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지? 물이나 한잔하고 좀 쉬어.”
국가의 부름을 받아 의무경찰로 군 복무 중이던 2006년, 경남 하동의 어떤 집회 시위 현장에서 조금 전까지 죽기 살기로 밀어 붙이던 밀짚모자 아저씨들이 나에게 건넨 한마디이다. 격렬한 몸싸움에 지쳐 얼음처럼 차가워졌던 나의 마음이 이 말 한마디에 눈 녹듯 녹아내렸다.
2011년 경찰관이 된 나는, 경남지방경찰청 기동대에 발령 받아 송전탑 건설로 ‘뜨거운 감자’였던 경남 밀양의 집회시위 현장에 자주 출동을 나갔었다. 현장의 시위자들 중에는 과격하고 경찰관만 보면 화를 내시던 한 할머님이 계셨다. 어떤 기회에 그 할머님의 밭일을 기동대 경찰들이 도와드린 적이 있었는데 이 후 집회 시위현장에서 만난 그 할머니는 우리를 적이 아니라고 인식하셨는지 비록 대치하고 있더라도 살가운 표정을 지으셨다.
이처럼 경찰과 시위 참가자들은 시위 현장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동네 아저씨, 이웃집 할머니, 옆집 총각 등 친근한 이웃 사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평화적인 선진집회시위 문화만 정착된다면 이들과 적이 아닌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외국의 평화적인 집회시위 현장을 보면, 집회 시위자들이 자발적으로 폴리스 라인을 지키고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집회를 진행하며, 경찰도 시위를 잘할 수 있도록 시위대를 호위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선진화된 집회·시위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 우리경찰은 폴리스 라인 설치, 소음 측정 등 불법시위를 제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재에 대하여 시위자들에게 잘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밀짚모자 아저씨, 농촌에 사시는 할머니가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겠는가?
예를 들어, ‘폴리스 라인’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시위 참가자들의 움직임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을 보호하고 질서를 유지하여 주위 시민들에게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집회 신고 접수 후 집회 주최자들에게 집회 시위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여 시위 참가자들이 불법집회를 하였을 경우 받아야 할 책임 등에 관하여 정확하게 고지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시위자측도 시위의 목적을 잃어버린 채 막연히 경찰을 적으로 간주하고 주최 측의 절박함만을 강조하여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집회를 한다면, 기존 시위의 목적 달성은커녕 다수의 피해자만 양산할 뿐 아무리 사정이 억울하고 간절해도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내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도 언젠가 외국의 평화적인 집회시위 현장처럼 시위참가자들이 질서를 잘 지키고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경찰이 시위를 잘할 수 있도록 시위대를 호위하는, 함께 춤을 추며 흥겨운 집회를 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
거제경찰서 장평지구대 경장 김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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