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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태 四柱 이야기] 송구영신

  • 기사입력 : 2012-12-2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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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밖 감나무에게 변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 풋열매가 붉고 물렁한 살덩이가 되더니 / 오늘은 야생조의 부리에 송두리째 내주고 있다. / 아낌없이 흔들리고 아낌없이 내던진다. / 그런데 나는 너무 무리한 약속을 하고 온 것 같다. / 그때 사랑에 빠져 절대 변하지 않겠다는 미친 약속을 해버렸다. <이하 생략>

    문정희 시인의 ‘미친 약속’이라는 시다.

    창밖에 빛이 퍼렇고 덜 익은 감이 열렸더니, 어느새 물렁하게 잘 익은 붉은 감이 되고, 오늘은 따지 않고 몇 개 남겨 둔 것이 까치밥이 되어, 새에게 과육을 내주고 있다. 창밖 감을 내다볼 때마다 감은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생겨나고 머무르고 바뀌는 것을.

    시인은 이 감의 변화를 보면서 생명세계에서 절대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절대 변화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미친 약속’에 다름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어제는 사귀던 남자 친구와 헤어진 30대 초반의 여성이 내방했다. 3년을 ‘너 없으면 못 산다’며 ‘죽자 사자’하던 놈이 마음을 열고 이제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싶으니 그새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한다.

    가슴이 너무 아프고 배신감에 몸서리가 쳐지지만 자기는 이제 그 남자가 없으면 죽을 것 같으니 다시 돌아오겠느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부적을 쓰든지 무당한테 가서 굿을 해서라도 돌아오기만 한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도 했다.

    눈물을 훔치며 가슴 아파 하는 그녀를 보고 있으려니 답답해진다. 부적을 써서 돌아오게 할 수만 있다면 당장 한 장 써주고 싶었다.

    사주를 보니 남자의 사주가 좋지 않았고, 도화살에 역마살이 같이 붙어 있으니 허랑방탕객이다. 사주가 좋으면 나쁜 살(殺)도 비켜가고, 품위가 있으며 해외출입하며 돈을 많이 벌 수도 있으나 사주가 나쁘면서 이런 살들이 가득하면 아주 흉하게 작용한다.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없는 팔자를 타고났다고 볼 수 있으니 잡아봐야 또 달아난다. 힘들겠지만 깨끗이 마음 접고, 하루빨리 좋은 사람 만나 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잊는 방법은 다른 사람을 만나는 방법이 제일일 것이니까.

    사랑이라는 것이 정말 묘해서 잊으려고 하면 더 떠오르고 겉으로 욕을 하면서도 더 보고 싶은 것이다. 무심한 사람들이 “깨끗이 잊어라” 말하지만 잊는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또 쉽게 잊어지는 것이라면 그건 사랑이 아닐 것이다. 많은 세월이 지나 그 상처가 조금씩 아물기를 기다릴 수밖에.

    그러나 빈손으로 보낼 수는 없어서 마음이 안정될 수 있는 부적을 하나 정성을 들여서 써주니 조금은 위안이 되어 보였다.

    연말연시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지난 세월을 반추하게 된다. 뭔가 아쉽고 후회가 남는다. 사랑을 하여 실연을 하든, 복이 터져 소원성취를 하든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 연말연시의 풍경이다. 그래서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새로운 앞날을 기약한다. 송구영신이다. 2012년 용띠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모든 희로애락을 뒤로하고 한 해가 가는 것이다. 곧 뱀띠의 해이다. 새로운 희망이 다가올 것이다. 그 희망을 향해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새해를 경건하게 맞는다.


    역학 연구가

    정연태이름연구소 www.jname.kr (☏ 263-3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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