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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몸에 좋고 보기 좋은 집 (9) 함안군 가야읍 산서리 차승현·이정숙씨 집

오남매가 부모님 위해 지은 ‘孝心家’

  • 기사입력 : 2013-02-1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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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안군 가야읍 산서리의 들판 한가운데 2층 목조주택으로 지어진 차승현·이정숙 씨 집.
    2층 높이로 만들어진 거실에서 차승현·이정숙 씨가 차를 마시고 있다. 대형 창을 통해 밝고 따뜻한 햇빛이 가득 들어온다.
    햇빛이 잘 들게 하기 위해 설치한 대형 채광창.
    바깥 경치를 보고 싶어 하는 이정숙 씨를 위해 2층에 만든 방.
    2층 작은 방에는 소파와 TV가 있어 작은 거실 역할을 한다.



    사방이 비닐하우스에 둘러싸여 하늘만 뻥 뚫린 집에 5남매가 살았다. 집이 낮아 천장은 머리에 닿고 햇빛 한 줌 들지 않았다. 5남매는 이 집에서 그렇게 장성했다.

    세월이 흘러 5남매의 어머니 이정숙(72) 씨는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겨울에는 아예 찾아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집이 유난히 외풍이 심해 담요로 사방을 둘러쳐야 냉기가 조금 나아질 만큼 추웠기 때문이다.

    5남매는 머리를 맞댔다. 부모님에게 보은의 선물로 집을 지어주기로 했다. 아버지 차승현(75) 씨는 단번에 거절했다. 5남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을 주기 싫어서였다. 그렇게 아버지와 5남매의 밀고 당기기는 시작됐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지난 2011년 설날, 드디어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졌다.

    5남매는 아버지의 마음이 바뀔까 곧바로 공사에 착수해 5개월 만에 2층짜리 목조주택을 지어 선물했다.



    ◆사랑이 숨 쉬는 2층 목조주택

    함안IC에서 법수 방면으로 5분 거리에 있는 들판 한가운데 미국식 목조주택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무로 지은 집은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지만 기후에 맞춰 스스로 숨을 쉬기 때문에 사람들의 몸에 이롭다는 장점 때문이다. 나무로 지은 집은 불에 약하고 허술할 것이라는 편견도 있지만 목재 벽면 사이에는 단열재가 들어가 불에 약하지 않고, 혹 불이 나더라도 유해물질이 적어 주로 시골에서 전원주택을 지을 때 선호하는 주택이다.

    대문 입구에는 차승현·이정숙이란 이름의 명패가 나란히 걸려 있다.

    5남매의 장남 차갑주(45) 씨와 차남 한주(42) 씨가 마중을 나왔다. 창원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갑주 씨는 집 짓는 데 필요한 상당액의 자금을 지원했다. 갑주 씨는 처음에 마음속에 그려 보던 한옥을 짓고 싶었지만 막상 견적을 내어 보니 건축비가 비싸 포기했다. 갑주 씨는 창원에서 조경업을 하는 차남 한주 씨와 건물 구상에 들어가 목조주택으로 바꾸었다.

    전문성이 없다 보니 건물 구상에만 한 달을 소요했다. 기본 설계도를 만든 다음 건축사에게 정밀 설계를 맡겼다. 실제 건축은 머릿속 구상과 달라 설계를 고치기를 수십 번. 오죽하면 건축사가 직접 설계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을까.

    동생 한주 씨는 공사가 시작되자 본업을 제쳐놓고 목수팀을 만들어 5개월의 공사기간 동안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며 살다시피 매달렸다.

    논이 있던 자리여서 터를 다지고 높이기 위해 흙을 쏟아부어 무려 1m 50㎝를 성토했다. 기초공사에만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모두 뼈대는 목재를 이용했다.

    하지만 이왕 부모님을 위한 집을 짓는 것 편하게 따뜻하게 해드리기 위해 좋은 자재들만 고르게 됐고 건축비는 예상을 휠씬 뛰어넘어섰다.

    5남매는 어머니 칠순인 9월 17일에 새집에서 잔치를 벌여주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좀 더 잘 짓자는 욕심에 잦은 설계변경으로 공기가 늦어져 마음이 바빴다.

    하늘은 5남매의 효심을 시험하듯 지붕에 방수재와 마감재를 붙여야 할 시기에 유난히 잦은 장대비를 쏟아내 공사가 멈추길 여러 번. 우여곡절 끝에 공사 착수 5개월 만인 8월 30일 감격의 입주를 했다.

