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75) 황강 23 가야산 해인사 암자

암자 둘러싼 장엄한 풍광에 눈길 발길이 멈춘다
암자의 가장 높은 곳 위치한 백련암

  • 기사입력 : 2012-09-12 01:00:00
  •   
  • 해인사 산내 암자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백련암은 경계 없이 탁 트인 풍광이 시원하다.
    석종형 승탑
    지족암
    희랑대
    묘길상탑
    건칠희랑대사좌상
    ?


    자연의 순리는 변함이 없지만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디게 오래 가는 느낌이었다. 연일 계속되었던 열대야도 그랬지만 반갑지 않은 태풍은 연거푸 국토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내고 지나갔다. 거기다 인간성을 상실해버린 파렴치한 성폭력사건이 일어나면서 급기야 남자를 ‘공공의 적’이라 여긴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돌고 있다. 24절기의 백로가 지나갔으니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며 가을의 기운이 완연히 나타나는 계절이다. 이제 부질없는 탐욕과 욕심을 버리고 마냥 네 탓이라며 다른 사람을 탓하던 마음을 내 탓으로 돌리고 여행을 떠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속에서 새롭고 올바른 삶의 가치를 이 가을에 만났으면 한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것도 여행이다. 여행을 잠시 다녀왔다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달라지는 것이 꼭 있다. 그것은 여행을 떠난 바로 당신의 마음이다.


    ▲석종형 승탑, 백련암

    해인사 일주문 가기 전 중간에서 비켜 백련암으로 가는 화강석 이정표를 따라 들어서면 울창한 숲에서 여름을 아직 보내지 못한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했다.

    작은 계곡 건너편에 석종형 승탑 3기가 있고 굽은 길을 돌아서면 평평한 곳에 10여 기의 석종형 승탑이 있었다. 승탑은 승려들의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한 무덤이다. 안내판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다른 곳에 있던 것을 모아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백련암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면 사람들로 북적대던 모습은 어느덧 사라지고 호젓한 산길이 이어진다. 산길로 30분 이상은 걸어야 했던 길은 암자 입구까지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고 군데군데 여유 공간도 만들어져 있었다. 백련암은 해인사 산내 암자 가운데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한가할 뿐 아니라 경계 없이 탁 트인 풍광이 시원하다.

    특히 암자 주변에 우거진 노송과, 환적대, 절상대, 용각대, 신선대와 같은 기암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어 예부터 백련암터를 가야산의 으뜸 가는 절승지로 일컬어 왔다. 암자 주차장에서 암자로 가는 길은 두 군데가 있다.

    한쪽은 가지런한 돌계단을 따라 해우소를 거쳐 일주문으로 가는 길이 있고 차도를 따라가면 암자 마당으로 이어진다. 백련암을 처음 창건한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다만 선조 38년 곧 서기 1605년에 서산대사의 문하였던 소암스님이 중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오래전부터 고승들이 즐겨 수행처로 삼아 왔고 역대로 해인사 노승들이 주석해 왔다. 소암대사를 비롯해 환적, 풍계, 성봉, 인파대사와 같은 스님들이 일찍이 주석했다. 규모가 큰 절에 비교될 만큼 큰 백련암은 성철스님이 해인사 방장으로 주석하면서 열반에 들 때까지 두문불출한 채 참선수행을 한 곳이다.

    신도들이 3000배를 하지 않으면 만나주지 않았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지면서 유명해졌지만, 원래 이곳은 일제시대 시인묵객들이 불교사상을 터득했던 곳이다.

    미당 서정주(1915~2000)나 김동리(1913~1995)가 젊은이들과 학문을 논하기도 했다. 백련암에는 성철 스님의 거처였던 염화실과 수좌들이 수행하는 선실로 구성돼 있다. ‘태어나기 훨씬 이전의 마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고심원에는 화려하게 성철스님의 조형물이 봉안되어 있었다. 평생 누더기를 입고 살았던 스님이 조형물을 본다면 헛된 집착과 미련을 버리라고 꾸짖을 것 같다.


    ▲희랑대, 지족암

    백련사에서 울창한 숲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작은 자연석에 희랑대라고 하는 생소한 표지석을 보고 찾아갔다. 가파른 암벽 위에 세워진 희랑대와 독성전, 요사채가 조촐한 모습으로 서있다.

