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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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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 (29) 송창우 시인이 찾은 마산 진전면 평암리

바다를 본다, ‘절망의 끝’이 아닌 ‘희망의 시작’에서…
산자락 따라 부재골·갈대밭골 등 작은 마을 흩어져 있어

  • 기사입력 : 2013-01-03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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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북산에서 본 2013년 새해 해돋이 풍경. 조선인 최초로 아쿠다가와 상 후보에 올랐던 소설가 김사량은 인민군 종군 기자로 서북산까지 와서 ‘우리들은 바다를 보았다’라는 제목의 종군기를 썼다.
    평암리 미천마을 방앗간.
    함안면에서 기미만세 운동을 이끈 조계승 선생의 사당.
    협곡을 막아서 만든 평암 저수지.
    마산 진전면 평암리의 설경.





    눈 덮인 마당에는 어제를 지나간 발자국이 있다. 마흔다섯 사내의 발자국. 불과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미 내 발에는 맞지 않는 발자국. 헐렁한 발자국. 나는 어제의 발자국에 다시 발을 집어넣으며 천천히 걸어본다. 발자국마다 고여 있는 생각들이 미끄럽다.

    발자국은 대문을 대신하고 선 두 그루 키 큰 소나무 아래에서 끊어진다. 소나무 아래에 어제의 마지막 발자국이 꽁꽁 얼어붙어 있다. 그 너머로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길이 구불구불 산에서 마을로 내려간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평암리. 그 길에 뽀드득 첫 발자국을 다시 찍는다.

    평암리는 서북산 골짜기 해발 150m쯤에 있는 산골 마을이다. 서북산은 옛 진해현이 있던 진동 쪽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마을에서 보면 서북산은 서북쪽이 아니라 동북쪽에 있다. 그리고 북쪽으론 여항산과 이어지고 남쪽으론 인성산과 이어지면서 마을을 폭 감싸 안았다. 오직 서쪽이 산과 산 사이로 조붓하게 열려 있는데 그 사이로 물은 흘러 내려가고 바람은 거슬러 올라온다. 그래서 평암리에 처음 올 때는 누구나 바람처럼 온다.

    십여 년 전 나도 그랬다. 도시살이가 지겨워져서 틈만 나면 바람처럼 훌쩍 떠돌다가 우연히 이 마을에 들었다. 산과 산 사이의 협곡을 막아 만든 크고 푸른 저수지를 지나온 길은 저수지 끝에서 외길로 이어졌다. 그냥 차를 돌릴까 하다가 딱히 목적지도 없는 길이어서 끝까지 가보자는 심산으로 든 길이었는데 그 길 끝에서 뜻밖에도 마을을 만난 것이다. 입구는 좁고 속은 아늑히 넓은 땅. 다랑논이 층층 펼쳐진 곳에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노란 방앗간 지붕이 정겨운 마을. 세상에나! 마산 땅에 이런 곳이 다 있었다니! 돌이켜보면 그날 나를 이 마을로 밀어올린 것도 바람의 힘이었다. 그렇게 첫발을 내디뎠던 마을 언덕배기에 터를 잡고 산 지도 벌써 일곱 해가 되었다.

    평암리에는 산자락을 따라 몇 개의 작은 마을들이 흩어져 있다. 미천, 을문, 갈대밭골, 부재골, 중말, 상평마을. 그리고 예전엔 평암리로 들어오는 긴 골짜기 길에 백암마을이 있었다고 하는데 협곡을 막고 저수지를 만들면서 수몰되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평암리로 오는 길의 중간쯤, 남양 홍씨 재실 아래엔 아직도 백암마을 버스정류소가 있다. 몇 해 전 어느 봄날에 나는 그 재실 계단에 앉아서 이런 시 한 편을 써둔 일이 있다.



    버스는 오늘도 정류소를 지나치지만 누군가 심어놓은 복사꽃은 핀다 그 복사꽃 그늘 아래에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길은 가지를 지나 뿌리를 지나 물속으로 이어지는데 물속 가장 깊은 거기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마을이 있다 가난의 서러움도 지지고 볶던 지긋지긋한 날들의 기억도 다 수몰된 마을 가끔 아주 가끔 사랑했던 밤의 소리만이 남아 잔물결로 일렁이는 곳 그 푸른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 살던 사람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지금도 백암마을 정류소는 그대로 있는데 나는 한번도 돌아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 졸시, <백암마을>



    백암마을 정류소를 지나면 소주 공장이 나온다. 평암리는 예로부터 물이 맑고 좋은 곳이다. 인근이 된통 가물어도 마을을 지나는 개울은 마르지 않는다. 소주 공장이 있는 뒤쪽 산은 옥녀봉이다. 마을에 전해오는 얘기로는 옥녀봉 아래 큰 주막이 선다고 했다는데, 소주 공장이 들어선 것은 그런 전설의 힘이었을까? 이곳에서 생산되는 소주는 전량 해외로 수출된다. 외국에 나가 그곳에서 파는 소주를 마셔본 적이 있다면, 틀림없이 평암리에서 만든 소주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는 외국에 나가 소주를 마셔본 일이 없으니, 우리 동네 물로 만든 소주를 아직 맛보지 못했다. 명절 때면 소주 공장에서 집집마다 몇 병의 소주를 선물하곤 하지만, 수출용 소주 대신 다른 곳에서 만든 내수용 소주를 준다. 아마도 법적으로 그리 해야만 하는 것이겠지 하면서도 꽤 아쉽다. 애주가인 아내는 나보다 훨씬 더 아쉬워한다. 우리 동네 소주는 어떤 맛일까?

