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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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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 (21) 배한봉 시인이 찾은 함안 법수면 대평늪과 질날늪

‘사색의 시간’ 주는 늪에서 즐기는 ‘내면의 고독’
인적 드문 늪은 습지식물 사라져 적막감 더해
비에 젖은 흙과 풀과 나무서 가을냄새 짙어져

  • 기사입력 : 2012-11-0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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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습지식물이 사라진 늪은 적막하다 못해 쓸쓸하기조차 하다. 늦가을 적막감을 더해주는 함안 법수면 대평늪.
    수질을 깨끗하게 정화해주는 역할을 하는 습지는 생명 다양성의 보물창고이다. 마른 골풀과 줄 갈대가 우거진 법수면 질날늪.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11월의 첫 주말, 단풍 관광 열풍이 부는 때에 나는 함안 법수면의 대평늪과 질날늪을 만나러 간다. 늪과 인접한 도로에는 어쩌다 한 번씩 자동차들이 지나갈 뿐이고, 행인도 보이지 않는다. ‘천연기념물 제346호 함안 법수면 늪지식물’ 이정표가 논이었던 자리에 띄엄띄엄 우람하게 들어선 공장들을 달갑지 않게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대평늪은 적막한 풍경을 펼치며 비에 젖고 있었다. 여름 내내 물면을 검푸른 빛으로 연출하던 자라풀이며 마름, 가시연, 개구리밥 등의 습지식물이 사라진 늪은 적막하다 못해 쓸쓸하기조차 했다.

    한적하게 늪가에 서서 깊어가는 가을과 마주한 시간. 나는 늪의 저녁 풍경이 보고 싶었다. 서쪽 산으로 꼴딱 넘어가는 석양과 가을. 능선 가득 핏빛 울음으로 고이는 노을 속을 날아가는 철새들의 비행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가랑비는 내리고, 철새들은 인기척에 푸드덕 날아올랐다가 이내 내가 서 있는 반대쪽 산기슭 물면에 내려앉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누가 죽어 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롬 속에서

    물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온 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 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김춘수, ‘가을 저녁의 시’ 전문



    김춘수 시인은 가을날 산 능선에 걸린 석양을 보고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죽어 가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러나 가랑비는 내리고, 나는 나무로 만들어 놓은 생태길을 따라 우산도 없이 걷는다. 머리카락이 젖고, 어깨가 젖고, 가슴이 젖는다. 김춘수 시인이 가을의 “저 슬픈 눈”이라 했던 저녁 해는 이미 내 가슴에 들어와 노을을 깔며 철새들을 끌어당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태길을 걸으며 비 오는 날의 상념은 습지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마음의 노폐물을 걸러 정화시키는 우리 몸의 신장 기능을 하는 것. 맞다. 습지가 우리 몸의 신장이라면 숲은 우리 몸의 허파다.

    “앞산에 가을비/ 뒷산에 가을비/ 낯이 설은 마을에/ 가을 빗소리”(박용래, ‘모과차’)가 우리 마음의 습지라면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햇볕을 베풀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라고 노래한 릴케의 가을날은 우리 마음의 숲이다.

    대평늪을 한 바퀴 둘러 나와 질날늪으로 향한다. 대평늪과, 질날늪. 이 두 늪은 2km 정도의 간격을 두고 대평리와 대송리 일대에 넓게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 법수사람들에게 이 두 늪을 나눠 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냥 우리 동네 벌이다. 붕어도 잡고, 미꾸라지도 잡고, 고둥도 잡고, 소 풀도 먹이고 그런다.

    질날늪 근처에 도착하자 숲이 우거져 늪지대임을 알려준다. 숲이 지구의 허파라면 습지는 지구의 신장이다. 수질을 깨끗하게 정화해 주는 역할을 습지가 하기 때문이다. 또 습지는 생물다양성의 보물창고다. 살아 숨 쉬는 생태박물관, 또는 생명의 보고(寶庫)라고 부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빗줄기가 대평늪에서보다 조금 더 짙어졌다. 나는 우산을 쓰고 늪가를 걷는다. 마른 골풀과 줄, 갈대가 한 몸을 이뤄 붉은 빛을 띠고 있다. 우포늪이 떠오른다. 나는 우포늪에서 8년간 살면서 시를 썼다. 무한한 시적 영감을 선물했던 그리운 우포늪을 걷는 느낌이다. 멀리 첩첩 산 능선이 한 폭 수묵화처럼 내 마음을 끌어당긴다.

    남강을 끼고 발달한 대평늪과 질날늪은 우리나라에서 늪지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한 유일한 곳이다.

    보풀, 자라풀, 줄풀, 세모고랭이, 창포, 개구리밥, 물옥잠, 골풀, 나도미꾸리낚시, 애기마름, 마름, 가시연꽃, 붕어마름, 털개구리미나리, 노랑어리연꽃, 통발, 뚜껑덩굴 등이 있으며, 식물성 플랑크톤인 먼지말류와 돌말류도 발견되었다. 멸종위기·보호야생동물인 뜸부기·맹꽁이·남생이·까치살모사의 서식도 확인됐다. 특히 질날늪에는 분포지역과 개체수가 적어 보호가치가 높은 가시연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대평늪과 질날늪에는 별도의 관리자가 없다.

    오염물 방류, 쓰레기 투기 같은 것을 막을 수 있는 시설도 없다. 대평늪은 사유지라 경제적 논리에 의해 언제 어떤 상황을 맞게 될지 알 수 없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만 해놓을 것이 아니라 이곳 늪지식물들을 보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소란스럽다. 한 무리 가창오리가 날아와 물면에 내려앉으며 기러기 무리와 뒤섞이고 있다.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온갖 생명체들이 어울려 만든 우주적 질서 앞에서 우리는 너무 교만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자연의 소리를 듣는 일은 무한감동, 무한감격의 연속이다. 늪에서는 온갖 생명들의 움직임과 소리가 잘 보이고 잘 들린다.

    박재삼 시인은 가을 나무 아래에 서면 “슬픔 많은 우리의 마음의 키들이/ 비로소 가지런해”(‘비 듣는 가을나무’)진다 했던가. “적당한 하늘의 가을나무 키만한 데서/ 우리의 수심은 소리”진다 했던가. 나는 질날늪 북쪽에 펼쳐진 숲으로 들어간다. 물기에 젖은 숲의 검은 아랫도리에 푸른 이끼들이 자라고 있다. 항상 습기에 젖은 채 자라는 늪가 나무들의 일생을 보여주는 증명서 같다. 손으로 쓰다듬어본다. 이끼들은 축축하고 보드랍고 물 냄새를 가지고 있다.

    나는 조금 멜랑콜리해진다. 순전히 비 때문이다. 문득 여러 글에서 ‘위대한 내면의 고독’을 즐길 것을 권했던 릴케의 말이 떠오른다. 릴케는 고독을 버리고 아무하고나 값싼 유대감을 맺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심장의 가장 깊숙한 심실(心室) 속에 고독을 꽉 채울 때 비로소 단독자인 인간의 내면은 풍성해진다는 것이다.

    늪은 그렇다. 우리에게 생명의 생생력(生生力)을 주고, 사색의 시간을 안겨준다. 한 잎씩 비 젖은 나뭇잎이 날리는 질날늪의 숲을 돌아 나오며 나는 가슴을 펼치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비에 젖은 흙과 풀, 나무들에서 짙은 가을 냄새가 진동한다.

    /글·사진= 배한봉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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