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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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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태 四柱 이야기] 곡우(穀雨) 단상

  • 기사입력 : 2012-04-2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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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보게 차를 따르게. 차는 반만 채우고 반은 그대의 정을 채우게. 나는 그대의 정과 차를 함께 마시리.’

    석초(石草) 오식완 마산대학교 총장이 나에게 써준 글이다.

    내가 차를 좋아하기 때문이리라. 표구하여 차방(茶房)에 걸어두고 가끔씩 읽어보는데 그때마다 정겹게 느껴진다.

    녹차는 따는 시기에 따라 우전, 세작, 중작, 대작 등으로 흔히 나뉜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품질이 우전이다.

    우전은 곡우(穀雨)전이라는 말로서 새싹이 처음으로 터져 나오는 아주 어린 찻잎 순으로 만들기 때문에 첫물차라고도 한다.

    한겨울 추위를 이긴 첫 찻잎을 직접 손으로 따서 만들며, 여린 찻잎으로 만들어 차의 맛과 향이 은은하고 순하다.

    지금쯤이면 야생녹차의 주산지인 화개, 악양면 등에서는 햇차 수확으로 바쁠 것이다. 수확한 야생 녹차잎을 무쇠솥에서 덖고 비비고 해서 상품으로 만들어 5월 초 ‘하동야생차문화축제’에서 선보이게 된다.

    오늘이 24절기 중 봄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절기인 곡우다. 청명과 입하(立夏) 사이에 들며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 하여 붙여진 말이다. 그래서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는 말이 있다.

    곡우절에는 차 맛만 좋은 것이 아니다.

    단비가 내리고 새싹이 돋아나니 먹거리가 풍성해진다. 특히 서해에서는 조기가 많이 잡히는데, 흑산도 근처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는 곡우 때면 산란을 위해 북상해서 법성포 앞바다에서 잡힌다.

    이때 잡힌 조기로 만든 굴비를 ‘곡우살이’라 하는데 그리 크지는 않지만 연하고 맛이 좋다. 법성포 주변 식당에서 먹는 굴비정식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곡우 무렵에 나무에도 물이 많이 오른다. ‘명산으로 ‘곡우물’을 마시러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곡우 물은 주로 산 다래, 자작나무, 박달나무 등에 상처 내서 흘러내리는 수액이다.

    몸에 좋다고 해서 전남, 경남·북, 강원도 등에서는 깊은 산속으로 곡우 물을 약수로 마시러 가는 풍속이 있다.

    경칩의 고로쇠 물은 여자 물이라 해서 남자에게 좋고, 곡우물은 남자 물이어서 여자들에게 더 좋다고 한다. 거자수(자작나무 수액)는 특히 지리산 아래 구례 등지에서 많이 나며 그곳에서는 곡우 때 약수제까지 지낸다.

    또한 곡우를 전후해서 벚꽃, 개나리, 진달래와 같은 온갖 꽃들이 피는데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복숭아꽃인 도화(桃花)다. 도화는 오죽했으면 살(煞) 자를 붙여 도화살이라 했을까.

    이때가 되면 괜히 가슴이 설레고 어디로 떠나고 싶어진다. 그래서 사주에 도화살과 역마살이 함께 있으면 정부와 야반도주한다고 한다.

    절기로는 한 해의 여섯 번째이지만 봄의 정점에 다다른 절후다.

    바람도 때가 있는데 처녀 총각이 이때 바람나지 않으면 올 한 해를 또 그냥 보내야 하니 춘삼월(음력) 좋은 시절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은 낭비다.

    그렇다고 어른들까지 덩달아 바람이 나면 그건 좀 곤란하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흔들리지 말고, 교양을 쌓는다면 정부와 야반도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역학 연구가

    정연태이름연구소 www.jna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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