    또 하나 섭섭한 것이 있다면, 마을 할매들이 가끔 할배들을 핀잔하며 내게 들려주곤 하는 마을의 풍수에 관한 이야기다. 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 산속에 폭 들어 있는 마을이 흡사 여근곡의 형상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쩌면 그래서 첫눈에 그렇게 반했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할머니들은 기대 밖의 얘기들을 하신다. 이곳은 여자의 기운이 성해서 이곳에 살면 여자들은 똑똑해지지만, 남자들은 점점 멍청해진다는 것이다. 아, 이를 어쩌나!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마을 회관 옆 느티나무 아래에 남근석 하나를 모셔놓은 일이다. 일곱 해를 이 마을에 살면서도, 주량을 제외하곤 그나마 아직 아내와 적절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 덕분이지 싶다.

    우리 집은 평암리에서도 동쪽 산자락인 부재골에 있다. 부재골로 가는 길은 미천마을과 을문마을 사이로 난 길을 지나, 애국지사 서암 조계승 선생의 사당 앞에서 개울을 거슬러 올라간다. 부재골엔 몇 채의 집들이 길을 물고 띄엄띄엄 앉았는데, 그중에는 소설가 전경린이 바람처럼 와서 데뷔작 ‘사막의 달’을 쓰고, ‘염소를 모는 여자’를 쓴 집이 있다. 전경린의 옛집 마당에 들면 마을의 풍경이 부채처럼 펼쳐진다. 그녀는 이곳을 배경으로 삼은 소설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에서 풍경을 이렇게 그려놓았다.



    “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의 풍경과, 버스가 기우뚱거리며 들어오는 먼 계곡길, 어른 키만큼 자라 푸른 갈기를 바람에 날리는 집 앞의 옥수수밭과 숲길 가의 무덤들, 물결이 흘러가듯 끊임없이 흔들리는 푸른 보리밭과 작은 솜털 구름이 떠가는 하늘…… 거기엔 아무 적의도 없었다. 텅 빈 풍경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그 청량하고 평화로운 파동이 몸속으로 흘러 들어와 기름때처럼 덮인 마음의 각질을 산산이 떼어내가는 듯했다.”



    작가가 어느 봄날에 바라보았을 한적한 산골 풍경이 오늘은 온통 흰 눈에 덮여 적요하다. 그녀도 이 집에 사는 동안 이렇게 온통 흰 눈으로 뒤덮인 풍경을 본 일이 있었을까? 사흘 밤낮을 꼬박 눈 속에 갇혀 지낸 일이 있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바람난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은 아마도 이런 날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부재골을 지나 산으로 난 임도를 따라 끝까지 올라가면 부재고개다. 여기에서 길은 세 갈래로 갈라지는데 왼쪽으로 난 길은 서북산 허리를 돌아 함안 별천을 지나 함안면으로 간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도 마을엔 숯막들이 있었고, 이 길을 따라 함안장까지 숯을 팔러 다녔다고 했다. 그리고 가운뎃길은 학동으로 내려가고 왼쪽 길은 인성산 자락을 굽이굽이 돌아 천년고찰 의림사로 간다. 이 일대 산자락들은 한국전쟁 당시 총성과 포성이 산을 꽝꽝 울리던 격전지다. 그 격전의 현장엔 소설가 김사량도 있었다.

    1950년 9월 17일, 인민군 종군 기자로 서북산까지 온 김사량은 ‘우리들은 바다를 보았다’라는 제목으로 종군기를 썼다. 그 뒤 북쪽으로 퇴각하던 중에 영원히 실종되었으니, 이 글은 그가 세상에 남겨놓은 마지막 글이다.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바다가 보인다. 거제도가 보인다. 바로 여기가 남해 바다이다. 진해만을 발아래로 굽어보며 마산을 지척에 둔 남쪽 하늘 한 끝 푸른 바닷가의 서북산 700고지 위에 지금 나는 우리 군대 동무들과 함께 있다. 바윗돌을 파내고 솔가지를 덮은 은폐호 속이다. 저 멀리 서남쪽으로는 통영 반도의 산줄기가 굼실굼실 내다보이고, 정면으로 활짝 트인 바다 한가운데로는 거제도가 보인다. 올숭달숭 물오리떼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조그만 섬들은 안개 속을 가물거린다. 흐드러지게 아름다운 바다.”



    그날 죽음의 전선을 넘나드는 중에 김사량이 보았을 그 흐드러지게 아름다운 바다를 나는 새해 첫 아침에 본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처럼 바다의 풍경도 변함이 없다. 다만 그는 절망의 끝에서 바다를 보았고, 나는 희망의 시작에서 바다를 보고 있을 뿐.


    /글·사진= 송창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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