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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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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보훈가족 집단촌 마산 회성동 ‘광명촌’에 가다

나라 위해 몸바쳐 싸웠건만
남은 건 도로옆 ‘지옥같은 삶’

  • 기사입력 : 2012-06-2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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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순례 광명촌 경로당 회장이 마을 옆으로 지나는 서마산IC 고가도로를 가리키며, 대형트럭이 내는 소음과 진동으로 하루하루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을 30m 옆 서마산IC고가도로 위를 덤프트럭이 탄력을 받아 내달리면 천둥번개 같은 굉음이 납니다. 집은 지진 난 것처럼 흔들리고요. 우째 편안하게 살 수가 있겠습니까. 고가도로를 승낙하면 집단이주시켜주겠다고 약속해놓고 숱한 세월이 흘러도 지키지 않으니 국가보훈자로서 너무 억울합니다.”

    보훈의 달 끝자락인 26일 오후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성동 상이용사·유족 집단 거주촌인 ‘광명촌’을 찾았다.

    기자를 맞이한 6·25 상이용사와 유족 10여명은 기다렸다는 듯 가슴에 맺힌 서운함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옛 마산시가 지난 1996년 광명촌 옆으로 서마산IC고가도로를 개설할 때 주민들이 강력 반대하자, 당시 김인규 시장이 집단이주 약속을 해놓고 16년째 지키지 않아 보훈가족들이 소음과 진동에 시달리면서 지옥같은 환경에서 연명하고 있다는 것이 골자였다.

    실제 광명촌에 맞닿은 좁은 하천 너머로 고가도로가 지나고 있었고, 방음벽이 설치됐지만 너무 가깝다 보니 별무효과였다. 거기다 집단이주를 조건으로 고가도로가 설치되다 보니 광명촌으로 들어가는 굴다리가 ‘개구멍’처럼 낮고 폭이 좁아 마을에 불이라도 나게 되면 소방차 진입이 어렵게 돼 있었다.

    광명촌 경로당 회장을 맞고 있는 상이용사 미망인 박순례(72) 할머니는 “하천부지 위에 집단촌이 조성되다 보니 지반이 약한데다 고가도로를 지나는 대형트럭들이 발생시키는 강한 진동으로 옥상과 벽체에 균열이 생겨 빗물이 스며들고, 방바닥으로도 하천 습기가 올라온다”면서 “나라를 지키다 병신이 된 것도 억울한데,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집단이주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토로했다.

    광명촌은 6·25전쟁이 끝나고 22년이 지난 1975년 3월, 지금의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성동 420-53 일원 하천부지 2591㎡를 매립해 그 위에 조성됐다. 집 없이 어렵게 살아오던 도내 중증 상이용사 및 그 유족 33가구를 수용하기 위해서였다. 옛 마산시와 보훈처, 39사단이 인력과 장비를 대거 지원했다. 사업비는 당시 돈으로 5700만원(시비 4149만 원, 보훈처 891만 원, 자부담 660만 원)이 들었다. 입주 상이용사 가구도 공짜로 입주한 것은 아니었다. 연리 3%, 20년 분할상환 조건의 보훈처 자금을 대출해 건축비를 부담했다. 20년간 대부금을 다 갚고, 1995년 9월 옛 마산시로부터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쳤다. 비로소 내집이 된 것이다.

    하지만 1년 뒤 서마산IC고가도로 개설사업이 이뤄지면서 집단이주 민원이 제기됐다. 소음·진동을 견디다 못한 광명촌 주민들은 지난 2007년 초 청와대와 경상남도,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등에 집단이주 청원을 했다. 고가도로 개설 조건으로 집단이주를 시켜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법적 지원근거가 없으므로 이주대책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했다.

    정부만 바라볼 수 없던 창원시는 박완수 시장이 적극 나섰다. 47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현재의 위치에 4층 이하 연립주택 39가구(보훈 25, 일반 14)를 지어 주거환경을 개선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지난 연말 추경예산으로 우선 2억원을 확보했다.

    하지만 여전히 ‘법적 지원근거 부재’와 ‘다른 보훈대상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앞을 가로막았다. 실제 전국에 28개 상이용사촌이 있지만 주택 무상분양 사례가 없고, 지원할 법적 근거도 없었다. 경남도에서도 이런 이유로 지원에 난색을 표했다.

    급기야 박 시장은 이달 초 창원시를 방문한 김두관 지사에게 광명촌 문제를 설명하고, 총사업비 47억원 중 23억 원을 도비에서 부담할 것을 건의했다. 27일 오전에는 허성무 경남도 정무부지사가 광명촌을 방문해 입주민들로부터 애로사항을 들었다.

    이날 광명촌 경로당에서 만난 김옥록(86) 상이군경회장과 유족들은 “집단이주 약속이 지켜져 나라를 위해 희생하면 결코 홀대받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글·사진= 이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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