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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밀양 혜산서원'

굽은 문지기는 굽은 세월을 품었다

  • 기사입력 : 2011-12-0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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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 산외면 다죽리 다원마을의 혜산서원 입구에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멋들어진 노송이 꿈틀거리는 듯 서 있다./김승권기자/
     
    혜산서원 강당 앞에 오래된 차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가을의 끝자락이긴 하지만 아직 ‘독서의 계절’이다. 하지만 맑은 하늘과 곳곳에서 열리는 축제 때문에 주말이면 나들이를 가느라 책 펴기가 쉽지 않다. 선현들은 어디서 어떻게 공부했는지 궁금해 밀양의 혜산서원으로 향했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의 영향으로 곳곳에 서원이 세워졌다. 서원은 전통 시대의 사설 교육기관이자, 대유학자인 선현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즉 지역의 인재를 교육하고, 지역에서 배출한 뛰어난 학자들을 배향해 봉사(奉祀: 조상의 제사를 받듦)하는 기능을 해 왔다.

    경남지역에는 개항기 이전 조선시대에 창건해 존속하는 서원이 123개이다. 이 중 합천이 19개로 제일 많고, 함안 17개, 창녕이 12개, 산청과 밀양에 각각 11개씩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97호인 혜산서원의 주소인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 607을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하면 부산-밀양 고속도로 이용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혜산서원은 밀양 시내에서 8㎞여 떨어진 비교적 가까운 곳이라 국도로 가도 된다.

    마을회관 공용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20여m를 내려와 혜산교를 건너면 서원을 만날 수 있다.





    혜산서원의 공간 배치는 일반적인 서원의 모습과는 좀 다르다. 보통 서원은 교육과 제례의 영역을 일직선으로 해서 사당이 건물 뒤편에 위치해 있지만, 혜산서원은 밭 전(田)자 형태로 건물이 배치돼 있다.

    입구 담벼락 사이 골목길에는 수령을 예측하기 힘든 소나무가 문지기처럼 버티고 서 있다. 밀양시의 시목이기도 한 소나무는 서원의 선비정신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 준다. 담벼락 왼쪽편에는 제수를 준비하는 전사청이 있고, 서원으로 들어간 뒤 돌아나온 뒤 만날 수 있는 담벼락 오른쪽에는 어린아이들이 공부했던 서당이 있다. 서당 앞에는 작은 연못과 정원도 조성돼 있다. 강당과 사당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다.

    건물이 이렇게 배치된 것에는 서원철폐 당시 서원을 보존하기 위해 주택이나 조상을 모시는 재실로 위장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 점에서 씨족마을의 서원 배치와, 서원철폐령 이후 서원이 어떻게 변형돼 살아남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시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속에서도 건물의 위치를 바꿔가며 서원을 지키려 한 선조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도 유형문화재인 만큼 강당, 서당, 전사청은 언제나 볼 수 있지만, 제사를 모시는 사당은 평소에 문이 잠겨 있다.

    혜산서원은 일직 손씨 5현을 모시고 있다. 본래 격재 손조서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창건했던 서산서원이 있던 자리였는데, 1971년 서원의 경역을 확장 정비해, 격재 손조서의 사산서원, 정평공 손홍량의 안동 타양서원, 모당 손처눌의 대구 청호서원, 문탄 손린의 대구 봉산서원, 윤암 손우남의 영천 입암서원에 분산 봉안됐던 일직 손씨 다섯 명현의 위패를 옮겨 합사해 혜산서원이라 했다.

    혜산서원이 있는 동네는 차나무 밭이 있는 곳이라고 해서 다원이라 이름 붙었지만 현재는 차를 재배하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 다만 혜산서원의 강당 앞에 오래된 차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나무 앞에는 한때 일직손씨 밀양 입향조인 손광공이 진성현감 시절에 진성(현재 산청군 단성면)에서 차나무를 가져와 식수했고, 현재 600년이 된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지만, 최근 마을 어른들이 600년이 되지 않았다며 설명을 떼버렸다고 한다.

    드라이브 삼아 혜산서원을 찾아 차 한잔을 마시며 책을 읽는다면 좋을 듯하다.

    다만 문화체험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므로 건물 입구에 혜산서원 안내 표지판과 함께 배치도가 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건물들이 어떻게 밭 전자 형태로 배치돼 있는지 알 수 있게 말이다. 물론 선조들의 생각을 한 번에 알아챈다면 혜산서원을 만나는 재미는 덜할지도 모르겠다.

    글= 권태영기자·사진= 김승권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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