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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1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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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임진년의 자기기록- 이장환(마산대 국제소믈리에과 교수)

새해부터 자기성찰과 쇄신을 위해 일기를 쓰는 건 어떨까

  • 기사입력 : 2011-12-1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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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상일월(渚上日月)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경북 예천군 용문면의 산골동네 선비집안인 박한광씨 가계에서 1841년부터 1957년까지 6대째 걸쳐 117년간의 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19세기 중반 조선이 풍전등화의 시기에서부터 시작해, 대를 이어 일제의 치욕적인 식민지시대와 해방 그리고 민족동란에 이르기까지 117년간의 개인사는 그야말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격동 시기의 역사이다.

    새해에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겨주었던 임진왜란이 발발한 해였던 임진년이 다시 420년 만에 돌아온다. 임진왜란으로 나라는 피폐하고 초토화됐으며 민중의 고통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전란이 종료되자 당시 도체찰사로 활약했던 서애 유성룡은 벼슬에서 물러나 징비록을 집필하게 된다.‘징비’란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 ‘미리 징계해 후환을 경계한다’란 구절에서 딴 것이다.

    그렇게 또다시 혹독한 왜적의 후환을 당하지 말자고 후손에게 다짐하던 그의 혼령은 그 뒤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로부터 300년이 지난 뒤 조선은 이미 일본의 수렁에 빠져들어 한일합방의 치욕을 겪는다. 그러고도 지난 100년은 아직 미완의 상태로 머물러 있다. 해방 이후 65년, 아직도 일본이 뒤집어써야 할 원죄인 분단이 한반도에 남겨진 채 국토의 허리는 동강 나고도 반세기가 이렇게 흘러갔다.

    지난 수요일 20년간 걸쳐 모임을 이어온 정신대 할머니의 수요집회는 1000회를 맞이했다. 생존자는 234명에서 63명으로 줄어들었지만 서울 중학동 일본 대사관 앞에는 소녀의 모습을 형상화한 평화비가 건립되었다. 앞으로 이곳은 아름답고 꽃다운 시절을 앗아간 그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묵언의 서약장소가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진 힘들을 아끼고 집적해 귀한 역사의 의미를 남긴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보호하겠다던 신라의 문무대왕은 감포 앞바다에 유골을 묻어 문무대왕릉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세월은 1400여 년이 흘렀다.

    새해 돌아오는 임진년은 역사의 무게만큼이나 결코 잊지 못할 기억을 되새겨야 한다. 이 시대를 앞서가는 이들에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자기혁신을 주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조상들의 피와 땀이 서린 이 땅에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들을 기억하고 그리고 그것을 승화시키는 일이다.

    13일 별세한 포항제철의 철인 박태준의 “우리는 조상의 혈세(대일청구권)로 제철소를 짓는다. 실패하면 조상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목숨 걸고 일해야 한다. 실패란 있을 수 없다. 실패하면 우리 모두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하고 기필코 제철소를 성공시켜 나라와 조상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라는 그의 자세를 새겨 본다.

    또한 임진년을 맞이해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의 ‘백의종군’정신은 우리에게 위안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우리가 이 땅에 공생하기 위해서는 자기비움은 귀중한 실천덕목이 되어야 한다.

    스티븐 코비의 저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지적하는 제7의 습관은 ‘항상 쇄신하라’이다. 개인생활에서 일기만큼 자기성찰이나 자기쇄신을 기르는 습관은 없다. 우리도 그해 임진년 1월부터 썼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처럼 그 뜻을 본받아 일기를 쓰는 것은 어떨까. 전란의 급박함 속에서 역사를 기록했던 장군처럼, 나의 기록이 역사가 되고 대를 이어 써내려가 마침내 집안의 역사를 이루는 저상일월처럼, 새해 벽두부터 자기기록을 선언하는 것은 어떨까. 임진년을 맞이하며 나도 정말 오랜만에 문구점에서 일기장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이장환(마산대 국제소믈리에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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