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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태 四柱 이야기] 매월당 김시습

  • 기사입력 : 2012-02-2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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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에서 경주 남산의 문화재를 소개하는 오락프로를 보다가 나도 한번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래전 한 번 가본 적은 있지만 산에만 올라갔다 온 터라 문화재를 살펴볼 기회가 없었는데, 지난주에는 문화해설사를 동반한 남산 탐방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가는 차 안에서 문화해설사의 설명이 있었다. 경주 남산 용장골의 용장사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한때 머물던 곳이며, 남산의 이름인 금오산(金鰲山)을 따서 소설 ‘금오신화’를 집필한 곳이라고 했다.

    과거 준비를 하던 21세(1455년) 때 수양대군의 단종폐위 소식을 접하고는 통곡한 뒤 읽던 책을 불태우고 방랑의 길을 떠나 수년간 전국의 명산대찰을 떠돌다가 29세 되던 해 찾은 곳이 바로 남산의 용장사라고 한다. 김시습. 이름을 가만히 새겨보니 역시 ‘논어’의 학이편(學而篇)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의 시습이다.

    공자의 말씀을 이름으로 사용했으니 그 뜻이야 나무랄 데가 없겠지만 이름으로서 갖추어야 될 격(格)과 형식은 맞지 않으니 파란만장한 삶을 살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다.

    이름에는 원격(元格), 형격(亨格), 이격(利格), 정격(貞格)이라는 4격이 있는데 이 중 장년기 운세를 주관하는 이격(姓인 金의 획수 8과 이름의 끝 글자 習의 획수 11을 합한 획수)이 19획으로 ‘두뇌명석 고난격 (頭腦明晳苦難格) 봉학상익지상(鳳鶴傷翼之像)’으로서 불길하다.

    풀이를 해보면 ‘두뇌명석하고 실행력도 있으나 타고난 재능이나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육친 무덕하고 부부의 인연이 박하다. 형액이 따르고 무자(無子), 고독 등의 재해가 속출하여 가정운이 파괴되는 대흉한 수이다. 아무튼 업을 닦는다는 마음 자세로 수행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은 어릴 적부터 신동소리를 듣고 자랐다. 특이한 기질을 타고나 생후 여덟 달에 스스로 글을 알아보았다. 말은 더디었으나 정신은 영민하여 문장을 대하면 입으로는 잘 읽지 못하지만 뜻은 모두 알았다고 한다. 3세에 시를 지을 줄 알았고 5세에는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에 통달하니 사람들은 신동이라 불렀다.

    율곡이 쓴 ‘김시습전’을 보니 아마 김시습은 천재로 태어났나 보다. 3세 때 보리를 맷돌에 가는 것을 보고 “비는 아니 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누른 구름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無雨雷聲何處動 黃雲片片四方分)”라는 시를 읊었다고 하니 말이다.

    이름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김시습은 승려를 자청하고 용장사에서 예불하고 예불이 끝나면 곡을 하고 곡이 끝나면 노래하고, 노래가 끝나면 시를 짓고 시가 끝나면 또 곡을 하고는 시를 태워버리는 고통스러운 행위로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삶을 살다 갔다.

    그래도 그의 이름이 절개를 지킨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은 그가 아호로 사용한 ‘매월당’ 덕분인 것 같다.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용장사는 이제 사라지고 빈 절터만 옛날 한 사내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내려오는 길 설잠교에서 올려다보니 절터마저 보이지 않고 아득한 구름 위 용장사 삼층석탑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다.

    역학 연구가

    정연태이름연구소 www.jna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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