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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창녕 도천면 망우정

망우정 위에 사람은 이미 떠났으되 망우정 아래 강물은 아직 흘러가네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마지막 여생 보낸 곳… 해질 무렵 잔잔한 수면이 삼키는 붉은 낙조 황홀… 바람 불면 물결치는 갈대숲 운치 더해

  • 기사입력 : 2011-12-2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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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녕 도천면 우강리 마을 입구의 언덕에 올라서면 망우당 유허비 너머로 낙동강이 내려다보인다.
    3칸짜리 팔작지붕 기와집 망우정.



    가을 동안 붉게 물들었던 잎이 떨어지고, 시린 바람이 콧등을 찌르는 추운 겨울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겨울 한낮의 따스함은 봄·가을이 주는 포근함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 줄기 햇살의 따스함을 등에 지고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 망우정(忘憂亭)을 찾았다.

    낙동강 강변을 따라 한적한 시골 길을 지나면 조용한 마을 한쪽의 망우정을 볼 수 있다.

    망우정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마지막을 보낸 곳으로 유명하다.

    곽재우 장군은 1600년 지병을 이유로 경상좌도병마절도사를 사직했다. 이후 현풍 비슬산에서 은둔하다 1602년 이곳에 망우정을 짓고 머물렀다.

    한적한 마을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망우정은 3칸짜리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한국전쟁 당시 소실됐다가 1972년 벽진이씨(碧珍李氏) 후손들이 다시 손질했고, 1979년 창녕군에서 전면 보수했다.

    망우정에는 높이 180㎝, 너비 70㎝의 ‘충익공 망우당 곽재우 유허비’가 지키고 있었다.

    유허비는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전공을 세운 것을 기념해 세운 비석이다. 곽재우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켜 함안, 영산, 창녕 등지에서 홍의장군으로 불리며 전공을 세웠다. 때문에 장군의 공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고을 유림들이 뜻을 모아 1789년 유허비를 세운 것이다. 유허비는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23호로 지정됐다.

    망우정은 ‘근심을 잊고 살겠다’는 뜻으로, 곽 장군의 망우당(忘憂堂)이라는 호도 여기서 비롯됐다.

    망우정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근심을 잊고 살겠다’라는 말처럼 평안과 안식을 가져다줬다.

    망우정 앞으로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과 모래사장의 모습은 마치 유유히 흐르는 인생길 같다. 해 질 무렵 태양을 삼킨 낙동강은 온 세계를 붉은빛으로 물들이기에 충분했고, 극한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다.

    망우정 오른쪽에 있는 갈대숲도 망우정의 운치에 한껏 멋을 더한다. 바람이 불면 서로 스치는 갈대 소리는 마치 현악연주와 같다. 추운 겨울이지만 하늘하늘한 갈대의 모습은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망우정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와 멋진 운치에 비해 관리가 소홀한 것은 아쉽다.

    망우정의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안채에는 먼지가 쌓여 있고, 거미줄로 그득했다. 뿐만 아니라 관광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창녕군은 유허비는 문화재로 지정돼 군에서 관리하지만, 망우정은 문화재로 지정돼 있지 않아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망우정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생각할 때 이곳을 관리하는 담당 공무원 한 명 없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복잡한 일상에 지친 당신이라면, 책 한 권을 들고 망우정으로 떠나 보자. 풍파와 같은 삶에서 벗어나 망우정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말년을 보냈던 곽재우 장군처럼, 망우정에 걸터앉아 눈앞에 펼쳐진 석양을 바라보며 근심·걱정을 다 날려 버리면 어떨까.

    글= 배영진기자·사진= 김승권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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