저의 연인이에요

    지난 1997년 말에 불어닥친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은 수많은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넣었다. 여러 가지 사회병폐가 연일 신문·방송에 등장할 때 조정혜 관장은 소녀들이 불가피하게 가출하더라도 유해환경에 빠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했다.

    그런 조 관장은 천주교 마산교구청에 위기소녀들에 대한 구제책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알렸고, 마산교구청은 조 관장의 요청대로 1998년 11월 11일 가출과 위기소녀들의 24시간 열려 있는 쉼터를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마산 석전동 마산역 앞에 있는 ‘해바라기쉼터’였다. 당시 조 관장과 직원 2명 등 총 3명이 24시간 돌아가면서 5년 동안 위기소녀들의 상담을 도맡았다.

    하지만 조 관장은 더 많은 소녀들에게 장기 숙식하면서 보다 나은 상담과 시설을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또다시 마산교구청으로 달려가 장기시설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에 마산교구청이 땅을 구입하고, 정부에서 건물을 지어 2003년 3월 31일 오늘날 로뎀의 집을 탄생시켰다.

    조 관장은 직책이 몇 개 있다. 로뎀의 집 관장, 로뎀학교 교장, 그룹홈 로뎀자리 관장 등 3개. 맡고 있는 직책 모두가 생활시설, 교육시설 등으로 연결돼 있다.

    중학교 1학년부터 19세 가출, 성폭력·임신소녀들의 장기생활시설인 ‘로뎀의 집’에는 현재 20명의 소녀들이 숙식하며 가정처럼 생활하고 있다. 10년 전 9명의 소녀가 입소했던 것에 비하면 시설이 많이 커진 셈이다.

    임신 여학생과 학업중단 등 고위험 소녀 6명이 교육받는 ‘로뎀학교’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수업이 진행되는 위탁 대안교육기관이다.

    나이가 만 19세를 넘어버려 로뎀의 집을 나와야 하는 소녀들은 마산합포구청 근처에 있는 ‘그룹홈 로뎀자리’에서 또다시 조 관장과 생활한다. 조 관장은 직장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로뎀자리로 돌아오는 소녀들과 같이 반찬을 만들고 밥을 먹으며 하루 일과를 이야기한 후 그곳에서 소녀들과 같이 잠자리에 든다.



    씨앗을 품어버린 어린 꽃도 있지요

    조 관장은 자신을 찾아오는 소녀들이 아직 자신의 미래를 위한 꿈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소녀들 스스로가 자신을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유도하고, 가정에서처럼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고 관심을 기울이며 애정을 쏟기 시작했다.

    더욱이 가출해 돌아다니다가 잠자리가 없으면 남자친구와 함께 지내다가 암묵적인 폭력에 의해 관계를 맺어 임신한 채 자신을 찾아오는 소녀들에게는 더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이미 가출했기 때문에 가족들과의 소통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만약 가족들에게 연락해 임신 사실을 알리면 또다시 폭력이 이어질 수 있어 소녀들은 가족과 연락하지 않고 시설을 찾아가게 된다.

    임신 소녀들이 이곳에 수업도 해주고, 특성화 프로그램들도 많이 진행한다. 조 관장은 프로그램을 선택할 때 전적으로 임신한 소녀의 욕구와 적성에 맞는 교육만을 고집해 교육 성과를 높이고 있다.

    조 관장은 가출 임신 여학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결국 가정이 회복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학교의 성교육이 강의 위주의 집단 교육을 해서는 효과가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조 관장은 생명경시 풍조인 낙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현행법을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현행법은 소녀들이 출산하면 입양하기까지의 일주일간은 소녀 자신의 호적에 등재해야 하는 ‘낙인현상’이 생겨 소녀들이 임신하면 곧바로 낙태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300만~500만 원에 달하는 불법낙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성매매 등 유해환경에 노출되는 악순환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조 관장은 관련 법이 생명경시 풍조를 확산시키고 있는 만큼 조속한 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늘 강조한다.



    3650일 동안 사랑이라는 영양분 듬뿍 뿌렸죠

    로뎀의 집에는 밥상철학과 14가지의 생활철학이 있다. 친구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 함께 식사하는 것과 늦게 오는 친구를 위해 항상 음식을 남겨놓는 밥상철학은 행복했던 가정의 느낌을 불러일으켜 준다.