    이 암자는 신라 말에 희랑이 창건해 수도했던 곳으로서, 창건 이후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이곳은 기묘한 지형과 빼어난 풍치로, 흔히 금강산 보덕굴에 비유되기도 한다. 천연의 절벽을 뒤로하고 바위와 바위 사이로 돌을 쌓아 평평한 터를 만들어 그곳에 희랑대를 세우고 독성 나반존자를 봉안했는데 영험이 있다고 했다. 이 암자 부근의 산 모양이 마치 게 모양이어서 꼭 한 사람의 승려가 살아야 하는데 그 까닭은 게는 만나기만 하면 서로 달려들고 엉켜서 싸움을 하기 때문이다. 이후 이곳에는 1명의 승려만이 기거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각 옆에는 희랑대사가 심었다는 노송이 있고 암자 입구에 작은 약수터가 있었다.

    희랑대 건너편에 지족암이 있다. 지족암은 희랑대사의 기도처로서 본디 이름은 도솔암이었다. 신라 말에 희랑대사가 이곳에 머물며 최치원과 시문을 나누었다. 오래도록 터만 남아 있던 자리에 조선시대 후엽에 이르러 철종 7년 곧 서기 1856년에 추담대사가 지었는데, 뒤에 다시 고종 30년 곧 서기 1893년에 환운스님이 건물을 중건하면서 도솔의 의역인 지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입적한 일타선사가 주석하면서 도량의 면모가 새로워졌고 현재도 공사가 한창이어서 주변이 어수선했다. 전각으로는 일타스님이 꿈을 크게 깨치라는 뜻의 대몽각전과 진영전 등이 있다. 대몽각전을 등지고 서면 희랑대가 손에 잡힐 듯하고 가야산의 풍광이 나그네의 발길을 잡는다.


    ▲묘길상탑, 건칠희랑대사좌상

    지족암을 나와서 홍제암으로 가는 길에 일주문 못미처 사적비, 송덕비, 이런저런 비석들이 늘어선 곳에 작은 삼층석탑이 오가는 사람들의 무심한 눈길을 받으며 다소곳이 서 있다.

    일반적인 절의 건물 배치와는 무관하게 길가에 세워져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2단의 기단 위로 3층의 탑신을 세운 구조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갖추고 있다.

    탑 이름을 묘길상탑이라 부르는데 그냥 길상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1966년 여름 도굴꾼들이 검거되었는데 탑 안에 있던 지석 4매와 157개의 흙으로 구운 작은 탑 따위가 압수됐다. 지석 4매는 모두 규격과 재질이 같고 벽돌처럼 흙으로 구워 만들었다. 첫 번째 지석에는‘해인사묘길상탑기’가 새겨져 있는데 최치원이 지은 것으로 신라 진성여왕 9년(895) 7월 전란에서 사망한 원혼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삼층석탑을 세운다는 내용이다. 두 번째 지석에는 백성사 길상탑 안에 공양물로 봉안하려던 불경 목록이 적혀 있다. 세 번째 지석에는 오대산사에 길상탑을 세우게 된 내력을 기록했고 뒷면에는 전몰한 승병들에게 바치는 조사가 실려 있다. 마지막 네 번째 지석에는 전란 중 해인사에서 사망한 승려들과 일반인 56명의 명단이 나열되어 있다.

    여기에서 이 탑의 정식 이름이 ‘해인사묘길상탑’으로 불사리를 안치한 탑이 아니라 기념탑이라는 사실을 사료를 통해서 알게 됐다. 놀라운 사실은 일반적으로 승군 또는 승병은 고려나 조선시대에 존재했다고 여겼는데 신라시대에 이미 존재했다는 것이다. 보물 제124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탑 안에 있던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해인사 성보박물관에는 보물 제999호로 지정된 건칠희랑대사좌상이 있다. 고려 건국 당시 해인사 승려들은 견훤을 지지하는 남악파와 왕건을 지지하는 북악파로 갈라져 있었는데 희랑은 북악파의 종주였다. 건칠기법과 나무로 제작했으며 길고 큼직한 머리는 파격적인 모습이다.

    얼굴은 길고 이마에는 주름살이 깊이 파였으며, 자비로운 눈매, 우뚝 선 콧날, 잔잔한 입가의 미소는 노스님의 인자한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여윈 몸에는 흰 바탕에 붉은 색과 녹색 점이 있는 장삼을 입고 그 위에 붉은 바탕에 녹색 띠가 있는 가사를 걸치고 있는데 그 밑에 금색이 드러나는 것으로 미루어 원래 모습에는 금빛이 찬연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생략할 곳은 과감히 생략하고 강조할 곳은 대담하게 강조해 노스님의 범상하지 않은 위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데서 인간적인 따뜻한 정감을 느낄 수 있다.

    (마산제일고등학교 교사·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맛집>
    ▲ 대장경 밥상 해인식당 : 합천지역에서 생산한 음식재료를 사용하는 합천의 대표밥상. 대장경 한정식 30,000원, 채산나물밥상 15,000원, 도토리 비빔밥 7,000원.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104-1. ☎933-1117.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