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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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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알몸으로 외출하는 바다- 박태일(시인·경남대 교수)

자신을 변화시키는 참된 혁명 실천한 김명이·오순찬 시인…

  • 기사입력 : 2011-11-1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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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가 시를 쓰고, 알몸으로 외출을 한다고? 그것도 그럴싸하다. 지금 내 책상 위에 놓인 시집 두 권이 그들이다. 김명이 시인이 내놓은 <바다가 쓴 시>와 오순찬 시인이 내놓은 <알몸 외출>. 시와사람사 서정시선 26번과 27번을 붙여 나왔다. 한 달 터울로 나란한 동기인 셈이다. 둘 다 첫 시집이니 내는 이나 둘레 사람들 기쁨이 어떠하랴. 게다가 김 시인은 예순여덟 살, 오 시인이 예순네 살이다. 늙은 티를 내도 한창 내기 시작할 나이건만 그렇지 않은 일이어서 뜻이 새삼스럽다.

    김명이 시인은 진동 광암, 곧 강바구 갯가에서 사는 이다. 초등학교 삼학년 중퇴라는 이력은 평생 아픔이었겠지만 우리 어머니 고모들이 겪었을 다반사, 그냥 넘어갈 수 있으리라. 그러나 스물넷 꽃다운 새댁이 배의 키를 잡고 여 선장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을 곡절은 여느 여자와 크게 다르다. 강바구에서 나서 강바구에서 자라 강바구에서 살아온 수십 년의 세파와 고초가 여간했으랴. 그러던 그녀가 뒤늦은 나이에 파도밭을 원고지로 삼은 지 십 년, 그 적공의 결실로 아청빛 맑은 표지를 씌운 시집 한 권을 건져 올린 것이다. 그녀와 이름 비슷한 시인 김명인이 표사에서 그녀 시들이 편편이 향기롭다 한 경탄이 어찌 인사치레로만 그칠까.

    창원 시인 오순찬은 김 시인에 견주어 네 살 아래다. 그러나 시창작 공부는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다. 자식 혼사와 손자 재롱으로 나이가 차면서도 시를, 문학을 눈에서 떼어놓지 않았던 만 아홉 해의 골똘함이 이번 시집을 이루었다. 평범한 아내로, 어머니로 살다 뒤늦게 취향을 제대로 가꾸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든 그녀는 우리 둘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삼이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서예에, 춤에, 그림에, 노래에, 이것저것 기웃거리다 보낸 세월이 여러 해였다. 그러다 마침내 그녀를 시창작에 눌러앉히게 만든 인연법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녀는 1990년대부터 마산, 창원을 중심으로 펼쳐진 다채로운 삶과 지역 풍토를 따뜻하고도 넉넉한 필치로 울림 크게 그려냈다.

    김명이 시인의 시가 육화된 바다의 진면목을 담은 바다시로 절절하다면, 오순찬 시인은 도시의 나날살이를 속속들이 담아낸 증언시로 이채롭다. 둘 다 지역의 밑그림을 오롯하게 되살려 낸 셈이다. 이들 두 시집도 여느 것과 마찬가지로 출판 뒤에 금세 잊혀 버리는 세상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둘은 마산과 창원이, 남해 바다가 남아 있는 한 여러 김명이와 여러 오순찬으로 오래도록 되살아 갈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그런 뒷일에 무슨 뜻이 있으랴. 훨씬 귀한 뜻은 세월과 겨루어 한 번도 이겨본 경험이 없었던 예사 사람이 어느새 오늘 이 자리에 자신을 전혀 다른 삶으로 우뚝 올려 세웠다는 사실에 있다.

    자기를 넘어서는 일이 살아가는 모든 사람 일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이라면,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이 참된 혁명이라면 두 사람은 그 혁명을 오롯이 실천한 이다. 어찌 고통과 좌절이 없었으랴. 두 사람은 그 모든 것을 누르고, 뒤늦은 나이지만 스스로 자신에게 한 번도 받은 적 없는 꽃다발을 한 아름 선물하는 드문 복락을 누렸다. 객쩍은 현시욕에 마음을 비트는 흉내 시, 번화한 수사법이나 꾸며대는 유사 시와 다른 진정성을 그들 작품은 갖추었다. 작으나 참된 삶은 젊음이며 변화라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 준 두 사람이다. 마음에 지고 몸에 지고 드디어 나이에마저 지고 마는 것이 사람 사는 뻔한 이치 아닌가.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그것을 넘어서, 삶이 혁명일 수 있는 본보기를 지역사회에 널리 일깨웠다. 보아 주는 이 없어도 두 바다의 싱싱한 알몸 외출이 어찌 예사로울까.

    박태일(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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