    정직하자는 것, 나누겠다는 것, 할 일을 다하겠다는 것, 책임감을 갖고 배려하며 사랑하겠다는 것 등을 강조하는 14가지 생활철학은 소녀들에게 마음을 차분히 다스릴 수 있는 사유의 철학을 제공하기도 한다.

    알차게 정선된 프로그램에다 조 관장을 비롯한 사회복지사 등 9명의 직원들이 정성과 최선을 다하면서 상처 입은 소녀들은 치유의 공간에서, 사유의 철학으로, 공존의 생존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로뎀의 집 직원들은 소녀들의 프로그램 진행과 상담, 캠프, 적성프로그램 운영에다가 시설의 전반적인 행정업무와 당직도 맡고 있다. 임신소녀들이 출산하면 산후도우미 역할까지 한다. 과도한 업무지만 로뎀의 집 특유의 팀워크를 자랑하며 서로서로 솔선수범해 소녀들을 챙기고 있는 직원들이 너무 기특하고 고맙다는 게 조 관장의 고백이다.

    직원들의 노력도 효과를 보고 있지만 지역사회 단체의 도움도 컸다. 10년 동안 반찬봉사를 해준 수림회, 허드렛일을 도맡아주는 모범재소자회인 보라미봉사단, 창원시 여성발전기금 지원, 자원봉사자 회원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줘 오늘까지, 또 앞으로도 쭉 소녀들을 지켜주고 있다.



    조금 늦었지만 향기 찾은 꽃들이 너무 예뻐요

    조 관장 등 로뎀의 집 직원들의 3650일 정성은 상처 입고 굳게 닫아 버린 소녀들의 마음의 문을 하나하나 열기 시작했다. 방과후 로뎀의 집으로 돌아오면 항상 반갑게 맞아주는 관장 엄마와 사회복지사 언니·오빠가 있어 심리적 지지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 소녀들이 이곳으로 오면 직원들은 독립계획서를 만든다. 1~2개월간은 가족애를 가르치고, 3~4개월째는 적성을 파악하며, 6개월쯤 되면 소녀들이 하고 싶은 것을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등록시켜 준다. 늦었지만 서서히 자기 인생설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로뎀의 집 소녀들은 여타 또래들보다 인생설계를 빨리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떠날 소녀들을 위해 조 관장은 직업훈련을 등록해서 취업을 돕고, 공부가 하고 싶어 진학을 희망하면 대학도 보내준다. 조 관장은 소녀들의 취업·진학 욕구를 맞춰주기 위해 지역사회로부터 후원금을 모으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렇게 10년 동안 ‘상처 입은 꽃송이’ 2801명이 다녀갔다. 직원들은 이들에게 7만810일의 봉사를 했다.

    그렇게 독립한 소녀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로뎀의 집으로 찾아온단다. 여기가 바로 자신들의 집이니까.

    또 결혼해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도 한단다. 조 관장이 있는 로뎀의 집이 바로 친정이니까.

    지난 10년간 소녀들의 눈높이를 충분히 맞추지 못해 미안하다고 밝히는 조 관장은 “이곳을 거쳐간 소녀들이 성장해 사회 곳곳에서 전문가로 일하거나, 남을 위한 봉사와 나눔을 실천할 때 이 일을 참 잘했구나라고 생각한다”고 밝힌다.

    또 “밤 문화에 지쳐 있는 소녀들이 도움의 손길로 재기의 길을 빨리 찾을 수 있도록 따뜻한 시선과 관심의 지지를 보내줘야 한다”고 사회에 당부했다.

    조 관장은 지난 2월 7일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주최한 제7회 생명의 신비상 시상식에서 청소년 낙태예방과 생명운동에 앞장선 공로로 장려상을 받았다.

    그런 조 관장은 여성으로서 정말 가야 할 길을 가고 싶다고 말한다. 한 가정을 위해 살기보다 다른 많은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다고 한다.

    여성으로서 이론과 실무에 강한 조 관장은 어느 강한 남성보다 더 강하고, 어느 부드러운 여성보다 더 부드럽고, 어느 착한 엄마보다 더 착한 엄마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글= 조윤제 기자 cho@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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