    5남매는 9월 17일 어머니 칠순 날 함안군수와 가수들까지 불러 칠순잔치 겸 입주식을 성대하게 치렀다.?



    ◆ 부모님에 의한, 부모님을 위한 집

    이 집에는 다른 집에는 보기 어려운 방이 두 곳 있다. 한 곳은 제사를 지내는 방이다. 종갓집인 이 집에는 한 달이 멀다 하고 제사를 지낸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이왕 짓는 것 제사를 지낼 수 있는 방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맞춤식으로 제작된 방은 거실에서 20~30여 명이 한꺼번에 제사를 올릴 수 있게 돼 있다. 방안에는 제기와 병풍을 따로 보관할 수 있는 창고 같은 공간도 마련했다.

    또 한 곳은 어머니만의 방이다. 평생 사방이 막힌 곳에서 살아와 바깥 경치를 보고 싶어하는 어머니를 위해서다. 2층에 자리한 이곳에는 이사오면서 유일하게 버리지 않고 챙겨왔다는 재봉틀을 넣어뒀다. 무엇보다 여러 개의 창을 내어 어디서든 바깥이 보이게 했고, 특히 재봉틀에 앉으면 멀리 함안시내를 볼 수 있는 시원한 창문도 달려있다.

    거실천장은 최근 목조주택에서 유행하는 2층 높이로 만들어 공간을 넓게 만들었다. 거실은 대형창을 내 시원하게 뚫린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고 따뜻한 채광이 원 없이 들어오도록 했다. 보온을 위해 모든 창문은 유리 사이에 아르곤가스가 있어 단열효과가 높다는 최첨단 로이유리로 시공했다.

    제사가 잦고 손님이 많은 것을 고려해 부엌 옆에 또 다른 부엌을 만들어 놓은 것도 이채로웠다. 한학을 공부해 음양오행을 중시하는 아버지가 요구한 것은 또 하나 더 있다. 집의 위치다. 본인이 직접 풍수를 보고 집의 위치를 잡았다. 원래 논의 방향보다 약간 좌측으로 돌아앉은 집은 거실에서 보면 멀리 여항산 줄기의 산 두 개가 ‘V’자 모양으로 열려 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라면 명당의 위치다. 그래서인지 창 사이로 들어오는 겨울 햇살이 더없이 따사로웠다.

    아버지는 상량문도 직접 썼다.

    5남매가 부모님을 위한 몇 가지 더 준비한 것이 있다. 한주 씨는 전문을 살려 봄 여름 가을 계절별로 꽃이 피도록 조경을 했다. 목욕탕 바닥도 보일러를 넣어 항상 따뜻하게 해 놓았다. 거실에는 멋진 샹들리에도 준비했다. 기름이 아깝다며 보일러를 틀지 않는 부모님 때문에 나무를 함께 땔 수 있는 화목 보일러를 넣었다.

    거실 밖에 유난히 넓은 데크는 밭농사로 따낸 고추를 말려야 하는 어머니를 위해 널찍하게 달아냈다. 다리가 불편해 계단에 잘 오르지 못하는 어머니를 위해 2층 계단을 제외하고는 계단을 한 군데도 만들지 않았다. 이 때문에 무려 1m 50㎝나 성토한 이 집은 높지 않고 땅에 붙은 것처럼 낮은 느낌을 준다.

    이 집에는 부모님 단둘이 살지만 적적하지 않다. 5남매가 시도 때도 없이 놀러 와 매번 청소까지 하고 돌아간다.



    ◆남은 보은(報恩)

    아버지는 이 집을 짓고 너무 좋아서 조상에게 감사의 제를 올리며 몰래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매일 30~40m 떨어진 옛 집터에 간다. 지금은 허물고 사라졌지만 일과처럼 옛 집터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5남매는 그런 아버지를 타박했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하고 있다.

    집 앞마당에는 미완성 건물이 하나 있다. 애초 손님들이 오면 모실 수 있는 게스트룸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아버지가 옛집 생각에 상주할까 봐 마무리를 하지 않았다.

    5남매는 대신 새로운 일을 꾸미고 있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집 뒤뜰에 사당을 짓는 일이다. 이번에는 전통 한옥 방식으로 제대로 지어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 작정이다.

    좋은 부모 밑에 좋은 자식이 난다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은 것 같다.


    글= 이현근 기자 san@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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