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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1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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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준설토 투기장 공사로 어촌 기능 잃은 ‘진해 연도’ 가보니…

낚시꾼 안찾고 거대한 ‘돌무덤’만…
주민-부산항만공사 이주문제 갈등, 2년 넘게 해결 못해
주민 “높이 7.5m 호안, 바람 막아 덥고 어업 못해 고통”

  • 기사입력 : 2012-08-2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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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일 진해구 연도 마을이 높이 7.5m, 길이 486m의 호안으로 둘러싸여 있다.
    공사가 마무리된 호안은 거대한 돌무덤을 연상시켰다.


    83가구 194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섬마을 창원시 진해구 연도는 지난 2010년 2월 준설토 투기장으로 지정되면서 집단 이주가 결정된 곳이다. 하지만 이주에 대한 주민들과 관계청인 부산항만공사의 이견으로 2년 넘게 이주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연도 마을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지난 24일 연도를 찾았다.

    ◆낚시꾼들 떠나가= 진해구 제덕동에 위치한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0분 남짓 가면 연도에 닿는다. 배 앞에서 서성거리자, 갑판 위에 있던 아저씨가 쳐다본다. 외지인을 경계하는 눈빛이 느껴졌다.

    60여 명 남짓한 인원을 태우는 정기선을 운행하는 강일구(69) 선장은 “연도 가실거요?” 하며 어서 타라는 손짓을 했다.

    그는 “4~11월이면 감성돔이 잡히는 시기라고 해서 뭍사람들이 평일에도 하루에 50~60명 정도 온 것 같아. 지금은 (낚시꾼들이) 없어. 연도는 이제 죽은 섬인 게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강 선장은 지난 2005년부터 정기선을 몰았다고 했다. 그는 “연도는 대대로 피조개 양식도 하고, 물고기도 잡아서 파는 부촌이었어. 사람들이 반찬 걱정 안 하고 미역이며, 바지락, 우뭇가사리 등을 캐다 먹었는데, 지금은 준설토 쌓는다고 마을 둘레에 호안을 쌓아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안 공사로 바람마저 막아= 낮 12시가 넘은 시간에 배가 연도의 선착장에 닿았다. 호안은 선착장에서도 눈에 띄었다. 높이 7.5m, 길이 486m의 거대한 돌무덤을 연상시키는 호안은 지난 5월 준설토를 투기하기 위해 완공됐다고 한다.

    한 할머니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리 와 보소, 할 말이 많으니까.”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이끌리듯 따라간 곳은 경로당이었다.

    자리 앉기가 무섭게 이부용(79) 할머니의 하소연이 쏟아졌다.

    “호안 공사한다고 오랫동안 먼지가 날렸어. 생전 안 하던 기침을 달고 살 정도였지. 공사가 끝나고 이제 좀 잠잠한가 했더니, 여름이 오니까 또 못 견디게 더운 거야. 바다에서 샛바람 불어오고 얼마나 시원했는데, 호안이 둘러쳐져 열이 섬에 갇힌 꼴이라 지옥 같았어.”

    이 말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김금순(77) 할머니도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연도가 얼마나 좋은 섬이었는데…. 공사한다고 나가라더니, 나가기도 전에 공사를 밀어붙여서 살 수가 없어. 괴로운 땅이 됐어.”

    ◆이주 문제 이견= 호안을 따라 걷던 중 길가에 세워진 컨테이너 가건물이 보였다. 3~4명의 남자들이 의자와 테이블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경수 이주대책 부위원장에게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주를 해야 하는데, 관계청인 부산항만공사하고 이견이 좀 있어요. 연도에는 83가구가 있는데, 이 중에서 29가구가 무허가 건물이라고 하네요. 터놓고 얘기해서 옛날 건물 중에는 허가 안 된 건물이 많아요. 수십년째 섬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이 뭘 알겠어요?”

    관계청인 부산항만공사에 물어 보니, 무허가 건물을 합법 주택과 동일하게 보상하기는 어려워 이주 예정지를 분양할 때 허가주택 소유자는 조성 원가로, 무허가주택은 감정 원가로 분양하기로 했다고 한다.

    불가피한 투기장 지정이라고 하지만, 연도의 할머니들과 주민들에게는 결코 반갑지 않은 개발이 되고 있었다.

    글·사진= 정치섭 기자 sun@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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