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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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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류동수(성균관대 삼성창원병원 비뇨기과 교수)

환자 스스로가 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결정해야

  • 기사입력 : 2011-09-3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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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원에서 근무하다 보니 죽음과 죽음에 가까이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들의 사망 원인은 천차만별이지만 죽음에 대한 반응과 자세는 거의 차이가 없다. 급작스런 사고나 심장마비로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아닌, 암이나 불치병같이 죽음이 예견되는 질병에 걸린 환자들은 대부분 비슷한 심경의 변화과정을 보인다.

    인간의 죽음에 대해 연구했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다섯 단계로 설명한 바 있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곧 다가올 죽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다가 ‘하필이면 내가 왜?’라며 분노하는 단계를 거쳐 어떻게든 죽음을 미루고자 신이나 절대자에게 의지하는 것과 같은 타협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곧 절망과 상실감에 빠져 깊은 슬픔에 잠겼다가 결국 죽음을 수용하고 준비하는 마지막 단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의학의 발전과 새로운 치료법의 개발 등으로 암이 곧 사망선고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자신의 병에 대해 알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치료에 임하는 환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우리나라 정서에서는 환자에게 암이나 불치병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더 나아가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은 의사나 가족 입장에서 괴로운 일임에는 분명하다.

    더욱이 환자가 의학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상태, 그야말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임종에 이르게 되었을 때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등과 같은 이른바 연명(延命)치료를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잔인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의 말기 환자들은 중환자실에서 각종 의료기구를 주렁주렁 매달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가족에게 따뜻한 마지막 인사 한마디 남기지도 못하고 임종을 맞게 된다.

    2000년대 중반에 들면서 여러 병원에서는 말기 암환자가 임종단계에 이르렀을 때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지에 대해 미리 환자나 가족의 의향을 묻고 이를 결정해 서약하는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최근 서울대병원에서 암으로 사망한 172명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10명 중 9명이 임종이 다가왔을 때 대표적 연명치료인 심폐소생술을 받지 않겠다고 했고, 특히 말기 암환자를 전문으로 간병하는 호스피스병동에서 사망한 암환자는 모두 심폐소생술을 거부했다고 했다. 이러한 결과는 임종을 맞이하는 말기 암환자에게 시행되는 연명치료가 환자의 소생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임종 환자 본인과 이를 지켜보는 가족에게 또 다른 고통을 줄 뿐이라는 인식이 많아지고 이에 동의한 것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상 사전에 임종에 대해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는 가족들이 적지 않다. 결국 환자가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는 시점이 되어서야 비로소 가족들이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말기 암환자의 가족이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것에 법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환자 본인이 자신의 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리는 배제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객사라 하여 꺼리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관념에 반해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말기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환자 스스로 임종 방식을 결정하고 집처럼 편안하고 조용한 환경에서 가족이 보는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자연스럽고 품위 있는 생의 마지막이 아닐까 한다.

    류동수(성균관대 삼성창원병원 비뇨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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