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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전통 사찰 이야기 (2) 김해 은하사

가야제국의 전설 품은 천년 고찰
‘신의 물고기’ 뜻의 신어산에 자리

  • 기사입력 : 2013-01-1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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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하사 대웅전 뒤로 신어산이 병풍처럼 자리잡고 있다.
    신어산에서 내려다 본 은하사 전경. 영화 ‘달마야 놀자’ 촬영지로 유명하다.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추위에 옷깃을 세우고 거대한 자연석으로 만든 돌계단을 따라 은하사로 올라간다. 제법 가파른 산길에 소나무숲이 조성돼 있다. 이 소나무숲과 절을 배경으로 영화 ‘달마야 놀자’가 촬영됐다.

    돌계단 끝에는 연못이 있고 반야교라는 돌다리가 가로질러 놓여 있다. 오른편 연못 위에 관세음보살상이 세워져 있다.

    동행한 문화관광해설사 김점숙 씨는 “연못의 다리를 건너는 것은 속세에서 사바세계(석가가 교화하는 땅)로 들어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반야교 중앙에는 마주보고 있는 물고기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물고기 두 마리는 이 절의 창건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쌍어는 김해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양으로 허황옥의 출신지로 기록된 아유타가 인도의 한 왕국이라는 가설에서 종종 인용된다.

    전설에 따르면 은하사는 가락국 시조 수로왕 왕후인 허황옥의 오빠 장유화상이 서기 42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창건 당시 이름은 금강사(金剛寺)였다고 한다. 전설이 사실이라면 1900년이 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사찰이다.

    사찰에서 출토된 토기 파편을 토대로 삼국 시대에 창건된 절로 추정하는 이도 있다. 조선 중기 이전까지 있던 건물은 임진왜란 때 전소됐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후기의 양식이다.

    쌍어문양은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38호로 지정된 대웅전 수미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은하사가 위치한 신어산의 이름도 ‘신의 물고기’라는 뜻이다.

    고개를 들어보니 기암괴석들이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매달려 있는 신어산이 자태를 드러낸다. 신어산의 기암괴석들은 ‘천연의 나한상(羅漢像)’이라고 불리고 있다.

    은하사에서 바라보는 신어산은 나한을 품고 있고 그 나한은 은하사를 품고 있는 형상이다. 신어산이 가야인들의 진산(眞山)으로 여겨져 왔고, 그 중심에 자리잡은 은하사 역시 오랜 세월의 역사를 간직해 온 만큼, 자연과 사찰이 어우러져 불국토의 성지(聖地)임을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2000년 건립된 범종루는 아름드리나무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기둥을 세워, 그 위에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다. 내부에는 범종루 낙성 때 봉안한 신어범종(神魚梵鐘)과 목어(木魚)가 있다.

    범종루와 보제루 사이 돌계단을 오르면 법당인 대웅전, 가운데 뒤쪽에 정현당, 오른쪽에 선정당, 오층석탑이 서 있다.

    대웅전 왼편에 삼성각이 보이고, 대웅전 뒤편의 응진전도 살짝 보인다. 대웅전은 지금부터 약 380년 전에 세웠다고 하지만 확실치 않다. 주요 구조부가 부식돼 전면해체해 2003부터 2004년까지 보수작업을 했으며, 대웅전 내외부에 그려져 있던 총 32점의 벽화는 2004년 경남도유형문화재 제402호로 추가 지정돼 수장고에 보관돼 있으며 현재의 벽화는 원형을 모사한 것이다.

    특이하게 목조관음보살상을 주존으로 모시고, 석가모니후불탱과 신중탱을 봉안하고 있다. 목조관음보살상은 17세기 불상양식을 띠고 있어 대웅전 중건과 함께 봉안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처음부터 관음보살상을 독존으로 모신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대웅전 왼편의 삼성각 내부에는 칠성·독성·산신탱을 비롯해, 은하사의 창건설화와 관련된 장유화상의 진영이 봉안돼 있다.

    대웅전 우측 뒤편엔 응진전이 있다. 1900년대 초에 건립된 응진전 내부에는 석가삼존상과 석가모니후불탱을 봉안하고, 좌우에는 16나한상을 비롯해 제석, 범천, 사자, 인왕, 동자상 등을 봉안했다.

    40년 가까이 이 절의 주지였던 대성 큰스님을 만났다. 대성스님은 폐결핵 2기였던 1970년대 초 이 절에 와서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고 1년여간 기도 끝에 부처님의 공덕으로 완치된 후 사찰 복원을 주도한 은하사의 산증인이다.

    대성스님은 “후한 광무 건무 18년(서기 42년) 김수로왕이 사찰을 창건해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서 왔다는 허왕후가 오빠 장유화상과 더불어 백성과 천하태평을 기도 드리는 원찰을 세우니 산 이름을 금강산이라 하고 사찰을 금강사로 칭했다”고 했다.

    이 도량에서 장유화상은 일곱 왕자를 출가케 해 마침내 칠불로 탄생토록 했고 국사로서 국왕의 자문에 응하면서도 수행정진에 전념해 성불을 이뤘다고 전한다.

    이후 신라에서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승대덕과 석학들이 이곳에서 수행 정진했으며 신어산 정상의 우뚝한 바위들은 모두가 나한상이라 하여 이곳을 나한도량으로 삼아 기도하는 불자가 많았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 때 전소된 사찰을 인조 22년(1644년)에 복원하면서 절 이름을 서림사라고 했으며, 별칭으로 동림사라고도 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은하사란 사명은 약 200년 전에 중수하면서 불리고 있다.

    대성스님이 1972년 이 사찰에 왔을 때 남아 있던 14채 중 온전한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대성스님은 1975년부터 복원을 시작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너지고 불탄 사찰을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들 덕분에 은하사는 잃어버린 가야제국의 전설을 품은 채 탐방객을 맞고 있다.


    <은하사 가는길>

    남해고속도로 동김해IC를 빠져나와 맞게 되는 사거리에서 인제대학교·가야랜드 방향 이정표를 따라 직진해 2km 남짓 가면 인제대학교 정문이 보인다. 850m 정도 더 가면 길이 좁아지면서 우측으로 은하사 표지판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우회전해 150m 정도 가면 좌측에 신어산으로 올라가는 아스팔트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1.5km 정도를 올라가면 은하사 입구 주차장이 보인다.

    글= 양영석 기자·사진= 성민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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